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도 눈이 올까요
타호에서의 둘째 날 아침, 호텔에서 조식을 든든하게 먹은 후 소다 스프링스(Soda Springs)로 향했다. 3월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아침 공기는 영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엘리는 드디어 눈을 만지고 마음껏 놀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소다 스프링스는 우리가 묵던 호텔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스키장 옆에 아이들을 위해 눈썰매장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소형 리조트였다. 오기 전에 미리 예약해 둔 터라 기다리지 않고 바로 pass card를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눈앞에 썰매장이 나타났다. 다행히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썰매를 타러 걸어 올라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엘리에게 딱 맞는 조그만 튜브썰매를 들고 올라갔는데, 막상 타고 내려가려니 덜컥 겁이 난 모양인지 아빠에게 꼭 붙어있었다. 생애 첫 썰매. 슬로프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빠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좀처럼 나서지 못했다. 결국 남편이 엘리를 품에 꼭 안고 함께 썰매에 올랐다. 꽁꽁 언 눈 위를 썰매가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하자, 아이의 표정은 두려움에서 즐거움으로 변해갔다. 언덕 아래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아빠를 잡고 빨리 다시 올라가자고 아기 참새처럼 짹짹거렸다.
그 후로는 거칠 것이 없었다. 우리는 몇 번이고 썰매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렸다. 썰매가 지겨워질 때쯤에는 함께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고, 돌멩이로 눈을 박아 넣은, 어설픈 모양의 눈사람이었지만 우리 세 식구에게는 세상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누가 만들어 두었는지 모를 눈 미끄럼틀을 발견하고는 거기서 또 한참을 놀았다. 아이의 뺨은 차가운 공기에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오전 내내 지쳐 쓰러지도록 놀고 나서 미리 가져간 컵라면을 먹으니 세상 이런 행복이 또 없다. 그 와중에 문득 드는 돈 생각.
"여기에서 라면 팔면 진짜 잘 팔릴 텐데, 그렇지?"
"그러게 우리나라처럼 라면 팔면 진짜 돈 많이 벌 거야. 동양인들도 많고 요새는 서양인들도 라면 좋아하는 것 같던데."
오후에도 온 힘을 다해 놀고 나서 엘리는 완전히 기절해 버렸고, 우리도 너무나 피곤한 덕분에 바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여행 둘째 날이 저물어갔다.
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데이비스로 돌아가기 전 다시 한번 타호 호수를 눈에 담기로 했다. 이번 목적지는 타호 시티(Tahoe City). 첫날 저녁의 고요한 모습과는 달리, 대낮의 햇살을 받은 호수는 훨씬 더 웅장하고 깊은 푸른빛을 뽐내고 있었다. 바닥에는 화강암 돌멩이들이 너울너울 비치고, 먼 호수 쪽에는 파란 하늘을 거울처럼 비췄다. 햇살은 강렬하고 공기는 맑았다. 중간중간 산자락에 흰색 머플러가 감겨 있고 먼 하늘에는 비행운이 직선을 그리고 있다. 이 순간, 이 장면이 내 가슴에 박혀서 여운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를 설레게 하는 Lake Tahoe, Jewel of the Sierra. 정말 보석 같은 호수다.
느긋하게 산책을 마친 우리는 근처 ‘로지스 카페(Rosie's Cafe)’에서 점심을 먹으며, 창밖으로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을 마지막까지 눈에 담았다. 로지스 카페는 예스러운 멋을 한껏 풍기고 있는 오래된 레스토랑이었는데, 천장에는 타호 호수를 건넜을 조각배들의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었고, 낡은 자전거들과 스노보드도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어 미국 현지인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타호 호수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역사가 묻어있는 레스토랑에서 마무리지었다.
돌아오는 차 안, 엘리는 곤히 잠이 들었다. 창밖의 풍경은 하얀 설산에서 다시 데이비스의 익숙한 평지로 바뀌고 있었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 같았다. 그때, 남편이 넌지시 물었다.
"어땠어? 나는 타호 풍경이 너무 좋더라."
"그러게, 3일은 너무 짧았던 것 같아. 호수 남쪽도 돌아보고 싶어 지네."
"그나저나 두 달 뒤면 이제 여름방학인데, 그땐 어떡하지?"
"여보, 나는 캘리포니아에 가족과 함께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어."
내 말에 남편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버킷 리스트?"
"어, 나는 해안가를 따라서 1번 국도 여행을 꼭 해보고 싶어."
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 사이에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빠듯한 예산으로 감당했던 3일간의 행복. 하지만 두 달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짧았던 봄방학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남은 방학 기간 동안 남편은 남편대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준비를, 나는 나대로 가사와 육아를 모두 해내기 위한 노력을.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남편의 가사 및 육아 참여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양심이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지"라고 말은 했지만, 내심 이런 남편을 둔 것이 자랑스럽고, 또 행복해졌다. 우리 딸 엘리도 남편과의 친밀도가 무척이나 올라갔다. 처음 한국에서 미국에 올 때만 하더라도 엄마만 바라보던 엘리가 이제는 아빠 하고도 곧잘 노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비록 애를 키우면서, 그리고 미국에 따라 나오면서 내 커리어는 박살이 났지만, 우리 가족이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가 행운처럼 느껴졌다.
앞으로도 재정 문제는 우리의 발목을 계속 잡을 터였다. 어떤 제품이 더 싼 지 끝없이 비교하고, 하루쯤 편하게 외식하고 싶은 마음과 치열한 갈등을 겪기도 할 것이었다. 하지만 타호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남겼다. 함께 눈을 던지면서 웃었던 기억, 썰매를 타면서 엘리가 내던 한없이 상쾌한 웃음소리, 최대한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가져갔던 라면과 컵밥들. 비록 통장 잔고는 아슬아슬해졌지만, 우리 마음의 잔고는 가득 채워 돌아왔다. 그 에너지로, 우리는 다가올 길고 긴 여름을 버텨낼 준비를 해야 했다. 아니 버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어떻게든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여름 방학이 오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