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따라 떠난 '우리만의 방식'
5월 12일, 드디어 출발하는 날. 남편의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떠나기로 한 1번 국도 여행. 태평양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며 캘리포니아의 해안 절경을 만끽하는, 내 버킷리스트 1번이었다.
트렁크에 짐을 싣는데 손이 떨렸다. 코스트코에서 대량 구매한 과자들, 미리 주문해둔 컵라면과 컵밥, 심지어 햇반까지. 여행 가방보다 먹을거리 가방이 더 많았다. 밖에서 사 먹으면 너무 비싸니까. 이게 여행인지 피난인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웃음이 나왔다.
"여보, 진짜 괜찮겠어? 돈이..."
남편도 망설이고 있었다. 지난 4개월간 코스트코 핫도그로 점심을 때우고, 트레이더 조 냉동식품으로 저녁을 해결하며 아낀 돈. 그 돈으로 여행을 간다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잖아. 딱 일주일만 숨 좀 쉬고 오자."
남편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맞다. 우리는 정말 힘들었다. 중고차 가격이 신차보다 비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신차를 샀고, 전쟁으로 기름값이 갤런당 6달러까지 올라 차 타기도 무서웠다. 엘리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 놀이터 친구들과 플레이데이트 한 번 하려면 가스비부터 계산해야 했다.
사실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한국의 집은 여전히 팔리지 않고, 환율은 1,400원을 향해 치솟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더 이상 데이비스의 공용 세탁실과 텅 빈 통장 앞에서만 살 수는 없었다. 아니,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 돈은 또 벌면 돼. 하지만 엘리와의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아.'
스스로를 위로하며 시동을 걸었다. 적어도 이번 일주일만큼은, 돈 걱정 대신 바다를 보며 웃고 싶었다.
사실 그 '돈 걱정'이 완전히 사라질 리는 없었다. 그래서 트렁크 가득 먹을거리를 실었다. 호텔 조식도 비싸고, 고속도로 휴게소는 더 비싸다. 맥도날드 세트 하나가 15달러인 세상. 우리의 비상식량이 없다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게 초라한가?'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게 우리의 방식이야. 숙소와 볼거리에는 쓰되, 아낄 수 있는 건 아끼는 거지.'
그렇게 우리는 컵라면 냄새와 함께 1번 국도로 향했다.
데이비스에서 서쪽으로 2시간, 첫 목적지 몬터레이에 도착했다. 2월에 수족관 보러 왔던 곳이지만, 이번엔 제대로 둘러보기로 했다.
17마일 드라이브 입장료 12달러 25센트. 게이트 앞에서 지갑을 꺼내며 잠시 멈칫했다. 이 돈이면 트레이더 조에서 일주일치 우유를 살 수 있다.
'그냥 밖에서 보고 갈까?'
하지만 뒷좌석의 엘리가 창밖을 보며 연신 "바다! 바다!"를 외치고 있었다. 그 반짝이는 눈을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에라, 모르겠다. 여행 왔으니까 여행답게 해보자.'
신용카드를 건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평생 아끼고만 살 순 없잖아.
페블비치 골프장, 론 사이프러스... 부자들의 세계를 구경하며 남쪽으로 내려갔다. 카멜의 동화 마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발이 멈췄다. 엘리가 쇼윈도의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며 "엄마, 저거!"
가격표를 보니 작은 컵 하나에 8달러. 한화로 만원이 넘는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집에 가서 먹자"고 했을 텐데...
"그래, 하나 사자."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니다 엘리야, 조금만 참자. 저기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엘리는 시무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 마음에 대신 한인이 운영하는 일식당으로 향했다. 적어도 밥은 제대로 먹이고 싶었다.
롤 컴비네이션 2개에 15.75달러. 여전히 비쌌지만 세 명이 나눠 먹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식당 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왜인지 우리만 가난해 보이는 것 같았다. 팁을 얼마나 줘야 하나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도 창피했다.
"포장해 주세요."
결국 해변으로 가져가 먹기로 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김밥이 오히려 더 맛있었다. 엘리는 해변에서 뛰어놀며 깔깔 웃었다.
'그래, 이게 우리만의 방식이야. 비싸게 먹는다고 더 행복한 건 아니잖아.'
1번 국도의 하이라이트, 빅스비 브릿지를 지나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달렸다. 오른쪽은 천 길 낭떠러지, 왼쪽은 깎아지른 절벽. 고소공포증이 있는 남편은 운전대를 꽉 잡고 앞만 봤지만, 나와 엘리는 창밖 절경에 감탄했다.
그날 밤, 빅서의 숙소. 이 험준한 지역엔 숙소가 극히 제한적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95달러나 하는 방인데 1930년대부터 운영된 통나무 오두막 수준이었다. 벽은 얇아서 옆방 소리가 다 들렸고, 히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5월인데도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은 뼛속까지 시렸다.
"비싼 돈 내고 이게 뭐야..."
우리 세 식구는 추위에 떨며 잠을 청했다. 엘리를 가운데 두고 최대한 붙어서 체온을 나눴다. 다음 날 아침에야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커튼 뒤의 창문이 살짝 열려 있었던 것. 어두워서 못 봤나보다.
"395달러를 내고도 창문이 열린 줄 모르고 벌벌 떨며 잔 거야?"
남편과 나는 서로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진짜... 여행도 서툴다."
"그러게. 돈도 없는데 센스도 없어."
근데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게 우리의 여행이었다. 남들은 호텔에서 조식 뷔페를 즐기고 스파를 하는 동안, 우리는 열린 창문도 못 보고 추위에 떨었다.
"그래도 지금은 따뜻하잖아."
남편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맞다. 어제는 추웠지만 오늘은 따뜻하다. 서툴지만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빅서를 빠져나와 계속 남쪽으로. 산 루이스 오비스포로 가는 길에 모로베이(Morro Bay)라는 작은 항구 도시를 발견했다. '캘리포니아 고래 관찰의 메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엘리야, 고래 보러 갈까?"
3시간짜리 투어, 성인 55달러에 엘리는 다행히 5세 미만 무료. 하지만 3살짜리도 40달러라는 옆 회사를 보며 안도했다. 세금 포함 159달러. 아껴 쓰던 우리에게는 큰 지출이었지만, 엘리에게 진짜 고래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배가 출항하자마자 심한 멀미가 시작됐다. 나는 구토 봉투를 꼭 , 남편은 창백한 얼굴로 엘리를 품에 꼭 안고 버텼다. 고래는커녕 바다도 제대로 못 봤다.
항구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다.
"159달러..."
남편이 중얼거렸다. 그 돈이면 코스트코에서 한 달치 고기를 살 수 있었다.
"괜찮아. 이것도 다 경험이지."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피가 말랐다. 앞으로 여행 일정이 4일이나 더 남았는데 벌써 예산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냥 집에 갈까?'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엘리가 차에서 "내일은 어디 가?"라고 묻는 순간,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이미 시작한 여행이다. 끝까지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