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복선(2)
일본에 도착해서, 일본 휴대폰 통신사 요금제를 가입하기 전 잠깐 사용할 데이터용 esim은 한국에서 미리 구입 후 설치해 두었었다.
그렇게 미리 설치해 둔 esim을 활성화했는데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이 정도는 당황스럽지 않았다.
해외여행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그만큼 esim을 한두 번 사용해 본 것도 아니었다. 원래 처음 켜면 신호가 잡히는 데 시간이 조금 소요되더라.
그렇게 언젠간 되겠거니, 잠자코 기다렸다.
그런데 나보다 늦게 esim을 활성화 한 남편 핸드폰은 곧 신호가 잡히더니 데이터도 켜져서 인터넷까지 되는 것이었다.
그래, 몇 분이나 차이가 난다고 내 휴대폰이 조금 느리게 될 수도 있지 생각하면서도 은근히 무언가 잘못되었을까 조바심이 나서, 내 손가락은 휴대폰 전원을 길게 눌러 재부팅하고 있었다.
재부팅이 되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내 휴대폰은 일본 데이터용 esim을 활성화했음에도 신호를 전혀 잡지 못하고 있었다.
esim 설치용 QR코드를 받을 때 추가 안내 메일에는,
'데이터 이용이 안될 경우 APN을 설정해 주시면 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APN 설정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가 같이 되어있어다. 그 방법에 따라 APN을 설정해 보아도 내 휴대폰은 신호를 못 잡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입국 심사대로 갈 때까지 나는 몇 번이고 esim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esim을 구매했던 업체 고객센터에 카카오톡으로 연락하여 이런저런 지령을 받았다.
그 지령이 직접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고객센터에서는 계속 어떤 화면을 캡처해서 보여달라는 말밖에는 하지 않았다.
순간 아까 설정했던 APN을 한번 삭제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을 삭제하자 곧바로 신호가 잡힌 내 휴대폰이었다.
나는 비행기가 착륙하여 멈춘 후부터 출입국 심사대에 도착해서까지 약 40분가량을 휴대폰과 사투를 벌인 끝에 아무런 탈 없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출입국 심사대가 아닌, 비자를 가지고 재류카드를 받을 수 있는 심사대로 가야만 했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 후 심사대에 도착하니 우리 앞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예닐곱 정도 되는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 당 시간은 약 5~10분 정도 소요되는 듯했고, 우리는 심사대에 줄을 선 시점으로부터 약 50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심사부터 공항을 나가기까지는 순조로웠다. 나중에, 한국에서 보낸 살림들을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세관 서류도 무사히 제출했고 이제는 공항에서 열차를 타고 도쿄역까지 간 후, 신칸센으로 갈아타 우리가 앞으로 생활할 센다이로 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JR 기차 발매 창구에서 도쿄역까지 가는 기차표와 도쿄역에서 센다이까지 가는 신칸센 티켓까지 한 번에 구매하고 나니 이제야 조금 홀가분해진 느낌이었다.
드디어 내 머릿속에는 센다이에 가면 뭘 하고 지낼지, 어떤 맛있는 것들을 먼저 먹을지에 대한 것 등 기분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긴 것이었다.
우리가 예매한 기차도 예매한 시간으로부터 얼마 기다리지 않고 탑승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광판에서 우리가 타야 할 기차의 플랫폼 번호를 확인한 후에 길을 잃지 않고 플랫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기차는 이미 도착해서 대기 중인 상태였지만, 내부 청소 중으로 아직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여기까지 오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던 우리였다. 드디어 잠깐 생긴 여유에, 남편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나 물이라도 사 오겠다며 자판기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빈 손으로 돌아오는 남편.
마실 만한 게 없냐고 묻는 나에게 남편은 "내 지갑이 어디 있지?"라고 되받아쳤다. 남편이 가지고 있어야 했을 남편의 지갑이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심지어 내 가방에도 없었던 것이었다.
"설마 아까 기차표 예매하고 거기에 놓고 온 거 아니야?"
내 말에 남편은 잠깐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게 그런 표정을 짓고 깨닫고만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앞으로 기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10분도 채 남지 않았었으니까.
"빨리 갔다 와봐!"
나는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 후, 제발 기차가 떠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하염없이 휴대폰 화면에 뜬 시계가 1분씩 늘어나는 것만 지켜보고 있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