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그렇게 좋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좋은 기억이긴 합니다.
후쿠오카.
갑자기 5월에 여행을 다녀오라는 겁니다. 제 여자친구가요.
심지어 비행기표, 숙소 심지어 맛있는 음식도 먹으라고 '용돈'도 주면서요.
이유가 워낙 많아서 나열을 못 하지만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해도 속은 참 따뜻한 사람입니다.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썸네일의 사진은 2025년 5월 13일 일본 후쿠오카 구로몬와 거리에 있는 숙소로 향하던 길.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그 바람이 좀 이상했다. 정확하게는 바람에 실려오는 무언가가 이상했다.
아니, 바람 자체는 너무 좋다. 땀이 많은 나에게는 바람만큼 반가운 게 없으니까.
그런데, 바람은 혼자 오지 않고 무언가를 데려왔다.
'냄새, 그것도 밤나무냄새'
일본에 많이 있는 너도밤나무, 심지어 얼마나 일본의 대표되는 나무면 게임에도 등장을 할까.
일본 여행에 기대를 품고 있는데, 이 말도 안 되는 냄새가 2박 3일의 여행 내내 나의 코를 못 살게 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뚫고 들어온 것은 설렘이 아니라 밤나무 냄새였다.
길거리를 거닐 때마다 따라왔다. 오호리 공원, 후쿠오카 성터, 캐널시티 하카타... 어디든 말이다.
하지만, 이 기분 나쁜 냄새도 과학이다.
우리가 '냄새'라고 부르는 것은 공기 중을 떠다니는 작은 분자들이다. 상태로 보면 화학적인 상태.
마치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 입국하는 사람들처럼, 코로 숨을 들이쉴 때 냄새분자들이 들어오게 된다.
코 안에는 '후각 *상피세포'라는 입국장이 있고, 그곳엔 '후각 *수용체'라는 심사대가 배치 돼 있다.
수 천만 개의 심사대는 각각 인식할 수 있는 분자만 통과시킨다. 이때의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분자님들은 여권 꺼내시고, 스캔 부탁드립니다."
“Attention, all odor molecules! Please have your passports ready for scanning.”
"におい分子の皆さま、パスポートをご準備の上、スキャンにご協力ください。"
여권 정보가 맞으면 문이 열릴 것이고, 여권 정보가 맞지 않으면 다른 심사대로 가야 한다.
여기서 냄새분자는 화학적인 상태인데, 이를 전기적인 신호로 바꿔서 뇌에게 전달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스캔을 한 뒤, 내부 전산망을 가동하여 중앙센터로 정보를 보낼 준비를 한다. 이때, 내부 와이파이(후각신경)를 통해 전기적 신호가 뇌로 전달이 된다.
(사실 이 와이파이 연결 과정엔 분극, 탈분극 같은 무시무시한 생리학 개념이 있지만... 그건 나중에, 한 캔 더 마시면서 풀어보자.)
(분자 스캔 및 여권 정보 조회결과 : 밤나무 냄새)
드디어 중앙센터인 뇌에 정보가 도착했다. 또한 정보를 인식만 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기억'으로 정보를 저장한다.
뇌의 '해마'라는 곳은 기억 저장소, 냄새와 함께 그때의 상황을 저장하고,
'편도체'라는 곳은 감정 처리기, 냄새에 대한 좋고 싫음, 공포 등을 생성한다.
집에 갔을 때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음식 냄새,
겨울을 지나 다음 여름에 처음 틀었던 시큼한 에어컨 냄새,
밤나무 냄새가 느껴지는 순간 생각나는 일본 여행 등.
시각, 청각, 촉각, 미각보다 후각인 냄새가 유난히 감정과 기억으로 잘 남는 이유는 '생존'때문이다.
후각을 제외한 감각은 '해석'이 필요하지만, 냄새는 일단 좋은지, 나쁜지, 괜찮은지, 이상한지를 빨리
판단할 수 있게 진화됐다.
그래서 우리는 코로 들이쉰 공기 속 작은 분자 하나하나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후쿠오카의 밤나무 냄새는 분명 좋은 향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냄새 덕에 이 여행을 잊을 수 없게 됐고,
오늘의 글이 쓰인 게 아닐까?
독자님들은 어떤 냄새를 맡고 있나요?
어떤 감정이 느껴지며, 기억이 떠오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