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땅

소송의 씨앗이 되다

by 서울

이쯤에서 아버지가 남긴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20여 년 전 제주로 내려가 농사를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단감을 좋아하셔서 단감나무를 심으셨고, 제주답게 귤나무도 있었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에는 녹차 농사에 정착하셨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 땅은 20년 전 허허벌판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씩 하나씩 가꾸어 온 땅이다. 매일 풀을 베고 나무를 심고 일꾼들을 데리고 날마다 땀 흘려 일을 하셨다.

제주에는 태풍이 잦다.

비닐하우스가 주저앉고, 나무가 뽑히고, 매년 피해가 반복되었다.

초보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쓰러진 시설을 몇 번이나 다시 세우며 버텨냈다.

한 번은 지역신문 1면에 폐허가 된 아버지 농장 사진이 나온 적이 있을 정도였다.


10여 년이 지나서야 경력이 쌓이고 아버지도 녹차 농사에 전문성이 생겼다.

그럴듯한 녹차밭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여름마다 제주도에 내려갔고 갈수록 예뻐지는 녹차밭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농장 주변의 길도 정비하셨다. 주변 농장주들의 동의를 하나하나 얻어 도로도 넓혔고 마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이건 나의 짐작이지만, 아버지는 첫 결혼에 실패하고 자식들도 키우지 않았던 터라 죄책감을 어느 정도 갖고 사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몸을 쓰는 농사일에 몰입하셨던 것 같다. 아마도 이 땅을 자식처럼 돌봤던 게 아닐까 싶다.

내 아이들은 방학마다 외가로 내려가 농장에서 뛰놀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무뚝뚝하셨지만,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셨다.




아버지는 소장을 받기 8개월 전에 쓰러지셨다.

병원에서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이 땅을 네가 살 수 있겠니?”
나는 병원으로 내려갔다.

돈이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매달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모두 이별이 가까운 줄은 몰랐다.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됐고, 한 달 반 만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계약은 결국 하지 못했다.

마지막 병상에서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너의 형제들이 문제를 일으킬 거다.”
나는 “그럴 리가요”라고 대답했었다.


어머니와 내가 장례를 치르고 20여 년간 연락이 끊긴 형제들에게 연락을 했다. 법적 비율대로 상속재산 분할을 하였다. 상속자들은 땅을 잘 가꾸어 놓고 좋은 상태로 팔기로 하였는데 아버지가 팔려고 했었던 것처럼 제주의 땅은 쉽게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그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상속등기를 마치자마자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만약 그때 내가 아버지의 땅을 계약했더라면 형제들의 유류분 소송의 피고가 되었을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선택했어도 소송을 피할 수 없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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