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묵상과 힌두교, 불교의
명상 비교

by 전영칠

1. 기독교의 명상에 대한 판단


기독교에서 '명상'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명상의 종류, 목적,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기독교 내 교파나 신학적 경향에 따라서도 다른 견해를 보인다.


1) 기독교 전통 내의 명상적 요소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명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그와 유사한 영성 훈련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주로 하나님과의 관계 심화, 말씀의 깊은 이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목표로 한다.


성경적 묵상 :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깊이 생각하고 되새기며 그 의미를 깨닫고 삶에 적용하려는 실천이다. 시편 1편 2절의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려는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성경 말씀을 1) 천천히 읽고(lectio), 2) 묵상하고(meditatio), 3) 기도하고(oratio), 4) 관상하는(contemplatio) 고대 기독교의 전통적인 말씀 묵상 방법이다.


관상 기도 : 언어나 특정한 생각의 흐름을 넘어,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고 그분과의 직접적인 사귐을 추구하는 기도이다. 이는 분석적이거나 논리적인 사고보다는 직관적이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중시한다. 사막 교부들의 전통이나 중세 신비가들의 영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기독교 전통 내의 묵상과 관상은 하나님 중심적이며, 성경 말씀에 기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2) 현대 사회의 다양한 명상과 기독교의 입장


현대 사회에서는 동양 종교의 영향이나 심리 치료적 목적으로 다양한 명상법이 소개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명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 챙김 명상>



기원 및 특징: 불교 수행법에서 유래했으나, 종교색을 빼고 심리적 안정, 스트레스 감소, 집중력 향상 등을 위한 세속적인 명상법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현재 자신의 생각, 감정, 신체 감각을 판단 없이 알아차리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기독교적 수용 가능성 및 긍정적 측면

일부 기독교인들은 마음 챙김 명상을 스트레스 관리나 집중력 향상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더 깊이 느끼고, 일상의 작은 것들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주의점 및 비판적 관점:

마음 챙김의 불교적 뿌리와 세계관(예: 공사상, 무아설)이 기독교 신앙과 혼합되거나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명상의 궁극적인 목표가 해탈이나 열반과 같이 기독교의 구원관과 다른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한다.


명상의 목적이 하나님과의 관계나 그분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심리적 평안이나 스트레스 해소에만 맞춰질 경우,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기독교는 고통을 피하거나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신앙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마음 챙김이 단순히 고통을 회피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십자가를 통한 구속과 고난의 의미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과 배치될 수 있다.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고 공허한 상태로 머물거나 다른 영적인 것에 열리게 될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초월 명상 (TM) 및 기타 특정 종교/사상 기반 명상>


힌두교 등 특정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한 만트라(주문)를 반복하거나 특정 구루(스승)나 신적 존재에 대한 의존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문제점:

기독교는 유일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적 존재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 특정 만트라나 구루에 대한 헌신은 이러한 기독교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

범신론적이거나 다신론적인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명상법은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과 조화되기 어렵다.

이러한 명상법들이 제시하는 깨달음이나 해탈의 방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 다르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3) 기독교 교단/지도자들의 다양한 견해


일부 기독교 상담가나 영성 지도자들은 마음 챙김 명상 등의 기법을 심리치료나 영성 훈련의 유용한 도구로 보고, 기독교적 가치와 통합하여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명상의 '기술'과 '종교적 배경'을 분리하여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많은 보수적인 교단이나 신학자들은 동양 종교에서 유래한 명상법의 종교적 배경과 세계관이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으며, 오히려 영적인 혼란이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일부는 명상의 유익한 측면(스트레스 감소 등)을 인정하면서도, 그 목적과 방법을 기독교 신앙의 틀 안에서 신중하게 분별하여 수용해야 한다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다.


4) 기독교적 명상의 핵심 원칙 및 분별 기준




기독교인이 어떤 형태의 명상이나 묵상 훈련을 접할 때, 그것이 성경적인지 분별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명상의 초점이 누구 또는 무엇인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경 말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 공(空), 우주 에너지, 혹은 다른 신적 존재인가?


무엇을 위해 명상하는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더 깊이 하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단순히 개인적인 평안, 스트레스 해소, 초능력 개발, 혹은 신과의 합일(자신이 신이 되는 의미)을 추구하는가?

그 방법이 성경의 가르침이나 기독교 전통과 배치되지 않는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특정 기법이나 주문에 의존하는가?

그 결과가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 갈라디아서 5:22-23)로 나타나는가? 아니면 교만, 자기 의, 혼란, 혹은 다른 종교적 신념으로 이끄는가?


기독교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교제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기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다. 이는 하나님 중심적이며 관계 지향적인 특징을 갖는다.


현대 사회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명상법에 대해서는 그 기원, 철학적 배경, 목적, 방법, 그리고 실제적인 열매를 기준으로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분별해야 한다. 단순히 심리적 안정이나 건강상의 유익만을 추구하여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 멀어지거나 영적인 혼란을 겪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기독교인에게 권장되는 '명상'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말씀과 기도 중심의 영적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2. 묵상과 명상, 상호존중과 교류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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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독생자를 믿는 종교다. 독생자는 유일함을 전재로 한다. 기독교는 쉽게 말해 '오직 예수', '오직 성경'이다. 기독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리고 누가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 '오직 예수' 이것이다.

구약의 내용처럼 우상을 배척한다. 사탄의 개념도 강하다.

그만큼 타 종교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다. '사찰을 없이하여 주시고···'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구교, 신교, 유불선, 민족종교 등 다양한 종교가 함께 살아간다.

불교와 성당에서 석가탄신일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축하현수막을 교환하기도 한다.

명동성당에서 비구니가수 스님이 '아베마리아'를 열창해 감동을 주기도 한다.

중동처럼 유대교와 이슬람교와도 같은 전쟁도 없다. 그런 한국의 종교문화를 보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기도 한다.

종교계에서 40년 전의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켸켸 묵은 논쟁이 아직도 보이기도 한다.

사도바울은 '만교의 하나님'이라 했다.


기독교와 유불선은 한식으로 말하면 밥과 국, 반찬과도 같다. 밥만 먹어서는 건강할 수 없다. 반찬도 먹어야 한다. 서로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

기독교 묵상의 장점도 있고 불교 명상의 장점도 있다. 묵상과 명상은 구원과 해탈의 방편일 뿐이다.

불교에서 묵상기법을 써먹었다고 불교 신앙이 무너지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에서 명상기법을 써먹었다고 기독교신앙이 무너지는 게 아니다.

혼란이 올 거라면, 신앙에 문제가 생긴다면 상대방 기법에 손대지 않는 것이 차라리 좋다. 자신 있고 더 자기의 신앙에 도움이 될 거란 이들만 이들 방편을 써먹으면 될 것이다.


힌두교에도 인격신 교리가 있다(이쉬와라). 비인격신 교리만 있는 게 아니다.

어차피 인류공동체이니 종교끼리 전쟁하는 네안데르탈인식의 무식한 범죄는 다시는 해서는 안될 것이다.

상대방 종교를 멸망시켜 달라는 기도는 총만 안 들었지 마음으로 하는 전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묵상과 명상은 상호존중의 가능성은 열고 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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