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아랫목

by 송화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한파가 늦게 찾아왔다.

그해는 이상하리만치 날씨가 예년과 달랐다.

보통 30일 정도이던 여름 장마는 49일 만에 끝이 났다.

비가 그치지 않아 걱정하시던 마을 어르신들은 모였다 하면 라디오를 틀어 뉴스를 들으셨고

올해 농사를 망쳤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가을이 지나 겨울로 접어든 달력인데 초겨울 날씨만 한 달 넘게 지속되었고 한파는 작년에 비해 꽤 늦게 찾아왔다.

라디오에서는 올해의 얼음 상황이 좋지 않을 수도 있으니 겨울 놀이에 특별히 주의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만철이는 호수 밖에서 동생들이 즐겁게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특히, 썰매를 처음 타본 영철이 처음에는 울려고 찡그리다가 힘을 주며 긴장했다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는 만 가지 그의 표정에 깔깔깔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처음 썰매가 움직일 때 놀란 영철이는 정란의 두 다리를 꽉 붙잡고 눈은 놀란 토끼 눈처럼 동그래졌다.

정란은 그런 영철이가 불안해할까 봐 뒤에서 계속 말을 걸며 안심시켰다.

“영철아. 누나, 니 뒤에 있다.

이거 무서운 거 아니다. 신나는 거다.”


시간이 지나고 영철이는 썰매를 즐기게 되었고 씽씽 달릴 때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힘이 든 은호 오빠가 잠시 멈출 때마다 영철이는 “또 “라는 마법의 단어를 뱉어냈고 은호 오빠도 영철의 마법에 빠져들어 힘든 줄 모르고 계속 달렸다.

다리가 풀릴 것 같은 은호 오빠는 마지막 한 바퀴만 타고 나가자고 했고 정란은 아쉽지만 은호 오빠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며 그러자고 했다.

”마지막이니까 끝에서 끝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줄게. 영철아, 정란이 누나 꽉 잡아래이~! “


은호 오빠는 어느새 벌칙을 즐기고 있었다.

이미 한 바퀴가 끝난 수철, 진철, 경철은 호수 밖에서 만철 오빠와 은호 오빠 동생들과 함께 영철의 표정을 구경 중이었다.

”해... 햄아... 저기 얼음 봐봐. 저거 뭔데..

저기 이상한 선이 생기고 있다.. “


수철의 눈에 살짝 금이 간 얼음이 보였다.

수철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본 만철 오빠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 은호 오빠가 달리고 있는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철 오빠는 소리치며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은호야! 멈춰라! 멈춰라! 더 가면 안 된다! “

당황한 만철 오빠의 걸음에 신발이 자꾸 미끄러져 정란이 있는 곳까지 발을 내딛기 힘들었고

수철이는 그런 만철 오빠에게 썰매를 전해주러 들어갔다.

”햄아. 이거 타고 가라.

나도 다른 거 타고 곧 갈게. “

”수철아. 단디 들어라.

니는 무슨 일 있어도 들어오면 안 된다.

알았나?

동생들 지켜라. 무슨 일 있어도. 니.

절대로 들어오면 안 된다. 알겠제. 대답해라. “

”.... 알았다. 햄아. 조심해라. “


만철 오빠는 또다시 인호 오빠에게 소리치며 썰매를 탔고,

쉬지 않고 맨손으로 얼음을 밀었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옆으로 돌아본 인호 오빠는 만철이 오빠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만철이 내 못 믿어서 다시 들어온 것 봐라.

정란아, 내 다리에 쥐가 나서 한 바퀴 다 못 돌겠다.

마지막으로 밀어줄게.

쭉 가다 보면 만철이 하고 만나질 끼다.

내는 인자 좀 쉬어야겠다아아아. “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전속력으로 달리며 손으로 힘껏 정란의 등을 밀어 썰매가 저 멀리 가도록 하고 은호 오빠는 바닥에 털썩 앉아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란은 저 멀리 다가오는 만철 오빠를 보며 손을 흔들었고 이내 만철 오빠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정란아! 썰매 멈춰라! 얼음 깨진다. 얼음!

지금 멈춰라! 다리를 바닥에!! “

그 순간 정란은 바닥을 내려다봤고

정란이 지나온 자리를 따라 얼음 표면에 선명한 금이 퍼지고 있었다.

앞을 바라본 정란은 반대편에서도 점점 번져가는 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란은 얼른 다리를 바닥에 내려두고 썰매를 멈추려고 애를 썼고, 가속이 붙어버린 썰매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정란은 영철이를 꼭 안았다.

영철이를 안아 엉덩이를 이용해 얼음 옆으로 구르며 내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얼음이 사방팔방 깨지기 시작했고 휘청이는 썰매 위에서 몸의 중심을 잃어버린 정란은 영철이를 손에서 놓쳐버렸다.

정란은 차가운 얼음 밑으로 들어가 버렸고, 호숫물 아래 차가운 추위에 정신이 바짝 돌아왔다.

수영을 못하는 정란은 본능적으로 다리를 버둥거려 물 위로 떴고 깨진 얼음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위태롭게 붙어 있는 이 얼음 모서리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있을 때 영철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란은 다시 얼음 밑으로 들어갔다.

보이지 않았다.

숨이 차 다시 물 위로 올라온 정란은 도착한 만철이 오빠를 보고서야 그제야 눈물이 터졌다.

”영철이! 영철이 안 보인다. 오빠야!! 영철이!!! “

”정란아! 오빠가 찾을게. 빨리 오빠 잡고 올라온나. 이 얼음 얼마 못 버틴다. “

”내 몬 간다. 오빠야. 내 안 간다. 영철이 찾아서 갈게. 이대로 우째 가란 말이고.

나도 같이 찾게 해도. 제발! 오빠야, 제발!

”정란아! 위험해가 니 안된다. 오빠가 할 테니까 빨리 얼음 더 깨지기 전에 퍼뜩 올라온나. 퍼뜩! “


그때 손을 벌벌 떨고 눈에는 초점을 잃은 은호 오빠가 얼음 위를 기어 다가왔고 만철이 오빠는 그런 은호 오빠의 뺨을 때렸다.

”정신 차려라. 정란이 빨리 끄집어내라! 은호야! 애들 다 죽는다!!!


물속으로 들어온 만철 오빠는 정란의 다리를 들어 물 밖으로 들어 올렸고 은호 오빠는 정란의 겨드랑이를 잡아 얼음 위로 올렸다.

”오빠야! 영철이 꼭 찾아라. 막내 꼭 데리고 나온나. 내 여기 있을 거다.!! 영철이 올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다!! “

”인호야. 빨리 정란이 데리고 나가라. “


호수 밖에서 반 바퀴를 돌아 정란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 수철이는 근처 있던 기다란 나뭇가지를 정란이 누나에게 건네 잡으라고 하려고 했지만, 길이가 짧아 어림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수철이에게 뛰어온 인호 오빠의 동생이 바지를 벗으라고 했다.

”우리 전부 바지 벗어서 묶자! 묶어서 던지자! 그라면 구할 수 있다! “


아이들은 바지를 벗어 묶어서 줄을 만들어 정란에게 던졌고 은호 오빠와 정란은 호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수영을 잘하는 만철이 오빠는 몇 번이나 얼음 속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지만, 영철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수철이가 울면서 소리쳤다.

”어! 햄아! 영철이!!!! 얼음 깨라! 얼음! 빨리! 영철아!! 영철아!!! “


반투명한 얼음 아래, 누워있는 영철이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고, 그곳은 깨진 얼음에서 한참을 벗어난 자리였다.

인호 오빠는 썰매 손잡이를 들고 다시 호수로 들어갔고 만철이 오빠와 둘이 영철이가 누워있는 근처 얼음을 손잡이에 붙은 날을 이용해 깼다.

그렇게나 두껍던 얼음은 아이들의 힘으로도 금방 깨졌다.

만철 오빠는 잠수하여 물속으로 들어가 영철이를 안아 데리고 물 위로 올라왔다.

동생들은 통곡하며 울면서도 묶은 바지를 던져 만철이 오빠와 영철이를 잡아당겨 올렸다.


뽀얗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되어 형들에게 온 영철이였다.

입술은 시퍼렇게 변했고 작디작은 손과 발은 차가운 얼음물에 불어 쭈글쭈글해졌다.

아무리 불러도 눈을 뜨지 않았다.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수철이는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차가운 영철이 몸에 덮어주었다.

몸이 따뜻해지면 영철이가 깨어날 줄 알았다.

만철이 오빠는 영철이를 안고 달렸다.

정란과 동생들도 마구 달렸다.

달리면서 빌었다.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앞으로 해달라는 것 다 해줄 테니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었다.

우리 가족에게 더 이상 아픔은 안된다고 빌고 빌었다.

어느덧 마을 입구였다.

가지만 남아 앙상한 느티나무를 본 정란은 소리쳤다.

”어머니! 제발! 영철이 놔두고 나 데려가 주이소! “

집에 도착한 만철 오빠는 영철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아랫목에 눕혔다.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너거 오늘 와 이리 일찍 들어왔노? 점심 먹고 바로 온 거가? 바닥에 무슨 물이 이래 흥건하노? 무슨 일 있나? “


영철이를 발견한 어머니는 만철 오빠와 영철이를 번갈아 보시며 고개를 저으셨다.

”이... 이기... 뭔데.. 와이라는데... “

”영철이 추울 겁니더.

몸 좀 녹이고 나면 일어날 겁니더. “


어머니는 영철이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았다.

영철이의 손을 잡은 어머니는 그제야 눈물을 왈칵 쏟으시며 소리치셨다.

밭에 계시던 아버지도 그 소리에 놀라 집으로 오셨다.

마당에서 바지를 벗은 남동생들과 방 안에서 물에 꼴딱 젖은 정란, 만철 오빠를 보고 짐작을 하신 듯 영철이 코에 손을 가져다 대고 숨을 확인하셨다.

아버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옥단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철아! 영철이 별일 없지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