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나무 아래 똥 쌌나?

복을 부르는 팥죽이라고?

by 김사임



"누구냐?

누가.. 감나무 아래 똥 쌌냐?"


동지섣달 찬바람에 문풍지가 바르르 떠는 겨울날!

곤한 잠결에 마당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단잠을 깼다.


" 니가 그랬냐?"

" 아니어라, 나는 모르는디요?"


"그러면 너냐?"

"아니요, 나는 진짜 아녀요."


한 명씩 아버지의 심문이 이어지고 나를 뺀 다섯 명의 자식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니라며 발뺌했고, 아침부터 마당은 소란스러웠다.


'아고.. 나는 몰라 아. 진짜!!'


저 소란의 중심으로 나가 망신을 당할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다.


전날 밤이 동짓날이어서 동짓죽을 먹었다.


그런데 새벽에 배가 부글부글 끓는 것이다.


그때 당시는 주택에 살던 시절이라 변소는 마당에서 화단을 빙돌아 텃밭 옆에 덩그러니 있었다.


변소 앞에는 돼지우리까지 있었고, 나무가 우거진 마당에서 밤에 변소 가는 일은 어린 나에게 용기가 필요했다.


엄마가 동지라고 솥에 찐득거리는 찹쌀 새알이 들어간 빨간 동짓죽을 한솥 가득 쑤셨다.




글 이미지를 위해 장터에서 동지 팥죽 한 그릇 사왔습니다.^^



"동지에는 동지 팥죽을 먹어야 복을 많이 받고 귀신도 안 붙는다"


나는 팥죽을 싫어했다.

복 같은 건 모르겠고 귀신이 안 붙는다니 꾸역꾸역 한 그릇을 비워냈었다.


그 동짓죽이 끝내 화근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새벽에 배가 부글거리는 걸 참을 수 없어 마당에 나갔다.






한겨울 그것도 나무 그림자가 모두 귀신처럼 다가오는 화단을 돌아 외떨어진 변소를 간다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두리번거리다 마당 끝에 커다란 감나무 아래 실례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거야!'

야무진 생각을 했건만,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추운 새벽에 떨면서 거사를 치루고 나니, 따뜻한 이불속을 더 깊게 파고들어 오히려 늦잠까지 부르고 만 것이다.


다른 날 보다 깊은 꿀잠을 잔 그 아침은 잔인했다.


"아. 진짜 이 망신.. 어떡하냐!"


형제들 손가락질당할 생각에 아찔한 그 순간


"쎄빠지게 쒀서 믹여놨드만 많이도 쌌다."


엄마 푸념이 들리고 득.득.. 삽으로 언 땅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아. 이제 어쩔 수 없다 나가야지'


정말 이럴 땐 도깨비감투 없나?

"뿅" 하고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선 막 나서려는데


"선희 너냐? 니가 쌌냐?"


끝까지 범인을 찾고 말겠다는 듯한 아버지의 날 선 취조가 또 한 번 이어졌다.



그렇다

내 바로 아래 동생 선희

얌전하고 셋째 딸답게 하얀 피부에 말수도 없는..

그야말로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그 셋째 딸!

하지만, 안 한 일을 했다고 누명 써줄 애는 절대 아니었다.


나는 '선희가 무슨...'

벌떡 나서려는데


"......."


세상에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내 동생 선희의 무응답은 자신이 감나무 밑에 거사를 치른 범인이라고 자백하는 것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고 말았다.


"어지께 많이 묵을 때부터 알아봤다."


"그런다고 참말로 똥 이바지가, 한 보따리다 한 보따리"


"니가 진짜 이 똥을 다 쌌냐?"


ㅎㅎㅎㅎ


엄마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그럼에도 한마디 말이 없는 선희



내가 뻘쭘하게 문을 열고 나가자

이미 범인으로 확신한 선희를 성토하느라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랬지, 무슨 선희한테..."

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너무 의아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무서운 야단과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생각이, 나의 비겁함을 부추겼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만화에 나올법한 일이 생기다니...'


마치 신이 내편이 돼주기라도 한 것처럼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선희를 힐끔 봤다.


'쟤 뭐 잘 못 먹었나?'


'이거 뭔 일이지?'


'언니 대신 누명을 대신 써주기로 했나?'


절대, 네버.. 네버...


형제가 많으면 부모님께 잘 보이려는 보이지 않는 암투가 치열한 법이다.

가정은 또 하나의 엄밀한 사회가 아니던가?


아무튼, 동짓날 감나무 응가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궁금증이 가시지 않던 나는 선희에게 가만히 다가갔다.


"너 어제 동짓죽 먹고 배 아팠어?"


내 말이 안쓰러운 위로로 들렸던지, 아버지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로 함구하던 선희가, 작심한 듯 말문을 터뜨렸다.


"아따, 언니야 동지팥죽 못쓰것드라

배가 부글부글함서.. 어찟게 급하든가 변소 못 가고 감나무 아래다 싸부렀는디..."


그러고선, 뭔가 의심쩍다는 듯이 말을 끊었다.


생각에 잠긴 듯하던 선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근디 이상하다.

분명히... 나는 한 군데 쌌거든?

근디, 아침에 본 게 두 군데여 엄청나... 참말로 이상하네, 어떤 새끼가 또 싼 거 아니여?"



선희 말을 듣던 나는 배를 잡고 굴렀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웃음을 참지 못해서 실토하고 부모님께 이른다는 선희 입 막음 과자도 사줬지만, 끝내 모든 식구들이 알게 돼버렸지요.


형제가 많던 그 시절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네요.







* 해 동짓날 팥죽 사건은 팥 속에 사포닌 성분이 원인이었던 거 같습니다.


팥 속의 사포닌 성분이 설사를 일으키니, 처음 끓인 물을 버리고 다시 끓이면, 설사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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