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지 않는 집, 쌓여가는 빚
첫사랑, 첫키스... 처음은 뭐든지 힘든 법이다. 우리에게 신혼집이었던 첫 집은 정말 남달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아이가 태어났고, 남편의 유학 합격 소식을 들었던 곳. 좋은 일만 가득했던 그 공간이었다.
그래서 더 헤어질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완벽했던 그 집이 팔기에는 너무 소중했고, 귀국해서도 돌아가고 싶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팔지 못할 것 같다. 우리의 청춘과 사랑이 가득했으니까.
그런 아집은 결국 실수를 낳는다.
꿈만 같았던 여행을 다녀오고 우리 가족은 한동안 몸살에 시달렸다. 아마 이렇게 오랫동안 자동차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아니, 되돌아오려고 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청구서가 아니었다면.
남편은 우리의 예산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여행 중간중간마다 얼굴이 어둡고 한숨을 쉬었던 건, 긴 운전에 힘들어서가 아니라 점점 안 좋아지는 한국의 부동산 시황과 팔리지 않는 우리 첫 집 때문이었다.
사실 여행 전부터 우리는 한국에 있는 집을 매물로 내놓은 상황이었다. 당장 남편의 가을학기 학비조차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 회사에서는 유학을 보내주기는 했지만, 학비 전액을 지원해주지는 않았다. 게다가 매 학기마다 추가로 들어가는 보험료까지 생각하면 반드시 집을 팔아야 했다.
학비도 학비지만 보험료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그래도 학생 보험이라 저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족까지 포함하니 봄학기(1월-8월) 보험료만 무려 $7,446.50가 청구되었다. 그리고 보험료는 학비와 달리 매년 더 많이 청구되었다. 마지막 학기에는 보험료로 $9,292.00를 지불해야만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나는 보험 없이 살기로 했다. 한 학기에 거의 3천 달러라니... 1년이면 6천 달러다. 환율까지 생각하면 거의 천만 원이다. 최대한 아프지 않고 버티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엘리 보험은 포기할 수 없었다. 워낙 활기차서 병원 신세를 많이 질 것 같았거든.
UC SHIP(UC Student Health Insurance Plan)은 UC 시스템 전체에서 제공하는 학생 건강보험이다. 모든 UC 학생들은 자동으로 UC SHIP에 가입되며, 다른 보험이 있는 경우에만 waiver를 신청할 수 있다.학생 보험의 장점은 캠퍼스 내 Student Health Services에서 추가 비용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비전과 치과 보험도 추가 비용 없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의존 가족(dependent)을 위한 보험에 선택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데, Academic Health Plans(AHP)를 통해 별도로 신청하고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게다가 가족 보험은 매 학기마다 재등록해야 하며, 학생과 달리 자동 갱신되지 않는다.
집을 팔기 위해 지난번 전세계약으로 인해 소송이 걸린 사실을 알렸던 D부동산 아저씨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우리가 이향만리에 있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8월이 다가올 때까지 D부동산은 우리 집을 팔아주지 못했다.
아저씨는 찾는 손님이 없다고 했다. 대선 전후로 시장이 완전히 잠겼다고도 했다. 7월이면 좀 괜찮아지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나 결국 아저씨는 집을 팔아주지 못했다.
신뢰와 신용만으로는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급한 상황인데, 더 많은 부동산에 더 적극적으로 내놓지 못했던 걸 후회했다. 그렇게 결국 제때 정리하지 못하고 떠나온 집이 우리 발목을 잡았다.
다른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점차 다가오는 D-day 앞에서 우리는 정말 무력했다. 급한 대로 나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부모님은 사정을 딱하게 여기시며 돈을 내어주셨다.
하지만 남편은 어떻게든 우리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우리 집을 담보로 한 생활안정자금대출과, 회사에서 운영하는 사내 대출 등... 그렇지만 타국에 나와있는데 대출이 과연 쉬울까?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남편이 참으로 답답했다. 솔직히 부모님이 남은 아니지 않는가! 거기서 정말 다른 집안 분위기를 느꼈다. 부모에게 당연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
자식에게 가장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남편은 오랜 시간 self-made로 다져진 사람이었고,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결혼 후 시댁에서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제법 섭섭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려고 정말 노력했다. 도움을 주는게 당연한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시댁만의 문제라고, 남편은 다르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자존심을 버리고라도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는 것. 가족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남편에게 정말로 실망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그렇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제공한 시댁도 원망스러웠다. 도움을 요청하면 자신들의 희생과 힘듦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조그만 도움마저도 크게 부풀려 은혜를 베푼 듯 행동하는 모습이 정말 이해가지 않았다. 부모님의 도움이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험난한 세상에 비빌 언덕이 남편에게는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짠해 보였다.
그동안 내가 많이 혜택을 받고 살았던 것이구나! 이를 통해 살면서 크게 돈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산 나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고, 타국에서 돈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일인지 처절하게 깨달았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던 건, 이 모든 과정에서 드러난 남편과 시댁의 모습이었다. 돈보다 더 큰 실망감이 내 마음속에 쌓여갔다.
'내 자식들에게는 그러지 말아야지... 더 나 자신을 깨고, 제대로 된 어른이 되리라...'
하지만 이 모든 갈등이 폭발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