악몽의 공용 세탁실
그해 5월, 데이비스의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 빨래 바구니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특히 밖에 나가면 온몸에 흙을 묻히고 오는 엘리 덕분에 나는 더 자주 빨래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엘리 옷은 매일매일 손빨래했지만, 손이 날이 갈수록 부르터서 너무 아팠다. 결국 나는 더 자주, 매주 2~3번 정도 빨래를 돌리는 것으로 마음속 나 자신과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 수돗물에는 석회질(calcium carbonate)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경수(hard water)'는 미네랄 함량이 높아 건강에는 나쁘지 않지만, 피부와 머리카락을 건조하게 만든다. 특히 손빨래를 자주 하면 피부의 천연 보호막이 손상되어 손이 쉽게 트고 갈라진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이민 초기에 겪는 흔한 문제 중 하나다. 해결책으로는 고무장갑 착용, 핸드크림 자주 바르기, 혹은 연수기(water softener) 설치 등이 있다.
빨래를 돌리는 것 자체도 고역이었다. 무거운 빨래 바구니를 들고 집 밖의 2층 계단을 내려가, 한참을 걸어서 아파트 단지 남쪽에 위치한 공용 세탁실까지 가야 했다. 세탁실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 유닛은 거의 50세대인데 반해 공용 세탁실에는 오직 세탁기 6대와 건조기 6대뿐이었다. UC 데이비스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인지 평일 오후와 저녁 시간, 그리고 주말에는 빈 세탁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남편이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최대한 평일 오전에 빨래를 돌리곤 했다.
엘리도 같이 나갔다가는 온 세탁실을 자기 놀이터로 만들 게 뻔하다. TV를 틀어주고, 빨래바구니를 들고, 세제를 챙겨서 계단을 내려오니 오전 날씨가 제법 시원하다. 여름의 데이비스는 오전 날씨가 정말 좋다. 그러다가 12시부터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가 가장 더운 시간이 된다. 그러다가도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차가워진다. 여하튼 기분 좋게 세탁실에 가 보니 역시나 누군가의 빨래가 세탁기를 점령하고 있다. 다행히 한 자리가 다 끝난 듯하다. 가보니 빨래가 다 돌아갔는데도 아직 빨랫감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빨리 뺄 것이지 왜 이렇게 힘들게 한담.' 자연스럽게 남의 빨래를 세탁기 위에 올려두고 내 빨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공용 세탁실 문화는 참 특이하다. 시간이 지나도 안 가져가면 다른 사람이 꺼내서 위에 올려놓는 게 당연했다. 처음엔 충격적이었다. 남의 빨래를 함부로 만진다니. 하지만 몇 번 당하고 나니(?) 나도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나도 빨래를 돌릴 수 있었으니까.
가장 짜증 나는 건 위생 문제였다. 애완동물 털이 잔뜩 묻은 담요를 돌린 후의 세탁기, 정체불명의 얼룩이 남아있는 건조기. 우리 아이 옷을 거기에 넣어야 한다는 게 영 찜찜했다. 그래서 항상 세탁기를 한 번 헹구고 나서 빨래를 넣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그 헹구는 시간도, 동전도 다 내 돈이었다.
"아, 진짜 이 생활 언제까지 해야 하나."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여기서는 왜 이렇게 사치가 된 걸까. 집 안에 세탁기가 있다는 게 이렇게 큰 축복인 줄 미처 몰랐다.
Portage Bay Apartment는 분명 괜찮은 아파트였다. 깨끗하고, 안전하고, 관리도 잘 되어 있었다. 하지만 공용 세탁실은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특히 엘리 친구 페이지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부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들의 싱글하우스 안에는 우리 아파트에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넓은 마당에는 아이들을 위해 그네와 트램폴린,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두었고, 부엌에는 대용량 냉장고와 각종 주방기구들이 있었다. 남편을 위한 서재를 별도로 꾸며두었고, 본인을 위한 드레스룸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역시 세탁기와 건조기를 남들과 같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세탁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줄은 몰랐다. 집안에 세탁기는 당연하니까. 한국에서는 집 안에 있는 세탁기 버튼 한 번 누르면 끝났던 일이 여기서는 대장정이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에 비해서는 많은 부분이 나아졌다. 집과 차가 생기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요령도 생겼으며, 엘리의 놀이터 친구도 생겼다. 약간의 여유 때문이었을까. 나는 자연스럽게 '세탁기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 때 기발한 해결책이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