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엄마가 이제야 보인다

by JIPPIL HAN

갱년기를 통과하고 있는 요즘,

부쩍 엄마의 예전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냥 생각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오래된 필름이 다시 돌아가듯 장면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나의 엄마는 시집살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틀 안에서 갱년기를 겪어야 했다.
늘 누군가의 시부모님의 기분을 살피고 한마디 말조차 조심해야 했으며,

참아야 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의 며느리라는 자리는 사랑보다 희생을 먼저 요구했고, 이해보다 인내를 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냈다.

어떤 날엔 이유도 없이 우리를 불러 매타작을 했고, 또 어떤 날엔 갑작스러운 고함으로 집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살얼음처럼 얼어붙게 하기도 했다.

그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려서, 엄마의 마음보다 내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절 나는 불같았던 엄마를 너무 혐오했던 것 같다.

왜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화만 내는지,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지, 왜 늘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늘 로봇처럼 강해 보였다.

늘 참고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넘어지고 주저앉을 틈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가 왜 그렇게 강하게 보이려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그 ‘강함’은 진짜 강함이 아니라 흔들리면 안 되는 자리에서 억지로 버틴 흔적이었다는 것을.


이제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고 엄마가 겪어냈던 신체적 변화와 감정의 폭풍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지금에서야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갱년기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이 나에게 낯설어지는 시기다.
밤마다 이유 없이 열이 올라 잠을 설치고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서러워지고,

가만히 있어도 마음 한편이 텅 빈 것 같고 혼자라는 감각이 몸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엄마도 그 시간을 혼자 버텼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한 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칠 것 같은 고독감을 손에 쥐고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엄마는 강해서 참은 것이 아니라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견딘 것이었다.


얼마 전 친정에 갔다가 엄마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자궁근종 추적 관찰 중이라는 얘기를 나누던 중 엄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도 자궁암 의심돼서 조직검사 했던 적 있어. 그때 몇 주 동안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는지 몰라...”

나는 이 이야기를 생전 처음 들었다.

엄마의 50대, 나처럼 갱년기를 건너던 바로 그때의 일이라고 했다.

그 시절 엄마는 바쁘다는 이유, 혹은 걱정시키기 싫다는 이유로 아빠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삼 남매는 물론이고 아빠조차 몰랐던 엄마의 공포, 그 몇 주의 긴 시간을 엄마는 오롯이 혼자 견뎌냈다.

몇 주간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엄마에게 미안해 죽을 것만 같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오고 나서야 아빠에게만 조용히 말했단다.


위로는 층층시하에, 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아래로는 철부지 삼 남매.
엄마는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을 마음 놓고 내려놓을 자리조차 없었다.
자신의 아픔을 위해 멈추어 설 자유도 없었다.

가족의 중심에 본인이 서 있으면서도 정작 가족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

그 외로움이 결국 가족을 향한 고함이 되고, 갑작스러운 화가 되고, 때론 억눌린 울음처럼 터져 나왔을 뿐

엄마는 화를 내고 싶어서 낸 게 아니었다.
그저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 흘러넘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

울고 싶었겠지만 울 자리가 없었고 기대고 싶었겠지만 기댈 곳이 없어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우리에게 감정이 쏟아졌던 것이다.


요즘 나는 그 시절의 엄마를 다시 바라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엄마를 미화하지도 않고 그때의 상처를 모른 척 꾸미지도 않는다.
내가 같은 나이와 같은 증상들을 겪으면서 그 시절 엄마의 얼굴 뒤에 숨겨져 있던 감정의 색깔들을 조금 더 명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를 분명 미워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미움은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이해’라는 이름의 감정으로 변해갔다.
이해는 용서와는 조금 다르다.

이해에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 보려는 나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지금 내가 겪는 갱년기는 그 시절 엄마를 용서하는 과정이 아니라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엄마를 미워했던 어린 시절도 엄마를 이해하는 지금의 나도, 모두 내 인생 안에 겹겹이 쌓여
나를 조금 더 다정하고 넓은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우리 같은 계절을 지나왔네요. 엄마도 그 계절이 참 길고, 참 외로웠죠?"

그때의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 간까 지도 이제는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성의 갱년기란 그런 것 같다.

지난 세대의 내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지금의 나 또한 같은 계절을 건너고 있음을 담담히 인정하며 그때의 엄마와 손을 맞잡는 순간.

내가 엄마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어쩌면 바로 지금, 내가 엄마의 나이를 살아보는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 다음 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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