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대학생
‘2026 **** 입니다.’.
문자로 전송받은 내 학번이다. 퇴직 후 한 문장에 이끌려 지난 두 학기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을 배웠다. 마음이 머무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와 가족의 일상을 글감으로 몇 편의 글을 써 보았다. 완성된 글 속에 어설픈 공간들이 꿈틀거리며 스며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이후부터 쉬이 펜을 들지 못했다. 글쓰기가 어려워지면서 멈춤도 잦아졌다. 지난날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선택한 것이 경남정보대학교 디지털 문예창작과다.
나의 글들은 내가 봐도 딱딱하고 사실 지향적이다. 심상도 사유도 없다. 누군가가 기나긴 공무원 생활에서 밴 습관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으리라. 단단하게 붙잡고 뿌리치려 했건만 여전히 문학의 형체는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도 없다. 제출한 몇 편의 글이 합평을 통해 성장한 모습으로 되돌아왔을 때면 부족한 부분이 더없이 또렷하게 보였다. 습관이란 허물을 벗기 위해 허우적거렸건만, 어느새 원래의 글이 굳게 터를 잡고 있어 자신감도 그 속에 함께 묻혀버렸다.
한 편의 글이 탄생하기까지 긴 호흡이 필요했다. 고뇌 속에 힘겹게 완성한 글마저 매번 제자리를 맴돌기 일쑤였다.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 백지의 여백은 늘 그대로인 채 머물다가 결국 덮어버리길 반복하였다.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성장이란 탈출구로 찾아낸 것이 글 쓰는 신중년들이 모인다는 대학이었다. 문학을 배우면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예순 언저리, 이제 벗어날 때도 되었건만 도전에 따른 낯선 환경은 언제나 예민함을 동반했다. 며칠 전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는 문자를 받고 다가올 대학 생활의 불안을 내려놓을 겸 캠퍼스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도착한 강당에서 무대 위 축하 행사를 하는 합창단도 시니어 모델도 자리를 메운 신입생들도 모두 인생 선배들이 아닌가. 내가 제일 연장자이지 않겠느냐는 소심한 걱정은 순식간에 꼬리를 감추었다. 어쩌면 막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헛웃음까지 유발했다. 퇴직 직후, 처음 수필을 배우는 자리에서 비슷한 연령대의 동료들을 보고 편안함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흡사한 마음이랄까. 다시 신중년이 함께하는 공간에 놓였다는 안도가 얼굴 위로 웃음을 그려냈다
캠퍼스는 센텀시티 내 빌딩 숲속에 있다. 넉넉잡아 집에서 걸어 십 분 거리다. 가깝다는 조건이 이 대학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건물 앞 광장에는 높이 9미터 무게 5.5톤인 거대한 청동 조형물인 피노키오가 반겨주었다. 미국의 미술가인 짐 다인이 제작한 '희망으로 나아가는 소년'이라는 이름의 작품이란다. 힘차게 걷고 있는 피노키오는 사십여 년 만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캠퍼스를 찾은 내게 늦지 않았다고, 꿈과 희망을 품으라고 속삭이듯 성큼 다가왔다. 동화 속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 뒤에서 내 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라고 격려해 주는 듯했다.
강의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났다. 컴퓨터 수강 신청과 휴대폰 앱 설치라는 신문물의 벽이 빚어낸 첫 관문에서 서로 도와가며 나아가는 우정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동료에게 쉬이 다가가고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은 연륜의 품격에서 나온 힘일까. 문학에 대한 꿈으로 맞이한 낯선 길 위에서 이내 서먹한 분위기를 걷어내는 마법 가루가 강의실 내 가득 뿌려졌다. 깊이 팬 주름과 반백 머리가 자리한 얼굴에는 저마다 품어 지낸 사연이 깃들어 있으리라. 풍성한 글 밭에서 함께 피워 낼 농익은 글 꽃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