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을 비교하고, 품질을 따지고, 직접 해먹고
한국에 있을 때는 마켓컬리에서 식료품을 구입했다. 주문만 하면 다음날 새벽에 집 앞으로 보내주는 매력에 푹 빠졌다. 배가 고프거나 입이 심심할 때면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에서 주문하면 30분 만에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요리를 하고 싶을 땐 유튜브로 조리법을 보고 따라 하면 금방이었다. 가끔씩 된장국을 끓이거나, 고기를 굽거나 하는 정도로.
'이 정도면 만점 주부 다 된 거 같은데?'
오만이었다.
미국에서는, 그리고 소도시 데이비스에서는 식료품을 배달해 주는 곳이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Whole Food가 배달이 된다더라'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데이비스까지는 배달이 오지 않았다. 아마 배달이 왔더라도 과연 시킬 수 있었을까? 그나마 doordash라고, 우리로 치면 배달의민족/쿠팡이츠 같은 어플이 있다. doordash로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는데, 자주 시켜 먹지는 못했다. 이 모든 것은 '돈'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 이러다가 정말 파산해서 길거리에 나앉거나 패잔병처럼 한국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물가와 환율의 더블 폭등으로 인해. doordash로 시키면 기본적으로 음식 값이 비쌌고, 라이더한테 팁도 줘야 했다. 우리는 외식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먹으면 기본적으로 팁을 줘야 하니까. 그나마 팁을 안 줘도 되는 식당은 햄버거 가게 정도였다. 정말 음식을 하기 싫을 때면 차라리 픽업을 해와서 집에서 먹었다. 게다가 까탈스러운 우리 딸내미는 한국인 아니랄까 봐 빵과 수프 대신 밥과 국, 김치를 더 사랑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집밥을 해야만 했고, 자연스럽게 음식 솜씨가 늘 수밖에 없었다.
음식뿐일까. 앞서 밝힌 것처럼 장을 보는 마트까지 바꿔야 했다. 최고의 품질을 소량으로 포장한 너겟(Nugget Market) 대신, 코스트코(Costco)에서 적당한 품질의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매,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고기(주로 소고기), 과일(사과, 딸기, 아보카도, 오렌지 등), 채소(로메인, 양파, 마늘 등), 버섯(양송이버섯이 싸고 맛있었다), 빵(크라상을 많이 먹었다), 햇반, 김치, 아이 간식, 시리얼, 생수 등... 코스트코엔 없는 게 없었고, 가격은 놀랍게도 너겟의 50~70% 수준이었다.
다만, 우유, 계란 등 유제품은 코스트코에서 사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코스트코에서 산 우유는 하루 만에 상해서 덩어리 져(curdled) 나왔다. 계란의 경우 먹고 나서 온 가족이 배가 아파 한동안 고생해야만 했다.
이를 대신하기 위해 결정한 곳이 바로 ‘트레이더 죠(Trader Joe’s)’.
줄여서 '트죠'는 주로 학생들이나 1인 가구가 장을 보기에 편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앞서 본 너겟이 우아하고, 코스트코가 투박한 점을 생각하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UC 데이비스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 트죠에는 알록달록 손글씨로 쓰인 가격표와 독특한 자체 브랜드(PB) 상품들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트죠 우유는 약 3달러 수준이었는데, 너겟에 비하면 50% 수준으로 저렴했다. 계란도 마찬가지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코스트코 제품들과 달리 먹고 탈이 나지 않았다. 그 외에 트죠에서 주로 샀던 것들은 PB 제품들인 향신료와 냉동식품들이었다. 트죠의 향신료는 특히 풍미가 좋았는데, ‘Everything but the Bagel'은 말 그대로 베이글에 아보카도를 올린 후 뿌려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후추로는 'Rainbow Peppercorns'가 우리 가족 입맛에 더 맞았던 것 같다. 그 외에도 'Garlic Salt'(마늘을 좋아하는 남편 선호템), 'Chile Lime'(고기에 찍어먹으면 맛있다) 등도 자주 사 먹었다.
한편, '트죠의 조가 풍양 조 씨의 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음식을 냉동으로 많이 팔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떡볶이와 김밥, 파전. 특이하게 떡국떡도 팔고 있다. 아울러 치킨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한 '만다린 오렌지 치킨'도 자주 사 먹었는데,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저렴해서 자주 사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두 분류로 나뉜다고 한다. 한 부류는 그 위기 아래에 주저앉고 마는 이들이다. 이들은 갑작스레 닥쳐온 시련 앞에서 세상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한다. 위기는 그들에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고, 그 벽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과거의 좋았던 시절만을 그리워하며 서서히 죽어간다. 다른 한 부류는 그 위기를 디딤돌 삼아 나아가는 이들이다. 이들 역시 똑같이 아파하고, 똑같이 막막해한다. 하지만 이들은 ‘왜’라는 질문을 넘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How?)’라는 질문을 던진다.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벽 앞에서 좌절하는 대신,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벽을 넘어가거나, 돌아가거나, 부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야 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물가 폭등은 분명 우리 가족에게 큰 위기였다. 하지만 그 위기 속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하게 여물었다. 세찬 비바람을 견뎌낸 나무가 더 깊이 뿌리를 내리듯. 단순히 돈을 아끼는 법을 넘어, 주어진 환경 속에서 현명하게 소비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지혜를 배웠고, 이를 통해 나의 내면 속에 숨어 있던 강인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이 감당할 몫 이상의 시련은 겪지 않는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시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 주신다.
- 고린도전서 10장 1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