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스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는 치솟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해가고 있었다. 엘리는 페이지와 함께 놀이터를 누비고, 남편은 학교 수업에 익숙해졌고, 나는 코스트코와 트레이더 조를 오가며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미국에 나오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D부동산 사장님이었다. 점잖은 50대 남성분이셨는데, 예전에 우리 집 매매를 위해 애써주셨던 고마운 분이었다. 미국 생활비가 빠듯해져서 다시 집을 내놓게 되면서 연락을 드렸던 터였다.
"엘리 엄마, 혹시 소송 걸린 건 없어?"
"네? 무슨 소송이요?"
"아니, 내가 전해 듣기로는 H부동산이 무슨 소송을 걸었다느니, 괘씸해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느니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출국 전 그 협박 문자들이 떠올랐다. '설마 진짜로?'
"정말요?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한 번 알아볼게요.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전화를 끊고 나서 급하게 우리 집 근처에 사시는 시부모님께 연락드렸다. 혹시 우리 집 우편함에 뭔가 와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몇 시간 후, 시부모님으로부터 사진이 왔다. 법원에서 온 서류들이 우편함에 가득했다.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확대해 봤다. 거기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미 소송은 끝나 있었고, 우리는 원고(그 계약 파투를 낸 부부)에게 가계약금 500만 원은 물론이고, 그동안의 법정이자와 소송비용까지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알고 보니 상대방은 내용증명을 두 차례 보냈고, 폐문부재로 반송되자 즉시 공시송달로 넘어갔다고 했다. 우리가 해외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연락 한 번 없이 바로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덕분에 소송은 5개월도 채 걸리지 않고 원고 승소로 끝났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우리는 소송이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남편과 UC Davis LLM 과정을 함께 듣는 변호사 동료에게 황급히 연락했다. 아무래도 인터넷에 검색하는 것보다는 한국 법을 잘 알고 있는 한국 변호사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나았다.
"추완항소라고 있어요. 송달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에 할 수 있는 항소예요. 해외에 계셨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그때부터 진짜 고민이 시작됐다. 추완항소를 해서 소송을 이어갈까?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더미였다. 고민을 하는 이 시간에도 500만 원에 대한 이자가 나날이 불어나고 있었다. 빠르게 결정해야 했다.
'미국에서 한국 소송에 직접 대응할까?'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일어나는 소송에 대해 미국에서 대응하는 것은 어려울 테다. 그리고 아무리 전자소송이 잘 되어 있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할 것이었다.
'변호사를 선임할까?' 가계약금 500만 원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었다. 운 좋게 엘리의 조리원동기 엄마가 변호사였기 때문에 한번 운을 떼보았다.
"음... 나라면 그냥 가계약금을 반환하고 말 것 같아. 변호사 선임료도 비싸지만 무엇보다 너무 소액이라 이걸 담당하고 싶은 변호사가 있을까 모르겠어."
며칠을 고민한 끝에, 우리는 그냥 돈을 주고 일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억울했지만, 우리 가족의 행복과, 남편의 학업, 엘리의 미국생활 적응 등 우리에게 더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50대였던 그 부부, 참 영악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미국에 간다는 걸 알고, 연락처도 알면서, 단 한 번의 전화도 없이 바로 소송을 걸었다. 500만 원 때문에 우리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미국에서 복잡한 소송 절차에 직접 대응하기 어려울 거라는 걸 다 계산한 것이다.
가장 속상했던 건, 이 모든 게 H부동산의 무책임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우리가 명확히 요청했던 사항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계약이 무산되자 오히려 상대방 편을 들었던 그들. 선관의무를 저버린 그들 때문에 우리는 이역만리에서 뜻하지 않은 법적 분쟁에 휘말려야 했다. 귀결되는 것은 H부동산 사장을 잘못 본 내 탓. 사람 보는 눈을 더 길러야 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절실히 깨달은 게 있다. 작은 것을 움켜쥐려다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쁜 인연은 과감하게 끊어내는 게 현명하다는 것. 만약 2021년 12월 10일,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냥 가계약금 500만 원을 깔끔하게 돌려주고 끝냈을 것이다. 그게 결과적으로 더 싸게 먹혔을 테니까.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들과 엮일 일이 없다는 것이다. 돈으로 악연을 끊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물론 그 돈으로 트레이더 조에서 얼마나 많은 장을 볼 수 있었을지 생각하면 아깝지만 말이다.
앞으로 해외에 장기간 나가실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다. 전자소송 시스템에 미리 가입해 두시고, 전자송달을 신청해 두시길. 그리고 무엇보다, 출국 전에는 모든 계약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시길. 우리처럼 이역만리에서 한국의 소송 소식을 듣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참고로 그때 집을 팔려고 D부동산에 내놓았지만, 결국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팔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의 복잡한 일들은 잠시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데이비스에서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5월이면 남편의 봄학기 수업과 기말고사가 끝난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 방학. 미국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겨울방학이 굉장히 짧고 여름방학이 길다. 이때를 기다리며 그동안 알뜰살뜰하게 살아온 나다. 드디어 이룰 수 있게 된 나의 여행 버킷리스트 1번, "캘리포니아 해안 따라 1번 국도 여행하기"! 새로운 걸 경험할 때도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INTJ인 나의 방식이다. 그동안 모든 힘들었던 일들 다 잊어버리고 여행계획을 짜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California Highway 1 여행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