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질병에도 맘이 쪼그라든다.

갱년기! 꼭 그렇게 티를 내야만 속이 시원했냐?

by JIPPIL HAN

오늘도 정형외과 문을 열자마자 대기하고 있다.
9시 오픈에 맞춰 왔는데도, 이미 10명 넘은 대기자가 있다.
세상에…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침의 정형외과 풍경은 마치 작은 공장 같다.
진료실 → 엑스레이실 →진료실→ 물리치료실 → 수납

정해진 코스를 도는 컨베이어 벨트 위 환자들.

이 병원은 도대체 하루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 걸까? 하는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나도 컨베이어 벨트 중 '물리치료실'에 누워있다.

어깨에 레이저를 광선 같은 번쩍거리는 것을 쏘고 있는데 아무 느낌도 들지 않고, 무슨 원리의 치료인지, 효과는 있는 치료인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도, 간호사 언니의 친절도, 이 정형외과 공장의 소음 속에서 영혼 없이 흘러가고 만다.


두 달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어깨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어깨 그까짓거.. 찜질 좀 하고 약 먹으면 낫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사 결과 ‘어깨 회전근 석회건염’. 어깨 회전근에 석회가 생기는 병…

석회가 생기는 과정에서는 증상이 없다가 그 석회가 염증으로 변하면서 지옥의 통증을 준다는 그것.

약도 먹고 물리치료도 꾸준히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다.


나이를 먹고 나니 질병 치유의 속도가 너무나 더디다. 약발이 듣지 않는 느낌이랄까?

젊을 때는 약 한 봉만 먹어도 금새 나아서, 처방해 온 약이 매일 남아돌던 시절도 있었지.

지금은 처방받은 약을 다 먹어도 제자리다.


차도가 계속 없으면 석회를 때려부수는 ‘체외 충격파’를 해야 한다는데 이름부터 너무 무섭다.

성인 남성도 고함을 지르게 만드는 치료법이라고 들었다.

왜 이렇게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만 자꾸 나의 병명 뒤에 따라붙는 걸까.


사실 어깨는 ‘우리 집안 내력’이다.
엄마도 왼쪽 어깨부터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회전근 파열로 수술했다. 그다음은 무릎.
그리고 지금 나는 엄마와 똑같이 왼쪽 어깨가 고장 나기 시작했고 왼쪽 무릎도 슬슬 경고를 보내온다.


엄마가 통증으로 힘든 노후를 보내는 걸 보며 나는 결심했다.
“나는 절대 엄마같이 살지 않을거야. 몸 관리 잘하고 아껴서 늙어서도 여기저기 여행다니고 신나게 살꺼야~"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러닝도 열심히 했건만..

하지만 마음과 달리 결국 엄마와 완전히 똑같은 순서로 몸이 고장 나는 중이다.

사실 이미 앓고 있는 부정맥도 엄마 유전이다.


그렇다고 엄마를 원망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내가 아무리 용을 써봐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싶은 게 서글플 뿐이다.

엄마처럼 시집살이로 고생을 한 것도 아니고 집안일에 목숨 건 적도 없는데, 왜 내 몸은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

질병을 극복할 수 없다는 건 참 서러운 일이다.

“엄마도 그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이제야 엄마의 우울증이 이해가 간다.


어깨가 아프고 나서는 확실히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묵직하게 짓누르는 어깨 통증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짓누른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누워있고만 싶다.

젊은 시절 낮에 침대를 찾는 일은 상상도 못 했는데 요즘의 나는 침대와 친구가 되어간다.

늙는다는 것, 엄마의 뒤를 밟아가는 것, 몸을 짓누르는 무기력함…
이런 것들이 요즘의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정형외과를 나서면 가는길에 안과에도 들러야 한다. 병원 순회공연도 아니고..

요즘 밖에만 나가면 눈물이 그렇게 흐른다.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란다.. 흑..


부디 여기서 더 이상의 병명을 듣지 않고 이 녀석들과 적당히 싸우면서, 벗 삼아 견뎌내며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갱년기! 야! 이 자식아!! 그냥 좀 티 안내고 지나갈 수는 없는 거냐!

멱살 잡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눈에는 온열찜질을 하며 원적외선 치료기의 붉은 광선을 쏘이며 버텨내는 중이다.

나는야 '안드로메다의 붉은 광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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