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이런 순간조차도 말이 없냐며 사람인지 동물인지 분간이 안 간다고 악담하셨다.
아버지는 자식이 여럿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은 자식도 자식이지만 남은 자식도 자식이었다.
같이 놀다 사고를 지켜본 아이들도 아버지의 자식이었다.
어머니는 왜 너희들만 살아 돌아오고 영철이를 죽게 했냐고 소리쳤다.
내 자식을 죽게 했으니, 너희들도 값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에게는 자식이 하나인 듯했다.
어머니의 눈은 이미 사나운 맹수가 먹이를 뜯을 때의 그 눈과 닮아 있었다.
다 큰 것들이 막내를 죽였다고 소리쳤다.
자기 새끼를 죽였다며 스스로 심장을 치다 정신을 잃었다.
옥단 이모는 추운 날 바지를 벗은 채 마당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옷을 가져다주며 일단 입어야 한다고 달랬다.
장시간 추위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은 자기들만 따뜻한 옷 입고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막내를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끼던 아이들이었다.
만철은 모두 본인 탓이라며 괴로워했다.
얼음 썰매를 타자고 제안한 자신을 원망하고 비난했다.
정신을 차린 어머니는 만철에게 소리쳤다.
”친구를 사귀어도 꼭 그런 놈들만 사귀니 평생 공부를 못하고 사는 기다.
다 큰 놈이 썰매는 무신 썰매!
내 새끼 살려내라.
니 목숨 걸고 내 새끼하고 바꿔라.
내 새끼 그 추운 곳에 죽게 하고 니는 무슨 정신으로 집에 왔는데! “
”죄송합니더. 다 제 탓입니더.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더. “
”너거 어머니가 데려갔다.
돌아가신 너거 어머니가 막내를 데려간 기다.
안 그러면 막내만 이래 죽을 수 있나?
이기 말이 되나.
다 같이 놀았는데 막내만 이래 됐다는 게! “
그 소리를 들은 옥단 이모가 한마디 했다.
”언니. 망자 얘기 함부로 하는 거 아입니더. 입조심하이소. “
”하이고, 자식새끼 줄줄이 놔두고 무책임하게 가버린 것도 지 언니라고 지금 내 앞에서 편드나?
와?
니 무당이니까 너거 언니 함 불러 봐라.
불러가꼬 내 말이 참인가 아닌가 확인하라고! “
어머니의 도를 넘어선 생떼에 아버지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그 입 다물게. “
”하이고~ 이제 입이 터집니꺼.
지금껏 정승처럼 구경만 하더니 와 인제 말합니꺼.
와예? 만철 엄마 얘기하니 속이 상합니꺼?
내 새끼 죽은 마당에 내가 지금 못할 말이 뭐 있습니꺼? “
”정신이 나갔으면 밖에 나가 냉수 한 사발 들이켜라. “
아버지 말씀에 정말 정신이 나가버린 듯, 어머니는 ”악! 살려 내! “라고 외치며 만철에게 다가갔다.
옷이 젖은 채 무릎 꿇어앉아 있는 만철의 등을 때리고 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옥단 이모가 다가와 어머니 팔을 잡아 말려 보지만 이미 정신을 놔버린 여자의 손아귀 힘은 대단했다.
만철은 어떤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눈물만 흘렸다.
마음이 너무 아파 몸 따위는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백번이라도 더 맞을 수 있었다. 영철이보다 더 아플까. 영철이보다 더 무서울까. 만철은 체념한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나서서 힘으로 말리고서야 어머니는 손을 놨다.
손에서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보다 못한 옥단 이모가 처음으로 속마음을 내비쳤다.
”언니. 이제 그만하이소!
솔직히 여기서 영철이 하고 피 안 섞인 사람 언닌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꺼?
저 애들 꼴 안 보입니꺼?
자기들 동생입니더.
동생인데 그냥 놔둘 리가 없잖아예.
자기들이 살려보려고 얼마나 물속에서 바둥거려 댔는지 꼴만 봐도 알겠는데!
그리고 영철이 키운다고 애쓴 건 알겠는데 지난번부터 이상하다 싶었어예.
영철이한테 왜 그리 집착입니꺼?
영철이 쟤들 동생이지.
언니가 낳은 자식 아니잖아예.
왜 낳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닙니꺼?
정신 나간 여자라고 동네에 소문나서
만나는 사람마다 수군거립니더.
언니. 내가 지금 보니 아픈 것 같으니까 쪼매 정신 차려 보이소. “
그러자 어머니는 눈에 흰자만 가득 보인 채로 옥단 이모를 쏘아보며 해선 안 될 말을 내뱉었다.
”어디 무당 주제에 끼어들고 있어! 천하디 천한 년이. 옛날이면 니는 백정이나 같은 신분이다.
근본도 없는 년이 어디서 남의 정신을 들먹이고 있노? “
보다 못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마당으로 끌어냈다.
”가시게. 다시는 오지 마시게.“
어머니는 마당 바닥에 주저앉아 마지막까지 말을 빙자한 똥을 내뱉고 엉덩이에 묻은 이물질을 탁탁 털며 떠났다.
”갑니더. 이놈의 재수 없는 집구석.
줄초상 나는 이 집구석에 내가 뭐 한다고 더 있겠냐고!
하이고, 내까지 무슨 일 날까 겁난다.
잘들 살아보소! “
옥단 이모는 만철에게 다가가 물었다.
”만철아. 괜찮나. 왜 그냥 맞고 있노..
영철이 그렇게 된 거, 니 탓 아니다.
무슨 사고가 있었던 거제.
저 여자 말 가슴에 담지 마라.
정신이 나가서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거다.
이모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고
집에 들였는갑다... “
옥단 이모가 만철의 등을 쓸어 쓰다듬자, 그는 소리 내어 통곡하였다.
”... 불쌍한 영철이... 우짭니꺼. 이모.
찾으려고 했는데.. 어디로 빠졌는지...
으어.. 못..찾아가지..고 어엉.. “
아버지는 영철을 들어 가슴에 꼭 안으셨다.
그리고 그의 차디 찬 귀에 대고 말씀하셨다.
”영철아. 아버지 목소리 들리제.
아버지가 우리 영철이 많이 업어주지도 못했는데 이래 먼저 가버려서 아버지 마음이 참말로 찢어진다.
영철아. 지금은 무서워도 조금 있으면 어머니가 데리러 오실 거다.
어머니하고 재밌는 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어머니 손도 잡아 보고 어머니한테 푹 안겨서 잠도 자고 즐겁게 지내고 있어라.
영철아. 미안하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재이.
아버지 가면 영철이가 어머니 손잡고 마중 나온나..
잘 가라 영철아. 우리 막내.. 미안하다. “
옥단 이모는 밖에 있는 동생들을 방으로 불러 이제는 6남매가 되어 버린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고 하셨다.
”얘들아, 영철이 일은 어쩔 수 없는 사고다. 너희들이 그 사고를 만든 게 아니다 이 말이다. 이건 너희들이 막을 수 없었고 너희들은 영철이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거 아버지, 이모 우리 다 안다. 지금은 힘들어도.. 영철이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보내주자.
영철이 너희 어머니 만나러 갈 끼다.. “
정란은 영철의 손을 잡았다.
작디작은 그 손을 이제는 잡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영철아.. 누나가 니를 놓쳤데이.
니를 꽉 잡아야 했는데.. 니를 놓쳐 버렸다..
얼마나 추웠노.. 얼마나 숨 쉬기 힘들었노..
누나가 진짜로 미안하다.
누나가 니하고 같이 가야 하는데.. 우리 영철이 혼자 무서울 텐데.. 영철아.. “
정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영철과 그네 타고 누나라는 말도 처음으로 들어보고 이보다 완벽한 날이 없었는데 몇 시간 만에 영철은 차가운 몸으로 정란 앞에 누워 있다는 게 현실적이지 않았다.
죄책감에 휩싸여 충격이 심했던 만철 오빠는 영철에게 차마 마지막 인사를 말하지 못했다.
수철은 흐느끼며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옥단 이모는 울고 있는 수철, 진철, 경철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영철은 모두의 가슴에 묻혔다.
유난히도 가슴이 시린 1971년 1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