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결국, 나답게 해내는 힘이에요.”
아이 책상 위에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었어요.
수학 문제를 푼 흔적은 없고,
노래 제목과 그림, 그리고 알 수 없는 글씨들이 엉켜 있었죠.
“공부 안 하고 낙서만 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멈췄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아이만의 정리 방식이었고,
생각을 연결하는 도구였더라고요.
우리는 자라면서
“공부는 책상에 앉아, 연필을 쥐고, 조용한 데서 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 방식이 '성실함'의 표준처럼 여겨졌죠.
하지만 모든 아이가 그 틀에 들어맞진 않아요.
소리 내어 읽는 걸 좋아하는 아이,
움직이면서 외우는 아이,
노트보다 영상으로 더 잘 이해하는 아이…
공부에도 스타일이 있다는 것.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지도는 통제가 아니라 ‘지원’이 됩니다.
부모가 보기엔
“폰 보면서 딴짓” 같은데,
아이 입장에선 유튜브 요약 강의로 개념 정리 중일 수도 있어요.
부모는 “왜 하라는 대로 안 해?”라고 말하고,
아이는 “왜 내 방식은 무시해?”라고 느낍니다.
이 간극을 좁히지 않으면
서로가 지치는 악순환이 반복돼요.
공부의 결과보다, 과정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방식, 너한텐 효과 있어?”라는 한마디가
아이를 존중받는 존재로 만들어주죠.
가끔 우리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기준 삼아 아이를 평가합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공부했어.”
“엄마는 독서실 책상에서 집중을 잘했는데.”
하지만 아이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고,
뇌의 정보 처리 방식도,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도 다릅니다.
존중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가르치는 것'보다 '지켜봐 주는 것'이 먼저예요.
아이가 “이건 이렇게 해보면 좋겠어”라고 말할 때,
그걸 한 번이라도 실험해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자기주도 학습의 시작입니다.
효율적인 방법을 ‘배우는 아이’보다,
스스로 발견해가는 아이가 더 오래 멀리 갑니다.
‘이게 너한텐 맞는 것 같구나’,
‘이 방법 말고 다른 것도 시험해볼래?’
이런 피드백은 아이를 스스로 성장하게 만듭니다.
지금 우리 아이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면,
그건 ‘다른 길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라는 뜻일지도 몰라요.
그 길을 인정하고,
함께 지켜봐 주는 부모,
그런 당신의 시선이
아이를 결국 자기 방식의 성공으로 이끌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