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바짝 차리고 하나도 빠뜨리지 말아야
우리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쓰기로 했다. 나는 그런 게 뭔지도 몰랐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이만 먹었지 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언니는 안 보던 사이 법률대학원에서 법학 석사를 받았다.
미국에서도 법학 석사를 받아왔다.
그냥 법 전문가였다.
"그래. 그럼 언니가 협의서를 쓰면 되겠네" 나는 그렇게 얘기했다.
언니는 협의서 초안을 만들어서 나에게 보내왔다.
법을 모르는 나였지만 조금 이상했다. 토지에 대해서 법적지분대로 나누는 초안이었다.
그런데 비용이나 채무에 대한 조항이 없었다.
채무와 비용에 대해서도 써 두는 게 어때?라고 물었고 언니는 그건 다 법적 비율대로 자동으로 나눠진다고 했다. 그럼 토지도 쓸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점점 이상했다.
내가 그래도 써 두자고 수차례 이야기 하여 상속 비용과 채무에 대한 조항도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하였다.
이 협의서로 상속재산등기를 마쳤다.
이 과정은 나의 형제들에게는 소송 전에 해야 할 중대한 일이었다.
이후 공유물분할청구소송이 시작되었다.
상속재산분할협의서, 왜 그렇게 중요한가?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고, 재산 조회까지 마쳤을 때 비로소 “이제 끝났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상속은 그제야 진짜 절차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민법에 따르면, 사람이 사망하면 그 순간부터 상속인의 지위가 자동으로 발생한다.
재산은 법정 상속인들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형식’ 일뿐이다.
실제로는, 그 재산을 누가 얼마큼, 어떻게 가져갈지를 상속인끼리 합의해야 한다.
상속재산분할협의서란?
여러 명의 상속인이 있을 때, 누가 어떤 재산을 어떻게 상속받을지 서로 합의한 내용을 명확하게 문서로 남긴 것이 협의서다.
이 문서가 있어야만 부동산 등기 변경, 금융자산 해지, 상속세 신고 등 현실적인 절차들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특히 부동산의 소유권 이전을 하려면 공동상속인 전원의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협의서가 필수다.
모두 모이지 않더라도 의사 표현과 서류 날인은 정확히 있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상속인의 범위와 순위는 이렇게 정해진다
우리나라 민법상 상속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순위: 직계비속 — 자녀, 손자녀 등
2순위: 직계존속 — 부모, 조부모 등
3순위: 형제자매
4순위: 4촌 이내 방계혈족 — 삼촌, 고모, 사촌 등
상속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1순위가 있으면 2순위 이하는 상속권이 없다.
예를 들어 자녀가 있다면 부모는 상속권이 없다.
법정 상속비율은 이렇게 나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사망하고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상속인이라면:
배우자: 1.5
자녀: 각각 1
총 3.5등분 중, 배우자는 3.5분의 1.5, 자녀는 각각 3.5분의 1씩 상속받게 된다.
하지만 이 비율은 협의로 조정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녀 한 명이 모든 재산을 상속받고 다른 자녀는 상속포기 후 일정 금액만 받기로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
협의서 작성 전 꼭 확인할 체크리스트
모든 상속재산을 빠짐없이 기재해야 한다. 부동산, 예금, 주식, 보험금, 자동차, 골동품,
심지어 포털 계정 포인트 같은 온라인 자산까지도 확인하는 게 좋다.
재산의 배분 방식도 명시해야 한다.
부동산은 누구 몫인지, 예금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시가 기준인지, 비율 기준인지도 명확히 써야 한다.
장례비, 상속세 등의 부담 방식
예: 병원비는 배우자가 부담, 상속세는 자녀들이 균등 부담 등
상속 부채에 대한 정리
예: 아버지의 채무 5천만 원, 자녀들이 1/2씩 부담 등
공동재산의 향후 처리 방식
부동산을 공동소유로 둘지, 매도해 분할할지 구체화
분쟁 소지가 있는 항목 확인
보험금, 보증금, 사망 직전 인출금 등 누락 방지
미기재된 재산이 나중에 발견되었을 때의 처리 방안도 명시 가능
전 상속인의 서명·날인 및 인감증명서 첨부
실제로 한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괜찮지만,
모든 상속인의 동의와 날인이 있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강력 추천)
법적 해석이 애매하거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수록 전문가의 중재와 검토가 중요하다.
내가 범한 실수가 있다. 아니 많다.
처음엔 ‘이런 건 어렵지 않겠지’ 싶었다.
게다가 법학 전공인 형제가 초안을 가져와 보여줬기 때문에 아무 의심 없이 서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문제가 하나씩 드러났다. 상속비용과 채무에 대해서는 나의 요구로 기재했지만
특정 예금이 누구 몫인지 명시되지 않았고
상속등기 후 부동산을 어떻게 매매할 지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고
농장의 관리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빠져 있었다.
결국 그 모호한 합의서 한 장 때문에 몇 년간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송 비용, 감정 소모, 가족 간 단절… 그중 무엇 하나 가볍지 않았다.
언니와 동생은 추후에 소송을 걸기 위해 듬성듬성 비어있는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만들었고 그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분노가 일었고 나의 무지함에 후회했다.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는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다.
불필요한 분쟁 즉 소송을 막아주는 계약서이다. 소송을 위해 합의서를 쓰는 사람은 없다.
제대로 작성된 협의서 한 장이 수년의 시간낭비를 막을 수 있다.
적은 비용이라도 전문가의 손을 빌려 정확하고 꼼꼼하게 작성하는 것이
지금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믿는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합의는 기록으로 남기고, 서로 납득할 수 있도록 확인하는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처럼 돌아서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