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오카 공항에 내리니 오후 4시.
“와, 드디어 일본이다.”라는 만족감도 잠시, 곧 배가 너무 고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전에 먹은 프라푸치노 말고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은 게 없었다.
그 와중에 공항 리무진 버스는 무려 40분 뒤에나 온다고 쓰여있다.
버스비(1200엔)를 위한 잔돈도 바꿀 겸 세븐일레븐으로 달려가 쿠키와 음료를 샀다.
3번 탑승장에 줄을 서서 급한 대로 캐리어에 대충 걸터앉아 쿠키를 씹으니 좀 살 것 같았다.
오늘 나 왜 이렇게 굶고 다니는 거지? 여행 온 거 아니었어?
40분 뒤 버스가 도착했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혼자 있다가 잠들었다가는 큰일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정확히 1시간 만에 시즈오카역에 도착했다.
시즈오카역에서 호텔까지는 도보로 8분 정도 걸렸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은 '가든스퀘어 호텔'.
혼자 지내기 딱 좋은 크기에 방 컨디션도 굿이고 가격까지도 착하다.(욕조 겸비, 가격 5만 원대)
호텔에 짐을 풀고 재빨리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오뎅골목에서 혼술이다.
오뎅골목은 좁은 다찌좌석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술을 먹게 되어있어서 혼자 가면 뻘쭘할 수 있지만 그만큼 일본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꼭 한번 사케와 어묵을 맛보고 싶었다.
호텔에서 5분 거리 '아오바 오뎅거리'.
골목에 들어서기 전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막상 낯선 곳에 혼자 들어가려 하니 갑자기 심장이 쿵쾅댄다.
나에게는 파워 J 답게 미리 알아놓은 집이 있었다. 오뎅골목 가장 끝쪽에 있는 'ロマン로망'이란 이름의 가게.
한국인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하다는 후기가 있었다.
이미 가게는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좌석 하나가
비어있길래 나는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그런데...
"いらっしゃいませ!!이랏샤이마세"를 기대했던 내 귀에,
"ごめんなさい。今日はもうしまいです。미안해요.. 오늘은 이미 끝났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이 좀 샜지만 다음 가게를 갔더니 이번엔 자리가 없다.
또 다음 가게, 그리고 또 다음 가게도 재료소진으로 이제는 더는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뭐지? 일본인들이 단체로 나를 보이콧하는 건가?
알고 보니 평일이라서 8시 정도면 파장을 한다고 한다. 영업시간을 알아보는 것을 깜빡한 내 잘못인 것이다.
그러고도 너 J 맞냐? 내 안의 J가 내 어깨를 잡아 흔든다.
이젠 더 이상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 지경이다.
계획이고 뭐고 아무거나 입에 넣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무작정 길을 걷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교자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중국인'이 하는 곳이었다.
일본까지 와서 '중국인'가게를 들어오다니..
뭔가 웃픈 상황이지만, 모르겠다 일단 먹고 보자.
다행히 1인 테이블 하나가 비어있었다.
바로 옆 6인 테이블에서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회식을 하시는지 시끌벅적했다.
나는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생맥주 1잔과 교자를 시켰다.
"すみません。生ビル一本と餃子ください!!!”
하루 종일 굶었다가 마시는 생맥주 한잔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美味しい오이시이.."가 그냥 나오는 맛이다.
숨도 안 쉬고 반 정도를 꿀꺽꿀꺽 마셨다.
"캬~~"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나온다.
옆테이블의 회식자리에서는 혼자 앉아 술을 마시는 나를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배가 고파서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잠시 후 주문한 교자가 나왔다.
우와.. 때깔도 곱기도 하다. 나는 접시에 거의 코를 박고 흡입하다시피 했다.
살짝 베어 물면 육즙이 좌르르 흐르고 겉면은 바삭바삭 그 자체였다.
중국인이 만들었던 외계인이 만들었던 상관없었다.
"生ビルおかわりください。여기 생맥주 한잔 더요~"
나는 생맥주 1잔을 더 시켜서 교자와 함께 나온 족발 파무침과 함께 즐겼다.
갑자기 회식 중인 아저씨 한 분이 나보고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뭐지 혐한인가? 한국인이라고 했다가 어디 끌려가는 거 아니겠지?
한국인 맞다고 했더니 혼자 왔냐고 묻는다.
뭐야 나의 미모? 가 일본에서도 먹히는 건가?
혼자 왔다고 해도 되는 건가?
갑자기 살짝 겁이 났지만 사실대로 혼자 왔다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시즈오카는 소도시라 너무 늦으면 사람이 별로 안 다니니 조심하고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겠어요"라고 하셨다.
친절도 하시지.. 잠시 오해했던 저를 부디 용서하세요.
원래는 혼자 2차를 갈 계획이었지만, 아저씨 말을 새겨듣고 오늘은 이만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첫날인데 그냥 자기는 아쉬우니까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 1캔과 간단한 안주거리,
내일 아침에 배변을 도와줄 요구르트와 오니기리 하나를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들어가 있으니 정신없었던 하루의 피로가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욕조 목욕 후 캔맥주를 따서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여행 첫날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니 정말 내 계획대로 된 것은
교통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걸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안전하게 호텔에 왔으니 된 거라 만족하기로 했다.
비록 기대했던 오뎅골목이 나를 배신하긴 했지만,
내일은 나에게 또 내일의 완벽한 계획표가 있으니까 내일을 기약해보자.
-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