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적응하나 싶더니 전쟁과 인플레이션 폭발
운명이 시험에 들게 하기 전, 이상한 안정감을 느낀다. 폭풍 전에 수상하리만큼 조용한 것처럼.
어느덧 완연한 봄이 되었다. 데이비스에서의 삶은 제법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첫 수업에서 Socratic Method에 적응하지 못해 쩔쩔매던 남편은 예습을 통해 예상질문을 미리 뽑아내는 수준에 도달했고, 엘리는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는 친화력을 뽐내게 되었다. 나 역시 이제 West Manor Park에 주로 출몰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 West Manor Park에서 벗어나 West Davis 전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때 즈음이었다. 너무나도 활기찬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
우리가 주로 장을 봤던 것은 '너겟(Nugget Market)'이라 불리는 동네 마트였는데, 데이비스 내에서 고급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마트였다. 너겟에 갈 때면 참 기분이 좋았다. 대접받는 느낌.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믿을 수 있는 품질까지. 고기는 입에서 샤르르 녹고, 우유와 계란, 과일은 맛이 너무 진해서 한국에서 먹던 것은 마치 종이로 만든, 그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한국에 있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그리운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단연 식자재일 정도로).
이곳에 정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안도하던 것도 잠시였다.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전쟁은 바다 넘어 작은 마을 데이비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단지 인류애적인 감상뿐이었다. '저런... 사상자가 많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하지만 가장 먼저 기름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도착했을 당시 갤런당 4달러 수준이던 휘발유 값은 삽시간에 5달러, 6달러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는 우유와 계란 값 상승이 느껴졌다. 4.29달러 정도 하던 Organic valley에서 나온 grassmilk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게 한 젖소로부터 짠 우유)가 3월에는 6.49달러까지 올라갔다. 계란을 비롯해서 다른 식자재들도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가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50%나 인상되었다.
예전에는 망설임 없이 담았던 식료품들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사 먹던 소고기 앞에서는 차마 손을 뻗기 어려울 정도로 망설여졌다. 그러면 먹는 양을 줄어야 하나? 미국 생활은 한국과 다르게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는 D.I.Y 문화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크다. 특히 엘리는 성장기라 더 잘 먹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먹는 양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버티다 못해 남편에게 물어봤다.
“여보, 혹시 전쟁이 좀 빨리 끝날 수 있을 것 같아?”
"음... 현재 진행상황을 보면 단기간 내에 끝날 것 같지는 않아. 최소한 1년은 갈 것 같은데?"
"진짜 세상이 원망스러워. 처음 왔을 때는 중고차 가격이 너무 비싸서 문제 더니 이제는 전쟁까지 터져서 물가가 폭등하고... 게다가 환율은 왜 이렇게 오르는 거야."
그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환율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미국에 들어올 때 1,180원 수준이던 환율이 4월에는 1,260원, 그리고 10월에는 1,440원까지 올라갔다. 물가와 환율의 동반 상승은 우리가 깰 수 있는 미션이 아니었다. 우리가 견뎌야 할 형벌 같은 느낌이었다, 미국 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허리띠를 졸라매자.' 먹는 양을 줄일 수 없다면 질을 낮춰야 하는 거였다. 더 이상 너겟의 화려한 불빛 아래서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식탁 물가의 무서운 상승은 단순히 돈을 아껴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우리 가족이 과연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짜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근검절약 짠내 나는 미국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