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섰으나, 결코 혼자는 아닌
나는 들판 위에 서 있다.
모든 것이 나와 같은 색이고
모든 것이 나보다 더 풍성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볕은 조용히 지나가고 바람은 말없이 스친다.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았고,
어쩌면 내가 없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존재의 이유가 아니라,
내가 맡은 몫이 있다고 믿었기에.
외로웠다기보다는 그냥 조용했다.
이제는 내가 자라고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그저 하루하루 잎을 펼치고 가지를 늘리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어느 날, 커다란 바람이 불었고
나는 기울었다.
쓰러질 것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그저 버티고만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곁의 나무들은
여전히 똑바로 서 있었다.
마치 내가 흔들린 적이 없었다는 듯.
그제야 알았다.
내가 기울어진 만큼 너희도 나에게로 기울어
눈을 맞춰주고 있었구나.
내가 뿌리내린 이 들판엔
보이지 않는 온기들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나는 홀로 섰지만, 홀로 자라진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옆에서
같은 기울기로 조용히 함께 흔들릴 수 있는
나무가 될 수 있기를.
그들도 결국엔 홀로 서겠지만,
결코 혼자는 아니었음을 떠올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