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보며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마르크 샤갈 특별전'에 참석했었다. 샤갈이란 화가를 이 작품전을 통해 처음 접해보는데,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봐도 아름다운 작품들이 넘쳐났다. 특히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림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어떤 것 보다도 숭고한 감정인 '사랑'이 들어있었다.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가족에게서 태어났다. 청어상인 밑에서 일하는 아버지(그는 이 때문에 그림에 자주 물고기를 등장시켰다)와 야채를 파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화가 인생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못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가서 그림을 배우던 나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일어난다. 고향 근처의 비테프스크를 갔다가 첫 번째 배우자이자 마르크 샤갈의 다수의 그림의 모델인 벨라 로젠벨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그의 회고록인 '나의 삶'에서 벨라 로젠벨트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마르크 샤갈의 명성에 영향을 끼친 다수의 그림들을 탄생시키게 만든 장본인이 등장한 셈이었다. 마르크 샤갈의 작품은 이때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하게 된다. 마르크 샤갈은 이전까지는 자연주의적 초상과 풍경을 그렸다. 벨라와의 만남 이후로 샤갈은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그리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꽃다발'은 사랑의 상징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자신의 생일을 까먹고 있던 마르크 샤갈은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묻는 벨라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런 그를 귀엽게 여긴 벨라는 그에게 키스하며 꽃다발을 선물한다.(마르크 샤갈이 이때를 회고하길, 온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위 그림이 그때의 순간을 그린 대표작 <생일>이다.
세계대전으로 불안했던 정세도 둘의 사랑을 가로막지 못했다. 부유한 보석상 유대인 가족인 벨라와 가난뱅이 유대인 화가인 샤갈 사이에도 시련은 존재했지만, 그 시련조차 그들의 사랑을 막지 못했다. 그의 작품들은 몽환적인 사랑을 담은 작품들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벨라가 있었다.
나는 도슨트 님의 설명을 들으며 이 화가의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하다고 느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들도 함께이기에 두렵지 않았다. 나는 미술관에 전시된 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둘러보았다. 꽃다발이다. 그의 후반기 그림의 중심에는 언제나 꽃다발이 있었다. 벨라에게 처음으로 선물 받았던 그 꽃다발이.
이 화가와 뮤즈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그의 사랑은 벨라와 사별하고 재혼을 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벨라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8개월간 그림을 멈췄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의 그림을. 꽃과 풍경에 담긴 색채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가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비록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남겨진 사람은 떠난 사람을 잊지 않았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녀를 알리기 위해 잠깐의 멈춤 이후로 멈추지 않고 그림을 계속 그려나갔다. 이 사랑이란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지! 이별도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지 못했다. 이 사랑에 무슨 이름을 붙일 수 있으랴!
마르크 샤갈이 왜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게 되었는지. 왜 마르크 샤갈의 작품 속 주제가 사랑인지 나는 이번 특별전에 참여함으로써 알게 되었다. 역시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는 미술관에서 관람하며 그림 속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이 특별전에 참석해 이 화가의 숭고한 사랑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