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미국에서는 16살도 운전을 한다

세차도 수리도 직접 한댄다

by 유지니안

미국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노력했던 눈물겨운 이야기, 그 후편.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일단 운전을 할 수 있는 "Temporary Driver License"를 받을 수 있다. 약 3개월 동안 임시로 운전을 허용함으로써 실기시험 준비를 하라는 배려 아닌 배려다. 아직 자차 없이 렌터카로 호텔방을 전전하던 시기라, 남편은 바로 실기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일단 Temporary Driver License라도 운전은 가능하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교환학생 시기에 미리 운전면허를 따놔서 단지 갱신만 하면 되는 내가 옆에 있었으니까, 좀 더 여유가 생긴 것도 있다.

SE-c4db6039-f2dd-4d54-9757-a2e57880f14d.jpg?type=w1 Temporary Driver License


남편은 한국에서 5년 정도 운전을 했었기 때문에 실기시험에서 떨어지리란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이나 영국처럼 운전석 위치가 다른 것도 아니고... 나도 남편의 운전 실력을 믿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 번에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그래서, 실기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남편의 변명을 들어보았다.


"아 글쎄 주택가로 들어갔는데 중간에 노란 선이 없더라고. 차들도 양쪽에 주차되어 있고..."

"그래서 '아 여기는 그냥 안전하게 중앙으로 가야겠다... 잘못하다간 옆에 주차된 차를 박을 수도 있고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까!'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심사관이 왜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안 가냐고 떨어트렸지 뭐야. 다음에 볼 때는 보행자 안전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우측에 붙어야겠어."


뭐 그런 흔한 이야기다. 실제로 운전할 때는 문제가 없을, 하지만 실기시험을 볼 때는 지켜야 할 원칙. 남편은 너무 운전에 익숙한 나머지 원칙을 무시했고, 당연히 심사관은 탈락 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그렇게 남편은 실기시험을 2번 치르게 되었고, 다행히 두 번째에서는 여유 있게 합격할 수 있었다.


실기시험까지 합격하게 되면 DMV에서 사진을 찍고(내가 제출한 사진을 쓰지 않는다. 거기서 바로 찍기 때문에 미리미리 옷도 잘 입고 머리도 잘 다듬고 갈 것!), 수수료를 내면 "Interim Driver License"를 인쇄해서 준다(마찬가지로 세 달짜리 임시 운전면허증이다). 정식 운전면허증은 빠르면 한 달, 늦으면 세 달 뒤에 집 주소로 배송되니 항상 post box를 확인하자. 내 경우는 갱신 후 세 달을 꽉 채운 뒤에야 운전면허증이 도착했다.

SE-2d180be6-9e5b-4603-88b1-59c1fb48833a.jpg?type=w1 Interim Driver License. 정식 운전면허증이 올 때까지는 차에 넣고 다니자.


여담이지만, 남편의 운전면허증은 3월이 될 때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의아하게 여긴 남편이 DMV를 다시 방문했고, DMV에서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진행과정이 hold 되어 있었다고 하니, 혹시 운전면허증이 오지 않는 경우 꼭 DMV에 방문해서 확인하자. 물론 DMV에 갈 때마다 고역이겠지만 말이다.

안타깝게도 힘들게 받은 운전면허증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만료가 되어버렸다. 결국 남편은 10월 경에 또 다시 DMV로 가서, 운전면허증을 갱신해서야 비로소 5년간 유효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게 되었다. 업무 처리가 안 좋기로 소문난 DMV를 5번 넘게 가야 하다니, 남편도 참 고생 많았다.

보통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의 만료일은 5년 후 본인의 생일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외국인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 사고 경력이 있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1년짜리나 2년짜리 운전면허증이 발급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정보. 미국에서는 운전면허증이 곧 신분증으로, 국내여행을 다닐 때 여권 없이 신분증만 있어도 된다. 하지만 2005년에 제정된 'REAL ID Act'로 인해 국내선 탑승 시에는 Real ID 운전면허증만 사용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운전면허증 우측 상단에 금색 캘리포니아 곰과 별 모양의 '리얼 아이디 마크'가 새겨져 있다. 반면 Real ID 신청을 안 한 경우 'Federal Limits Apply' 면허증이 발급되어, 국내선 항공기 탑승 및 연방 시설 출입 시 신분증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 유의하자.




15년 전 미국 운전면허를 따두었고, 한국에서도 운전면허가 있지만, 두 개의 운전면허증은 나에게 있어 그저 플라스틱 덩어리에 불과했다. 실재하는 면허증과 부재한 운전 능력, 소위 '장롱면허'라 이해하면 되겠다. 한국에서도 주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했고, 애를 키울 때는 코로나19로 인해 밖에 나갈 일이 얼마 없었던 덕분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동안 운전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이 공부할 때 직접 장도 봐야 할뿐더러, 우리 딸 엘리를 어린이집에 보내거나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playdate를 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한국처럼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현지인'이라면 능숙하게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주유소에서 스스로 기름도 넣고, 필요하면 간단한 고장도 고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현지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터다.


처음 운전석에 앉았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엑셀에 발을 올리는 순간 갑자기 차가 튀어나갈 것은 느낌, 운전대를 잡는 순간 옆으로 쏠릴 것 같은 두려움. 하지만 나는 해내야만 했다. 덜덜 떨리는 와중에 내가 의지할 단 한 사람, 옆좌석에 앉아있는 내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긴장이 사라져 버렸다. 남편은 나보다 더 떨린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조수석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었고, 여차하면 대응하겠다는 듯이 온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어쩐지 차가 떨린다 했더니 알고 보니 남편이 다리를 떨고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딘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는 공터에 있고, 옆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어.' 단지 연습만으로도 이렇게 떨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나는 잠자고 있던 운전 능력을 깨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운전은 기능에 가깝다. 한번 몸에 각인된 기능은 쉽사리 잊히기 어렵고, 잊히더라도 금세 다시 익숙해지곤 한다. 중요한 건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새로운 변화는 마음가짐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장롱면허에서 벗어난 후, 언제든 딸의 친구 집으로 달려가 함께 웃고 떠들 수 있게 되었고, 남편 없이도 가족의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나의 ‘장롱면허’가 깨어나는 과정은, 낯선 땅에서 ‘이방인’의 껍질을 깨고 ‘현지인’으로 거듭나는 변화의 여정이었다. 이제 나는 운전대를 잡고 나아간다. 나의 의지대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여담이지만, 나는 아직도 주유가 서툴다. 문득 난생처음 주유를 했을 때가 떠오른다. 운전에 솜씨가 붙은 나는 자신만만하게 주유소에 진입했다. 하지만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주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던 것이다. 분명 남편이 하는 건 많이 봤는데... 주유구 뚜껑을 어떻게 여는지도 모른 채 어리바리를 떨고 있으니 내 신세가 제법 처량했다. '그냥 남편한테 시킬걸... 기계치가 뭘 또 하겠다고...'

그 순간, 뒤에서 기다리던 금발의 백인 아줌마가 다가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따지려나 걱정하던 순간,

"May I help you? (혹시 제가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KakaoTalk_20250620_094117401.jpg 코스트코 주유소가 제일 저렴하다.


아, 미국의 이런 문화가 너무 부러워졌다. 우리나라였으면 당장 차 빼라고, 무슨 기름도 못 넣으면서 운전을 하느냐고 한 소리 들었을 텐데 말이다. 다행히 이 분 덕분에 무사히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주유는 그냥 남편에게 맡기지 뭐... 어차피 자주 하지도 않으니까!'


내가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새로운 변화가 나로 하여금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으로 만들어 주더라도. 다만 한국에서도 아무 말 없이 차에 기름을 넣어주는 남편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뿐 아닐까. 이중적이라고 욕하지 말아 달라. 생존에 필수였던 운전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유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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