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없는 한국식 주거문제 해결 방법
원래 민법상 임대차는 채권관계로서 채권관계의 효력은 특정상대방에게만 주장 가능하고, 제3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데,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는 채권 관계인 임대차의 효력에 대해서 예외적으로 물권과 유사하게 제삼자에 대한 대항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독특하게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K-주거문화, 전세! 전세 제도는 메소포타미아의 누지(Nuzi) 문명, 나폴레옹 시대에서도 존재했고, 대부분은 주택을 담보로 한 사금융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전세와 유사한 다른 나라의 제도로는 볼리비아 지역에서 임차인이 목돈을 집주인에게 예치하고 월세 없이 거주한 뒤 계약 종료 시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는주택 임대차 제도인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 제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절반이 넘는 국민이 전세를 알고 경험해 본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외국에 나가기 전까지는 전세의 힘을 몰랐었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잠시동안 외국살이를 나갔다가 인구나 경제 규모가 서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도시에서 대부분의 생활비가 주거비로 사용되는데 충격을 느끼면서, 우리나라 전세 제도의 고마움과 편리함을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세제도에 대해서는 한국 내에서도 찬반 입장이 나뉘고, 외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2010년 대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의 총책임자였던 국토교통부 장관들 중 여러 명이 전세가 갭투자를 유발하여 주택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전세 사기 피해자를 유발하기 때문에 '전세는 수명이 다했다.'거나, '전세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금 교환이 없이도 집주인은 집세를, 세입자는 이자를 받는 전세 제도야 말로, 거래비용 없이 주택임대와 금융의 교차 거래를 실현하는 '우리나라 산업화 촉진의 비밀병기'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외국인들과 전세 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공식적인 금융기관인 은행에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것이 아니고, 원래는 알지 못하던 사람들 간에 몇 년 내지 몇십 년을 벌어야 벌 수 있는 큰돈을, 떼일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맡기는 한국인들의 주거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인에게는 정상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비정상'인 전세 제도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글은 필자가 필자의 브런치에 게시했던 'K-주거문화, 전세이야기'를 수정, 보완하여 게시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민법」 제303조는 전세권을 설정한 자가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사용·수익하며, 해당 부동산에 대해 우선적으로 전세금을 반환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일반적으로 「민법」상 임대차는 채권관계로서 그 효력은 계약 당사자에게만 주장 가능하고 제3자에게는 주장할 수 없는데, 우리나라는 「민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통해 채권관계인 전세의 효력을 예외적으로 물권의 대항력과 유사하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전세는 집주인은 집을 빌려주는 대신 목돈을 빌리고, 임차인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 집을 빌려 주며, 법률에 따라 당사자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이 거래의 우선권을 인정해 주는 거래이다.
일반적으로 상품 거래를 위해서, 특히 큰돈이 드는 거래를 위해서는 파는 사람의 신용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물건의 품질을 의심하지 않고 사지만, 중고시장에서 거래를 하면 파는 사람이 믿을 만한지, 물건에 하자는 없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대신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는 그러한 신용을 제공하는 만큼 마진(이율)을 붙여서 판다. 금융거래에서도 개인 간 거래는 돈을 떼일 염려가 있기 때문에, 신용을 제공하는 은행이 돈을 빌려주거나 예금을 받아주고, 신용의 대가로 높은 수수료를 챙긴다. 그런데, 전세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주택'이라는 비싸고 귀중한 물건과 목돈을 서로 거래할 수 있게 해 준다. 세입자는 보증금을 납부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나가고 집에서 버틸 수 있다. 반면, 세입자가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는데도 나가지 않으면, 집주인은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상호파괴적(?) 담보를 통해 사인 간 목돈거래인 전세가 가능해진 것이다.
전세의 기원은 잘 짜여진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라기보다는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현장에서 생겨난 최적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조선 후기인 18세기 경 서울에서는 목돈을 맡기고 별도의 월세 없이 거주하는 주택 임대 관행이 널리 존재했다고 한다(최영상, 2024).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관습조사 자료에는 '전세는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인 가옥 임대차 방법이다. 차주가 일정한 금액을 소유자에게 기탁하며 별도의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반환 시 기탁금을 돌려받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의 전세 기간은 지방에서는 통상 1년, 서울에서는 100일이었고, 보증금은 주택 매매가격의 50%∼80% 수준이었다고 한다(연합뉴스, 2026. 2. 26.). 다른 나라에서는 월세 중심 임대 구조가 발전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보증금을 중심으로 한 거주 방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전세는 법률가나 정책 입안자가 설계한 제도가 아니라, 제도화된 금융시스템이 없고 매월 월세를 낼 수 없는 소득이 부족했던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만들어낸 생활의 발명품이었던 셈이다.
전세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였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대거 이동하면서 서울시 인구는 1960년 약 244만 명에서 1970년 543만 명, 1980년 836만 명, 1990년 1061만 명으로 급증하였지만, 주택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정부 재정과 금융기관 역시 주택대출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전세금은 주택 건설과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민간 자본으로 기능했다. 집주인은 세입자의 보증금을 활용해 주택을 신축하거나 추가 매입할 수 있었고, 세입자는 월세 부담 없이 도시에 정착할 수 있었다. 고도성장기 동안 연평균 두 자릿수에 가까웠던 경제성장률과 지속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이러한 구조를 더욱 강화했다. 199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차가구 중 전세 비중은 60%를 넘으며 정점을 기록했고, 서울에서는 전세가 사실상 표준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왜 한국에만 전세 제도가 이렇게 보편화되었을까? 근본적으로,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발생한 주거난, 즉 주택의 임대수요를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했다. 서울로의 인구 집중은 1960년 245만 명, 1970년 543만 명, 1980년 836만 명, 1990년 1061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지만, 한정된 땅을 바탕으로 한 주택 공급은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여 1990년대 주택보급률은 40%를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었다(그림 1). 다시 말해, 서울의 주택 수는 가구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에 주택 임대에 대한 수요가 넘쳐났다. 둘째, 집주인 입장에서도, 세입자 입장에서도 매월 월세를 거래하는 것보다 한 번에 거래하는 목돈의 보증금이 더 편리했다. 세입자는 매월 소득의 큰 부분을 월세로 내는 것이 부담스럽고, 집주인은 월세는 제 시일에 못 받거나 세입자가 도망가서 떼 먹힐 염려가 있기에 전세를 선호했다. 셋째, 금융기관이 발달하지 않아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것보다 전세금을 받는 것이 저렴한 상황이었다. 동아일보 기사(2009.9.19)에 따르면 1960년대 정기예금 금리만 해도 30%에 달했고 1970년대에도 대출금리는 20%가 넘어갔기에,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집을 사거나, 다른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제반 상황을 기반으로 가격 상승 중인 주택에 투자할 수 있는 목돈의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임차인으로부터 목돈을 받아 다른 주택에 투자하고, 세입자도 전세금을 바탕으로 월세 대신 저축을 하여 다른 곳에 집을 사는 연계 구조가 만들어졌다. 한국인의 빠른 습득 능력과 여러 재테크 책들은 이러한 갭투자를 통한 자산증식을 확산시킴으로써, 서울 주택시장은 전세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먼저, 세입자에게 전세의 가장 큰 장점은 월세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동일한 주택을 월세로 거주할 경우 매달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의 현금을 월세로 내야 하지만, 전세는 계약 기간 동안 추가적인 현금지출 없이 자녀 교육비, 노후 준비, 가구 구입 계획 등을 계획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정부가 서민, 청년층에 대해서는 전세자금 대출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저렴하게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구하고 있는 애기 있는 신혼부부가 5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하고 있다고 하자. 월세로 거주할 때 서울의 전월세 전환율* 5.8%를 고려하면,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190만 원이 소요되는 반면, 정부의 정책금융인 신생아 특례 버팀목대출을 받아 전세로 들어가면, 5억 원을 연 2~3% 수준에 빌릴 수 있어 월 부담이 85~125만 원 미만으로 재정부담이 절반 정도로 급감한다.
*전월세 전환율: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한다고 가정할 때 내야 하는 금액
또한, 전세는 직장, 학교 등 이유로 거주하고 싶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살기 어려운 곳에서도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직장 등의 문제로 예산 10억 원에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집을 사려면 도심이 아닌 외곽 지역에서 살게 되지만, 이 10억 원을 전세 보증금으로 사용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지역인 강남구 대치동에도 거주할 수 있다. 특히,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거는 한국인의 특성상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군이 좋은 지역, 좋은 학원가가 몰려있는 지역으로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가려는 '맹모삼천지교' 심리가 강하다. 전세는 최소 계약기간 2년과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2년을 활용해서 4년 간 학군지에서 살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모든 제도가 그렇듯 전세는 여러 단점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목돈을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에게 맡기는 사금융 제도의 특성상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악의적인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가지고 잠적하는 전세사기 피해건수가 `23년과 `24년에 각각 4만 5천 건이 넘어가고, 피해자들이 자살을 하는 등 엄청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초년생인 청년들에게 전재산인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 주거 불안정에 금전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견디기 힘든 좌절을 겪게 된다. 아울러, 사기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집주인의 현금 부족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성도 존재하며, 특히 주택가격 하락기에 이런 현상은 심화된다. 집주인들은 받은 보증금을 다른 주택에 투자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전세기간 만료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때는 다음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아서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A 아파트를 소유하지만 전세를 주고 직장 근처 B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사람, 그 B아파트를 소유하지만 전세를 주고 더 위치가 좋은 C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사람 등 계속해서 연결되는 전세금 레버리지의 연결고리 속에서 한 군데라도 보증금 반환이 불가능해지면 모두가 채무 불이행자가 되고, 금융기관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
또한, 전세의 레버리지 효과를 기반으로 한 전반적인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이 심화되는 측면도 문제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A아파트 보증금으로 B아파트에서 살고, B아파트의 보증금으로 C아파트에 사는 레버리지의 중첩이 주택시장 전반에 확산되면서, 대출을 낀 갭투자를 통해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서울 집값의 중윗값이 10억 원을 돌파하고, 강남 아파트가 30억 원, 40억 원을 넘어가면서 서민들이 집을 사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30억 원은 서민들이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평생 모아도 마련할 수 없는 금액이기에 필수재인 주택이 이런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주택소유 여부 및 위치에 따른 계급화를 조장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세는 이러한 주택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다음으로 집주인의 입장에서 본 대표적인 전세의 장점은 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재산을 축적할 수 있게 하는 점이다. 전세보증금은 법적으로는 반환의무가 있는 채무이지만, 주택가격이 상승 혹은 최소한 유지될 경우 집주인은 다음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아 현재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면 되기 때문에 보증금을 사실상 무이자에 가까운 차입금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매매가 8억 원, 전세가 6억 원인 아파트를 생각해 보면 집주인은 자기 자본 2억 원만으로 8억 원짜리 자산을 '갭투자'를 통해 보유할 수 있다. 주택가격이 10%인 8천만 원만 상승해도 수익률이 40%(2억 원 x40%=8천만 원)에 이르는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한다.
또한, 전세 계약은 관리비용, 공실 우려, 세금 측면에서도 경제적이다. 전세의 경우 월세와 달리 매달 임대료를 관리할 필요가 없어 입금 여부를 확인하고 미납 시 독촉을 하면서 들이는 시간 및 감정 소비가 없다. 그리고 임차인이 최소 2년, 그리고 대부분은 4년 이상 장기간 거주하는 경향이 강해 공실이 발생할 위험도 상대적으로 적다. 한편으로 월세를 받을 경우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3 주택자 이상 다주택 소유자가 아닌 이상 전세를 받는 경우에는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금 투자에 대한 절세효과도 발생한다. 세입자가 주거 안정을 중시하는 만큼, 집주인 입장에서도 안정적 점유가 보장되는 셈이다.
그러나 주택시장 하락기에 집주인에게 있어 전세는 레버리지에 따라 더 큰 재정 부담으로 다가온다. 매매가격이 전세보증금 이하로 떨어지는 ‘역전세’ 상황이 발생하면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연장된 계약은 임차인이 원하면 언제든 3개월을 기한으로 해지할 수 있어 집주인들이 자금난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금리가 높고 유동성이 경색된 상황에서, 아무리 10억 원이 넘는 집으르 소유한 사람이라도 평균 6억 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을 일시에 상환하기는 쉽지 않다. 2022~2023년 일부 지역에서 실제로 역전세난이 현실화되었고, 집주인이 급매를 내놓거나 추가 담보대출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여기에 정부는 다주택자와 전세 갭투자를 주택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보고, 다주택자에 대한 각종 세금,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전세의 매력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다주택자에게 중과 또는 강화 적용되는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으로 인한 부담으로 인해 더 이상 전세가 ‘저비용 자본’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실거주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전세자금 대출도 제한하는 등 금융 조치도 수반되면서, 전세 제도를 통한 기존 방식의 내 집 마련과 자산 증식은 더욱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이처럼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기회와 위험의 양면성을 지닌 동전’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 이후 월세 및 보증부 월세 비중은 꾸준히 증가했고, 순수 전세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세의 종말이 올까? 이는 결국 주택가격과 금리라는 두 축의 변수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주택가격이 하락한다면 전세의 매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집주인은 집값보다 전세보증금이 더 비싼 역전세 위험에 직면하고, 세입자는 보증금 회수에 불안을 크게 느껴 전세가 축소된다. 집주인에게 주택 상승에 대한 기대가 없는 상황에서는 보증금을 주식 등 다른 상품에 투자했을 때의 수익률, 혹은 은행에 예치했을 때의 예금 수익률이 월세보다 높지 않다면, 더 이상 전세를 받지 않고 월세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전세는 사라지거나, 유지되더라도 전세가격이 축소되면서 월세가 주택 임대차 시장의 주된 계약 형태로 확대될 것이다.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금리가 낮은 환경이라면 전세의 레버리지 매력이 높아진다. 집주인은 낮은 금융비용 하에서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자산을 확장하려 할 것이고, 세입자 역시 월세 대비 낮은 이자를 통해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전세의 장점을 높게 평가할 것이다. 이 경우 전세는 활성화될 전망이나, 현재 서울에서는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이미 높아서 상승률이 지속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예전과 같이 전세가 대세가 되는 상황이 다시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금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주택가격의 상승에 대한 기대와 금리로 인한 대출의 부담의 경중에 따라서 전세의 추세가 결정될 것이다. 집주인은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목돈을 융통할 수 있어 전세를 공급할 의사는 있겠지만, 세입자 측면에서 금리가 높기에 목돈을 대출받아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주택가격의 상승 압력이 있더라도 매월 지불해야 하는 대출금리가 높아지면 목돈을 빌리기 어렵고, 이러한 수요감소에 따라 전세는 축소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요약하면, 주택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전세가 확대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전세가 축소 또는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 높다. 물론, 과거 고금리 시대에도 전세가 존속했던 것과 같이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제도, 전세자금 대출과 같은 금융 정책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전세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세제나 대출 정책이 급격히 변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주택가격의 상승 기대와 낮은 금리가 전세 제도의 원동력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도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절반 정도는 전세를 통해 운용되고 있다(국토교통부 보도자료, `26.2.27).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고, 금리 수준도 미국에 비해서 낮으므로, 아직까지는 많은 국민들이 전세 제도가 당장 없어질 것으로 전망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세의 미래는 이미 쓰여진 결말이 아니라, 독자 참여형 연재물에 가깝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금리가 낮아지면 전세는 주택의 매매를 떠받치는 지렛대가 된다. 반대로 금리가 오르고 주택가격이 흔들리면 사람들은 월세라는 다른 선택지로 이동한다. 그동안 전세는 수없이 위기를 겪으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반전세가 등장했고, 의무적인 임대 기간이 늘어나면 전세 가격을 유연하게 조정해 왔다. 전세는 그렇게 고정된 제도가 아니라, 시대의 조건에 맞추어 모양을 바꾸는 유연한 구조로 살아남아 왔다.
그래서 전세의 앞날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법 조문 하나로 사라질 운명은 아니라는 점이다. 집값과 금리, 정책과 심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산하고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총합이 전세의 다음 모습을 만들 것이다. 앞으로도 전세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한국 사회의 유연한 선택 속에서 계속해서 변신하면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