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분열하는 자아와 해리의 비밀
우리는 흔히 ‘나’를 하나의 단일한 존재라 믿는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부딪히는 순간이 많다.
아침에는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저녁에는 치킨을 시켜 먹는 나.
친구들 앞에서는 밝고 유쾌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무겁고 우울한 나.
온라인 속에서는 누구보다 대담하지만, 현실에서는 한없이 조심스러운 나.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나는 하나인가, 아니면 이미 여러 개의 자아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가?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마음을 세 가지 층위로 나누었다.
본능적 충동을 담당하는 원초아(Id), 현실과 타협하는 자아(Ego),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한 초자아(Superego).
예를 들어 야심한 밤 냉장고 속 케이크를 보고 싶어 하는 건 이드의 목소리다.
“내일 중요한 발표 있는데 괜찮을까?” 하고 현실을 따지는 건 자아, “살찌니까 참아야지” 하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건 초자아다.
우리는 이렇게 셋 사이의 줄다리기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고전 이론이 인간 마음의 큰 지도를 그려줬다면, 현대 인지과학은 그 안의 작은 부품들을 더 세밀하게 살펴본다.
마음은 여러 기능이 조립된 구조와 같다.
결정을 내리는 회로, 감정을 느끼는 회로, 언어를 다루는 회로가 각자 따로 움직이며, 우리가 느끼는 ’나‘라는 감각은 이 회로들이 잠시 어울려 내는 합주에 가깝다.
예컨대, 운전하면서 음악을 따라 부르고 동시에 다음 일정을 떠올릴 수 있는 것도 뇌 안에서 각 기능이 병렬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아는 단단한 실체라기보다 순간순간 맞물려 나타나는 임시적인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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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경우, 자아는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갈라지기도 한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해리성 정체장애(DID)는 한 사람 안에서 전혀 다른 이름, 기억, 말투, 행동을 지닌 자아들이 교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에는 기괴한 병으로만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는 트라우마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마음은 한 개의 자아로는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를 여러 개로 나누어 살아남으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드문 경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자아가 항상 하나로 통합된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규모가 작은 ‘분열’을 경험한다.
우리는 맥락에 따라 다른 자아를 불러낸다.
회사에서의 나는 냉철하고 이성적이지만, 가족 앞에서는 아이처럼 무너지기도 한다.
친구들 앞에서는 장난이 많지만, 연인 앞에서는 서툴고 진지해진다.
SNS 속의 나는 화려하지만, 현실의 나는 평범하고 소박하다.
이런 차이는 병이라기보다 인간 의식의 기본 구조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같은 얼굴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미 19세기에 “한 사람의 자아는 무수히 많다”고 말했다.
사회적 자아, 내적 자아, 영적 자아…
상황마다 등장하는 여러 자아가 모여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흐름을 이룬다는 것이다.
철학자 라캉 역시 자아가 고정된 핵심이 아니라, 타인의 언어와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우리는 거울 속 모습보다 “넌 성실해” “넌 예민해” 같은 말 속에서 자신을 더 선명히 인식한다.
문학도 오래전부터 이를 이야기해왔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고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한 사람 안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존경받는 의사 지킬이지만, 그 속에는 억눌린 욕망과 폭력성을 지닌 하이드가 숨어 있다.
결국 두 존재는 하나의 몸 안에서 끝없는 싸움을 벌이며, 자아가 충동과 목소리들의 충돌 속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하나의 단단한 자아를 꿈꾸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자아가 차례로 등장하며 상황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진짜 나’란 존재할까?
아니면 그저 순간마다 달라지는 목소리들의 합일일 뿐일까?
〈같이 질문해보기〉
• 나는 언제 가장 다른 ‘나’로 변한다고 느끼는가?
• 여러 자아 중 어떤 모습이 가장 오래 남을까?
• 자아가 본래 여러 개라면, 우리는 왜 그것을 하나라고 믿으려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