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자동 재생되는 그날의 사건

by 김사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영화만 떠올리면
자동 재생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저희 집은 딸 넷에 제가 둘째 딸인데,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어디든 가실 때마다
저를 꼭 데리고 다니셔서
주변 어른들께 귀여움을 독차지했지요.

그러시던 아버지가 제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갑자기 180도 돌변하셨지요.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버지께 교육을 받았어요.

"남자애가 접근하면 다 너 책임이다.
웃었거나 헤프게 보인 거다!!"

"여자는 자기 몸을
목숨 걸고 지켜야 된다."

뭐 이런 내용을
반복 또 반복, 무한 반복...
그 영향으로 제 방어벽은

철벽 중의 철벽이었죠.





제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엔
한 학기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영화를 보여주었죠.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상영작은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마디로 "미쳤다" 였지요! ㅋㅋ

시험의 긴장감을 순식간에 잊게 만들 정도로 그 영화는 보수적인 교육에 세뇌된 제 영혼을 통째로 뒤흔들어놨어요.

자유분방하고 대담한 스칼렛 오하라,
불같은 매력의 렛 버틀러,
언제나 고고한 듯한 애슐리...

모든 게 파격적이면서도 눈부셨고,
그동안 보수적인 틀을 부수고 세상이
쾅! 하고 열린 느낌이었죠.


바람둥이 같은 클락 게이블
언제나 변치 않을 거 같은 애슐리..
그리고 스칼렛 오하라의
자유분방함과 화려함
그 모든 것이 파격적이고,
금지된 구역에 발을 들여놓은 듯
가슴이 뛰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갈등이 그려져도
비비안리처럼
당당하게 한번 살아봤으면 싶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렛 버틀러와 애슐리 중 나에게
맞는 이상형은 누구일까?ㅎㅎ
행복한 고민에 빠졌죠.







그런 행복한 기분도 잠시
골목에 들어섰는데...

정말..
어이없는 상황에
딱!! 맞닥뜨렸어요.

영화가 끝나고 오는 길에 오전에
내린 비가 그쳐 장우산을 콕콕 찌르며
걷고 있는데

너무 영화 내용에 몰입한 나머지
제가 들어선 골목은 평소엔 잘 가지 않던 길고, 좁고, 으슥한 길이었어요.
영화 여운에 취해 멍하니 걷다가
그만… 들어서 버린 거죠.


그때, 저만치서
렛 버틀러도, 애슐리도 아닌
한눈에 봐도 불량기 가득한 남학생 두 명이 눈앞에 나타난 겁니다.
(아놔…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
난 비비안 리도 아니고,
걔들은 불량배일 뿐이었죠.


왜 불행한 예감은 어긋나지 않은지...
골목엔 나 말고 아무도 없고,

그렇다고 뒤로 돌아가기도
애매한 그 순간.


우산을 땅에 콕콕콕 찍으며
태연한 척 지나가려는데...

둘이 씨익 웃더니
양쪽으로 갈라져서
저를 향해 다가오는 겁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니 몸은 니가 지켜라!!”
바로 이런 순간을 두고 하신 말씀인가?


남자 애들이 나를 터치하려던
그 순간,
가방은 팽개치고!
한 명은 우산으로 콕! 배를 찌르고
다른 한 명은 볼따구니를 와락!
잡히는 대로 움켜쥐었습니다.ㅋㅋㅋㅋ

(참고로, 그 남자애 볼따구니 살이 얼마나 많던지…ㅎㅎㅎ)

남자애들이 당황했는지


“뭐냐, 이 여자애!!”


혼잣말을 하더라고요.ㅋㅋㅋ



정말..
심장이 조오기.. 그니까
미쿡(?)까지 튕겨나갈 듯...
벌렁거리던
그 찰나...

골목 어디쯤에서 어떤 아저씨가

쩌렁쩌렁 소리쳤어요.



“야, 너희들 뭐냐!! 엉??”


불량배 두 녀석은
"아~씨, 뭐냐고!"
소리치며 쏜살같이 달려가버렸어요.

겉으론 용감한 척했지만
놀란 심장이
얼마나 거세게 뛰었는지..
그 이후의 기억은 잘 안 납니다.

사지가 후들거려
어떻게 걸어왔는지
정신없이 집에 도착했죠.


집에선 티비 보며

분홍 낙지죽을 먹고 있던 가족들이

제 몰골을 보더니,
그저 영혼 없는 말투로...

"정신없는 자식들이네!"

“그만하길 다행이다~”

'아니, 지금 전쟁 치르고 온 사람인데…'


가족들이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됐을 거예요.







충격이 가신 후에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는
진짜 애슐리 같은 은인이었어요.
얼굴도 못 보고, 인사도 못 했지만
어떻게 그렇게 적시에 나타나셨을까요?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잔다르크? …ᄏᄏᄏ)

어찌 되었건 아버지 평소 교육의 영향이
그런 순간 행동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 후로 장우산을 좋아해요
호신용으로 그만이거든요.. ㅎㅎ

하지만, 그런 엄격한 교육 때문에 청춘을
연애도 못해보고 지나가서 참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아무튼, 비비안 리의
"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그 명대사 장면이 잊히지 않는데요.
멋있어서 사춘기 때 많이 되뇌었었죠.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고..
정말 제대로 한 번 봐야겠네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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