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온 뒤, 나는 웬만한 모임에는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파워 E’였다.
누가 부르면 어디든 달려갔고, 참석하는 자리마다 늘 신나게 놀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곧 에너지였고, 그 에너지로 하루를 버티기도 했다.
하지만 몸 여기저기가 불편해지고부터는 모임이 귀찮아졌다.
친한 친구들 모임이 아니라면 나갈 의욕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예전 같지 않은 몸과 마음이 어느 순간 외출을 망설이게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면 꼭 나가는 모임’이 있다. 바로 대학 동기 모임이다.
여자 동기들은 아이 키우느라 바빠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남자들 사이에서 내가 유일한
홍일점으로 남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십 년이 넘도록 꾸준히 만나왔다.
솔직히 내가 파워 E가 아니었다면 이 모임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3~40대의 남자동창들은 한창 자기 자랑에 빠져 있었고 대화엔 자존심이 부딪히는 순간도 많았다.
나는 그들의 자랑을 가볍게 눌러주는 ‘촌철살인’의 역할을 맡아 하늘로 치솟는 자랑을 살짝 끌어내리는 일을 도맡았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괜히 나왔다…” 싶어 마음이 공허해지곤 했다.
솔직히 말해 ‘꼴사나웠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던 우리가 여러 사정으로 올해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얼마 전 송년회를 겸한 오랜만의 만남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모임은 예전과 전혀 달랐다.
어쩐지 모두 편안했고, 안정적이었다.
또래 여자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부담 없는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예전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을 때는 지위와 자식 자랑으로 시작되던 대화가
이제는 “요즘 잠이 잘 안 와.” “허리가 아파서 도수 치료 다녀.”
이런 건강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렀다.
한 친구는 회사 동업자가 사업을 다 까먹어서 손해가 막심하다며 사업의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또 다른 친구는 “괜히 오래 장수하고 싶지는 않아…” 하며 세상살이의 피로를 조용히 고백했다.
무엇보다 남자 친구들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예전엔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틀 안에 스스로를 꽉 눌러 넣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제는 소소한 드라마 한 장면에도 울컥한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내가 갱년기 증상을 말하자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아내의 갱년기 때문에 가족이 힘들었다는 얘기, 본인들도 마음이 공허해지고
작은 말에도 상처받아 문득 마음을 닫아버린다는 얘기를 솔직하게 꺼내놓았다.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이를 먹고 나니 젊을 땐 없었던 ‘느슨한 연대감’이 생긴 것이다.
누가 더 잘 났는지 비교하는 것도 누구의 지위가 높은지 따지는 것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보면, 20대와 30대의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욕심도 많았고, 증명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해도 어딘가 맞물리지 않았고, 어깨를 나란히 해도 마음은 늘 어정쩡한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50대가 되자 삶의 속도가 자연스레 비슷해졌다.
누구도 앞서가려 하지 않고, 뒤처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부모님의 나이, 자녀의 변화, 몸의 반응, 일에서 느끼는 미세한 쓸쓸함까지.
모든 주제가 서로에게 닿아 들어가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날,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너희 얘기를 들어도 잘 들리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됐는데 요즘은 희한하게 다 내 얘기 같더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젊었을 때는 공통점보다 차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와서 마음의 밀도가 비슷해진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남자’와 ‘여자’라는 경계를 넘어서 그저 ‘갱년기’라는 계절을 함께 건너는 친구들이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갱년기는 몸이 주는 경고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오래된 관계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특별한 선물일 수도 있다.
젊을 때보다 더 깊게 통하고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더 쉽게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나이.
50대가 되어서야 우리 친구들은 비로소 하나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