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티베트 라사
베다철학을 바탕으로 한 힌두교, 그리고 인도에서 발생하여 동북, 동남아를 비롯해 구미에까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종교이다. 이번 장에서는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는 티베트 불교의 살아있는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며, 전 세계적으로 평화와 자비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신적 지도자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조국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비폭력 저항을 통해 티베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해 왔다.
1935년 7월 6일, 티베트 북동부 암도 지방의 작은 마을 탁체르에서 '라모 톤둡'이라는 이름의 아기가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2살이 되던 해,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를 찾던 수색대에 의해 여러 가지 신비로운 징표들을 통해 환생자로 지목되었다.
당시 티베트의 섭정은 성스러운 호수인 '라모이 라초'에 비친 환영을 통해 환생자가 태어난 곳의 지형적 특징을 확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색대가 라모 톤둡의 집을 찾아냈다. 어린 라모 톤둡은 전대 달라이 라마의 유품들을 정확히 골라내며 자신이 환생자임을 증명했다고 전해진다.
1940년, 4살의 나이에 그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에서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로 공식 즉위했다. 이후 엄격한 교육과정을 통해 불교 철학, 의학, 논리학 등 다방면에 걸친 전통 교육을 받으며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길렀다.
평화롭던 그의 삶과 티베트의 운명은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침공하면서 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15세였던 텐진 갸초는 공식적으로 정치적 권력을 이양받아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중국의 압박은 갈수록 심해졌다.
1959년 3월, 중국의 통치에 저항하는 대규모 민중봉기가 라싸에서 일어났고, 중국군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달라이 라마는 결국 그해 3월 17일, 티베트를 떠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하는 고난의 길에 오른다.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정착한 달라이 라마는 그곳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함께 망명한 수만 명의 티베트인들을 이끌었다. 그는 티베트의 독립과 문화 보존을 위해 국제 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조국의 현실에 좌절한 동포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의 투쟁 방식은 철저한 비폭력주의에 입각해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을 받은 그는 무력 사용을 단호히 반대하며, 대화와 상호 존중을 통한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는 티베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적인 상징이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망명 기간 동안 전 세계를 순회하며 불교의 지혜와 자비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보편적 책임감을 강조하는 그의 가르침은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그는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데 앞장섰다. 이러한 그의 헌신적인 활동을 인정받아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티베트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폭력 사용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며 그의 비폭력 평화 운동을 높이 평가했다.
2011년, 그는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정치적 지도자의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에게 정치적 권한을 이양했다. 이는 티베트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현재 9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리고 전 인류의 영적 스승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평화와 자비의 등불을 밝혀온 위대한 여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자애명상(慈愛冥想), 또는 '메타 명상'은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처음 제시한 방법이 아니라, 약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불교의 핵심적인 수행법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자애명상의 창시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이 고대의 지혜를 현대 사회에 맞게 재해석하고 그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자애명상의 기원은 초기 불교 경전인 팔리 캐논의 '자애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전에는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모든 존재에 대해 차별 없는 사랑과 친절함을 키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처럼 자애명상은 불교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온 전통적인 수행법이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자애명상의 현대적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특정 종교의 틀을 넘어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세속적 윤리'와 '자비'를 강조해 왔다.
달라이 라마는 그의 저서 『종교를 넘어』 등 다양한 저술과 전 세계를 순회하는 강연을 통해, 자애명상과 같은 자비심 훈련법이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찾고, 더 나아가 인류 공동체의 화합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임을 널리 알렸다.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종교가 인류에게 깊은 위안과 영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끔찍한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의 인류 공동체로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넘어서,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경험과 이성, 그리고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세속 윤리'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히 윤리적 당위성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세속 윤리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리적 토대를 세우고, 그것을 우리 삶 속에서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마음 훈련법까지 체계적으로 안내하는 실천적 지혜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종교를 넘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제1부: 새로운 세속 윤리를 향하여
달라이 라마는 먼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딜레마를 진단한다. 과거 대부분의 사회에서 윤리와 도덕은 종교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전례 없는 다원주의 시대를 맞이했다.
수많은 종교와 신념 체계가 공존하며, 각자의 교리를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할 때 이는 화합이 아닌 갈등의 불씨가 된다. 특정 종교의 윤리관을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이나 비종교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과학의 발달과 세속화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종교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들에게 종교적 교리에 기반한 윤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종교의 영향력이 약화된 자리에는 물질만능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가 들어서기 쉽다. 이는 공동체의 붕괴와 환경 파괴, 심각한 불평등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는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이고 공통된 윤리의 토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달라이 라마는 역설한다.
달라이 라마가 제시하는 '세속 윤리'의 '세속'은 반(反) 종교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도 헌법의 정신처럼 모든 종교를 존중하되,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포용적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보편적 윤리의 기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는 거창한 철학이나 신의 계시가 아닌,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경험에서 그 답을 찾는다.
모든 인간, 나아가 모든 생명체는 행복하기를 바라고 고통을 원치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는 인종, 종교, 문화, 성별을 초월한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조건이다.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보살핌에 의존하며, 우리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집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은 타인의 노고 덕분이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윤리의 출발점이다.
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어머니(혹은 주양육자)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 최초의 친밀한 관계에서 우리는 신뢰와 애정, 공감 능력을 배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자비의 원초적 씨앗이다.
결론적으로, 세속 윤리는 "나와 똑같이 다른 사람도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에 대한 깊은 인식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상호의존성에 대한 통찰에 그 뿌리를 둔다.
제2부: 내면의 수련
달라이 라마는 윤리적 삶이란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2부에서는 자비심을 기르고 파괴적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구체적인 내면 훈련법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이는 '마음의 위생'을 가꾸는 과정과 같다.
자비는 인간의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의식적인 노력과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더욱 계발되고 확장될 수 있다.
자비심의 기초는 공감,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이다. "만약 내가 저 사람의 상황이라면 어떨까?"라고 자문하며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
단계적 확장: 훈련은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한다.
나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들의 고마움을 되새기며 자비심을 일으킨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처럼 나에게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은 사람 역시 나와 똑같이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을 명상한다.
가장 어려운 단계로,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조차도 무지와 고통 속에서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을 뿐, 근본적으로는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들의 파괴적인 행동과 그 사람 자체를 분리해서 보는 훈련을 한다.
최종적으로 이 자비심을 특정 대상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생명체로 확장한다.
이러한 훈련은 이성적 분석("모든 존재는 행복을 원한다")과 감성적 집중(실제로 자비로운 느낌을 마음속에 유지)을 결합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윤리적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분노, 증오, 탐욕, 질투와 같은 파괴적인 감정들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게 한다.
파괴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억누르거나 무작정 터뜨리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관찰해야 한다. "분노는 나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인간관계를 망치며, 결국 나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그 힘이 약화된다.
각각의 파괴적인 감정에는 그에 상응하는 해독제가 있다.
* 분노의 대상이 된 사람의 인간적인 면을 보려 노력하고, 인내심을 통해 반응을 지연시키는 훈련을 한다.
* 자신이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기른다.
* 두려움의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선한 본성과 잠재력에 대한 믿음을 키운다.
이러한 마음의 훈련은 일시적인 기분 전환이 아니라, 뇌의 신경회로를 바꾸는 것과 같은 장기적인 과정이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파괴적 감정의 발생 빈도와 강도를 줄여나갈 수 있다.
책임감 있는 세계 시민을 향하여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계발된 내면의 윤리가 어떻게 사회 전체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한 사람의 평화로운 마음은 가정과 직장, 공동체에 긍정적인 파문을 일으킨다. 진정한 세계 평화는 수많은 개인들의 내면 평화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러한 세속 윤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 학교 교육 시스템에 통합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지식 교육과 더불어 '마음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감과 자비, 감정 조절 능력을 배운다면 세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국경을 넘어 '하나의 인류'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기후 변화, 빈곤, 전염병 등 전 지구적 문제는 어느 한 국가나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나의 행복이 모든 이웃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보편적 책임감'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종교를 넘어』는 종교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종교가 더 이상 유일한 답이 될 수 없는 시대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희망의 선언문이다. 그 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는 자비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을 꾸준한 훈련을 통해 키워나가는 내면의 혁명을 통해 열린다고 이 책은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