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나를 맞은 건 그저 코골이였다.
며칠이 지났다.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예산이 부족했다. 그리고 남편은 여전히 시부모님께 연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날도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남편이 스테이크를 굽겠다며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있었다. 그 태연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부모님께 연락한다고 한 지 벌써 일주일. 학비 납부 기한은 코앞인데, 여전히 '생각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남편.
나는 아마 그 순간, 남편의 그 우유부단한 모습에 폭발한 것 같다. 친정에 손 벌릴 때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 상했는지. 그래도 가족을 위해 눈물을 삼키며 전화했던 나와는 너무나 달랐다.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남편. 자신의 집에 돈이 없어서 그런다고 변명하지만, 사실 우리 시댁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인색할 뿐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간의 모든 감정들을 쏟아냈다. 학비 걱정, 보험료 부담, 팔리지 않는 한국 집,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에서도 체면만 차리려는 남편에 대한 실망감까지.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거실에서 TV를 보던 엘리가 놀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길로 집을 나왔다. 미국에서!
남편이 그렇게 정성 들여 준비하던 스테이크는 다 타버렸다. 집에서 나오는 길에 까맣게 탄 고기를 신경질적으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화가 나면 그 자리를 일단 뜨고 마는 나. 한국에서는 그래도 갈 곳이 많았다. 24시간 카페도 있고, 찜질방도 있고, 친구 집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스의 밤 10시,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차 안에서 20분쯤 앉아있었나. 남편이 따라 나와서 잡아주길 기다렸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뭐지? 정말 안 나오는 거야? 뭘 잘했다고 그렇게 선비처럼 고고해?' 그래서 그 길로 뭔가 안전할 것 같고 밝을 것 같은 주변 도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샌프란시스코? 거긴 요즘 마약 천국이라 무서웠다. 새크라멘토는 최근에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새벽 2시에. 우드랜드도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패스. 그때 번뜩 떠오른 곳이 나파였다. 와인으로 유명한 관광도시라면 밤에도 안전하고 밝지 않을까?
2022년 4월 3일, 새크라멘토 다운타운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새벽 2시경 10번가와 K 스트리트 근처에서 일어난 이 사건으로 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주 의사당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새크라멘토 역사상 최악의 대량 총격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내비게이션에 그냥 '나파'라고만 쳤다. 특별한 목적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47마일, 1시간이 걸린다고 나왔다. 그래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화를 풀고 올 수 있겠지.
80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렸다. 평소에는 샌프란시스코로 갈 때나 이용하던 길인데, 이번엔 Vallejo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29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밤이라 그런지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고, 밤운전에 서툰 나는 밝은 길만을 따라서 벌벌 떨면서 운전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 소리만이 내 유일한 길잡이였다.
데이비스에서 나파로 가는 길은 128번 도로를 타고 버라이사(Berryessa) 산맥을 넘어가는 길과, 조금 돌아가지만 80번 고속도로를 경유 Vallejo를 거쳐 29번 도로로 가는 길이 있다. 버라이사 산맥을 넘어가는 128번 도로는 추천하지 않는데, 특히 밤에는 가로등도 없고 커브가 많아 운전이 쉽지 않으니 조심. 캘리포니아의 많은 도로가 그렇듯, 산길은 예상보다 훨씬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급하다.
한참을 달려 나파에 도착했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그냥 '나파'라고만 쳤을 뿐, 구체적인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파 다운타운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깨끗하고 안전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가니 Andaz Hotel Napa가 나타났다. 호텔 앞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망설였다.
'하루 묵을까?'
로비를 들여다보니 세련된 인테리어와 따뜻한 조명이 나를 유혹했다. 아, 저기서 와인 한 잔 마시며 오늘의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리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지금 우리가 돈이 없어서 이 난리인데,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엘리가 걱정되었다. 혹시 깨서 엄마를 찾으면?
결국 호텔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오래된 교회도 보이고, 작은 와인바들도 보이고, 예쁜 주택가도 있었다. 낮이었다면 정말 아름다웠을 동네였겠지만, 한밤중에 혼자 차를 몰고 돌아다니니 왠지 스산했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뭐 하는 거지, 나?'
갑자기 내가 우스워졌다.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와 1시간을 운전해서 왔는데, 하는 일이라곤 남의 동네를 구경하는 것뿐이라니. 전화를 확인했다. 남편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문자 하나, 부재중 전화 하나 없었다.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부부인데, 밤중에 집을 나갔으면 걱정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 돌아가자.'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다 되어 있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엘리가 보고 싶었다.
나파를 벗어나 29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계기판에 주황색 불이 들어왔다. 연료 경고등이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주변은 캄캄하고 도로에는 차도 거의 없었다. 영화에서 본 주유소는 마약과 범죄의 온상지였다. '주유소는 무서워서 도저히 못 가겠어.' 나는 차가 멈추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달렸다. 다행히 기름이 다 떨어지기 전에 데이비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올라가기가 망설여졌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냥 자고 있을까?'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은 어두웠고, 침실에서는 작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문을 열어보니... 남편과 엘리가 나란히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너무 평화로워서 오히려 화가 났다.
그 길로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어? 왔어? 몇 시야?"
"왔어? 왔어가 다야? 와이프가 집을 나갔는데 잠이 오냐? 전화도 안 하고?"
"엘리 재우느라 같이 누웠는데 잠들었나 봐.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서 안 잡았고."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새벽까지 밖에서 화를 삭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편하게 잠이나 자고 있었다니.
"나 새벽 3시까지 밖에 있었거든? 나파까지 갔다 왔거든?"
"나파? 왜 거기까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나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나 이제 파업이야! 내일부터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아침도 안 차리고, 도시락도 안 싸고, 엘리도 안 볼 거야!"
다음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남편이 엘리와 함께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남편은 오늘 하루 집에서 엘리를 돌보기로 한 듯했다.
"아빠, 우유 더!"
"응, 잠깐만."
서툴게 우유를 따르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식탁 위에는 컵라면이 두 개 놓여 있었다. 아마 자기 아침 겸 점심으로 먹으려고 준비한 모양이었다.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 생긴 응어리가 쉽게 풀리진 않았다.
때로는 폭발해야 상대방도 깨닫는다. 나의 소중함을, 그리고 상대방 자신의 잘못을.
며칠 후, 남편은 시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예상 밖으로 도움은 받을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남편이 주도적으로 시부모님께 부탁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대로 남편에게 실망을 느끼고, 남편은 남편대로 기분이 안 좋았으니까.
물론 남편은 본인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바뀌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다. 그래서 결혼한 것도 있고.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남편의 잘못을 깨우쳐주고 변화시켜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벌써부터 지치는 느낌이었다.
타국에서의 경제적 어려움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가족 문화의 충돌이었고,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었으며, 부부가 진짜 한 팀이 되어가는 시험대였다.
그리고 때로는 나파까지 밤중 드라이브를 해야 할 정도로 화가 나도,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은 가족이 있는 그 작은 아파트였다. 비록 그 가족이 내가 집을 나간 줄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