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세탁기 때문에 이사를? (3)

놓친 기회, 남은 후회

by 유지니안

세탁기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가 놓쳤던 그 타운하우스.


작년 11월, 아직 한국에 있을 때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집을 알아보던 중 Portage Bay Apartment 내에 있는 타운하우스 매물을 발견했다. 독일인 가족이 살던 집인데, 12월 14일에 비운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하는 날이 12월 12일이니 타이밍도 딱 맞았다. 사진으로 보니 2층짜리 타운하우스에 방도 3개나 있었다. 무엇보다 집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바로 계약했어야 했는데.


나는 망설였다. 15년 전 교환학생 때는 기숙사에서만 살아서 미국 집이 어떤지 잘 몰랐다. 게다가 그때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사진 사기도 많았다. 원룸이라고 올려놓고 실제로 가보면 큰 방에 커튼 쳐서 둘로 나눠 임대하는 경우도 들었었다. '일단 현지 가서 직접 보고 결정하자.' 그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얼마나 멍청한 결정이었는지.


막상 12월 중순에 데이비스에 도착해 보니 좋은 집은 당연히 없었다. 여기가 대학 도시라는 걸 간과했던 거다. 학기 시작 전인 3~5월에 이미 좋은 집들은 다 계약이 끝난다. 12월에 남은 건 정말 찌꺼기뿐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결정할 수 있었던 것 중 제일 나은 게 지금 살고 있는 2 Bed 1 Bath 아파트였다. 타운하우스는 매물 자체가 없었다. 아예 없었다. 제로.


지금도 그 독일인 가족의 타운하우스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밀려온다. 만약 그때 과감하게 계약했다면? 지금쯤 나는 공용 세탁실에 가는 대신 집에서 편하게 빨래를 돌리고 있겠지. 엘리가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와도 "괜찮아, 바로 빨면 되지"라고 여유롭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20220917_112959 - frame at 0m8s.jpg 주말 오전, 엘리와 남편이 세탁물 가지러 가는 길


대학 도시의 주택 시장은 우리나라와 완전히 달랐다. 학기에 맞춰 움직이는 시장. 좋은 집은 전년도 봄에 이미 다 나간다. 우리처럼 학기 중간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처음엔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파트도 깨끗하고, 안전하고, 무엇보다 호텔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용 세탁실의 불편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특히 페이지네 가족이 사는 싱글하우스에 갈 때마다 그 생각이 났다. 만약 우리가 그때 타운하우스를 잡았다면, 페이지네처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세탁기 정도는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며칠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저지른 세탁기 설치 사건 이후에 아파트 매니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혹시 타운하우스로 옮길 생각 있어요? 곧 한 유닛이 비게 되는데..."




때마침 5월이라 타운하우스 매물이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졸업생들이 빠져나가는 시기니까. 이때를 놓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물어봤다.


"여보, 우리 이사 갈까? 세탁기가 없어서 너무 불편해. 오늘 매니저가 타운하우스 제안했는데, 같은 단지 내라서 이사도 쉬울 것 같기도 해서..."

"이사 비용 생각해 봤어? 트럭 빌리고, 박스 사고... 우리 둘이서 어떻게 그 짐을 다 옮겨?"


남편은 예상대로 난색을 보였다. 그리고 남편 말도 맞았다. 한국에서 온 이삿짐 박스 풀 때도 진짜 힘들었다. 그때는 그래도 포장이사로 해서 소파며 침대, 식탁 등 큰 물건들은 알아서 설치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이번에 이사하게 된다면 아마 사람을 불러야 할 테다. '어디서 사람을 찾고, 구하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어지러웠다. 게다가 남편은 기말고사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다.


"그리고 월세도 500달러는 더 비싸잖아. 지금도 빠듯한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환율 폭등까지. 너겟에서 코스트코로 장 보는 곳을 바꿀 정도로 아끼고 있는 우리가 월세를 500달러나 더 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빨래가 너무 많아서 힘들지?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로 내가 빨래 다 할게. 이제 조금 수업에 적응이 되는 것 같아. 기말고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함께 할 게."


남편의 마지막 한마디에 할 말이 없어졌다. 실제로 그 이후로 남편이 빨래를 도맡아 했다. 무거운 빨래 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세탁실에서 기다리고, 다시 건조기로 옮기고. 그걸 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한편으론 '이게 맞나?' 싶기도 했고. 우리가 미국까지 와서 이렇게 불편하게 살아야 하나.


결국 우리는 매니저의 제안을 거절했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무리해서 이사 가느니 지금처럼 아끼면서 사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았다. 처음 미국에 올 때 놓쳤던 독일인 타운하우스도, 이번에 매니저가 제안한 타운하우스도. 기회는 왔지만 우리는 잡지 못했다. 아니,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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