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집수리 교육 및 봉사활동 참여자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그 앞에서 절로 발길이 멈춰졌고, 아래 활동 내용에 적힌 노후 벽지, 수전, 전기용품 교체라는 문구 중 '노후 벽지'라는 단어는 유독 크게 다가왔다. 한동안 접고 있었던 셀프 인테리어라는 소망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리며 몸부림쳤다. 바로 신청하라는 다그침의 물결은 이내 부서질 듯 위협하며 포효하는 파도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순간 기막힌 행운이 절로 굴러들어 왔다고 생각했다. 숨돌릴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플래카드에 있는 번호를 찍어 눌러 전화를 걸었다. 해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앞선 탓일까. 전화받은 이는 얄미우리만큼 차분한 목소리로 나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 한마디를 남겼다. "다른 지역 주민은 신청 권한이 없습니다. 지금 신청자가 두 명 미달인데 열흘가량 남은 기간 중 추가 신청자가 없으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그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끊임없이 퍼져 나오면서 잊고 있던 지난날을 소환하는 것이 아닌가. 퇴직 직후 배움 카드로 도배를 배우려고 전화 문의를 했을 때였다. "나이순으로 선발하니 안 될 수도 있다."라는 무심하고 괘씸했던 그 말을. '안되면 그만이지.' 지난 경험이 알려준 탓에 일렁이는 욕심도 희망도 내려놓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이런 속마음은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새 나는 휴대전화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마감일이 빨리 다가오길, 혹시 울릴지도 모를 함께 하자는 문자메시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활동이라는 명목보다 교육이라는 말에 꽂힌 사심이 들킬까 봐 마감일이 지난 다음 날 바로 전화로 확인도 하지 못했다.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릴 무렵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다음 주 화요일 오후 2시 교육이 있습니다.'라고.
교육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곳에서 재능을 기부하려는 건축사와 인테리어 전문가, 그리고 봉사 꿈나무 동기들을 만났다. 전기용품 교체에 필요한 초보자들을 위한 배움이 있었다. 목적은 봉사지만, 추가 두 번의 전등 교체 봉사가 끝날 무렵 내 집 전등 정도는 스스로 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스위치 커버를 여는 방법부터 전기 회로와 배선 연결에 필요한 자재와 공구 사용법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연신 고개가 끄덕여졌고,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쏟아져 나왔다. 두 번째 교육은 봉사활동 현장에서 전등 교체 실습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기에 무지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물음표투성이지만 마지막 도배 봉사가 있을 때까지는 버텨내야지.
일주일 뒤 실습 겸 관찰을 위해 현장으로 나갔다. 사전에 전등 교체를 신청한 이들의 집 두 곳을 방문했다. 한 곳은 노부부가 거주하는 곳이었고, 나머지는 독거노인의 집이었다. 문제가 있음에도 바라만 볼 뿐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던 이들의 얼굴에는 무표정과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전등으로 이어지는 전기부터 차단한 뒤 전등 아래 갖다 놓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교체해 주는 봉사가 진행되었다. 전문가가 전등 교체하는 방법을 설명하며 보여주었고, 나는 용기 내어 사다리 위에 올라서서 떨리는 손으로 직접 새로운 전등에 전선을 연결하는 기회도 가졌다. 교체된 전등에서 쏟아져 내린 불빛은 노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만들었고, 집안에 온기까지 더해 주었다. 기술을 가진 이가 부럽고, 그 기술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 노력하는 마음이 존경스러운 순간이었다.
인생 후반부에 만나는 새로운 무언가는 언제나 설렘과 더불어 활력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나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면 내가 더욱더 행복해지고, 그 일로 가장 이득을 얻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책 속의 한 문장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이런 마음을 담아 의도적으로 찾아 나선 길 위 현장에서 또 하나의 행복을 만났다. 전기나 수전 교체는 어렵겠지만, 도배 봉사는 꼭 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살며시 품어 본다.
나를 위해, 그리고 그 누군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