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싸움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정혜영작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싸움



상담실 기록


오늘 상담실 문을 연 것은 서른세 살 정수연 씨였습니다.


녀는 창백한 얼굴에 지친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담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연 씨는 손을 떨며 가방을 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이상했습니다."


"피부병이 심했어요. 병원을 다녀도 원인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 머리 밑에만 개미가 죽어 있었습니다. 일렬로요."


수연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부모님도 이상하게 생각하셨어요. 하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위눌림도 자주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요."


"그렇게 자랐습니다. 무섭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수연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십 대 후반부터 심해졌습니다."


"선몽을 꾸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일들이었어요. 누가 전화할 거라든지, 길에서 누구를 만날 거라든지."


"하지만 점점 커졌습니다. 사고, 죽음, 그런 것들이요."


수연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싸웠습니다."


"귀신들이 나타났습니다. 꿈속에서요. 아니,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태에서요."


"저를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싸웠습니다. 매일 밤 싸웠습니다."


수연 씨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싸워서 이기고 일어났습니다."


"이기면 깼어요. 지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항상 이겨야 했습니다."


"그게 몇 년을 반복됐습니다."





수연 씨는 손수건을 꺼냈습니다.


"삼십 대가 넘어서부터는 낮에도 시작됐습니다."


"귀접이래요. 무당들이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수연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몸이 굳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짓누르는 느낌이었어요."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그것들이 저를..."


수연 씨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눈물만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몇 달에 한 번씩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잦아졌어요."


"일주일에 한 번, 며칠에 한 번, 그러다가 거의 매일."


"저는 피폐해졌습니다."





수연 씨는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습니다. 진료 기록지였습니다.


"병원을 다녔습니다. 정말 많이 다녔어요."


"신경과, 정신과, 내과, 피부과, 산부인과... 안 가본 데가 없습니다."


"의사들은 검사를 했습니다. 혈액검사, MRI, CT, 온갖 검사를 다 했어요."


수연 씨는 진료 기록지들을 펼쳤습니다.


"결과는 항상 같았습니다. 이상 없음."


"신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정신과에서는 우울증 약을 줬습니다. 불안증 약도 줬어요."


"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증상은 계속됐습니다."


수연 씨는 손을 떨었습니다.


"119에 실려간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갑자기 쓰러졌어요. 호흡곤란이 왔습니다."


"응급실에서 검사했지만 역시 이상 없음이었습니다."


"한 번은 전신마비가 왔습니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어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틀 후 풀렸습니다."


"의사들은 원인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수연 씨는 눈을 감았습니다.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다가도 갑자기 쓰러졌어요. 조퇴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상사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자주 아프면 회사를 다닐 수 없다고."


"결국 퇴사했습니다. 몇 번을 반복했어요."


"이제는 아르바이트도 못 합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니까요."


수연 씨의 목소리가 작아졌습니다.


"연애도 안 됐습니다."


"남자친구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다 떠났습니다."


"어떤 남자친구는 제가 거짓말한다고 했어요. 꾀병이라고."


"어떤 남자친구는 무서워했어요. 제 옆에서 자다가 이상한 일을 겪었대요."


"모두 떠났습니다.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습니다."





수연 씨는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작년에 결심했습니다. 점을 보러 가기로요."


"십 곳을 갔습니다. 유명하다는 무당, 역술가, 점술가 모두요."


수연 씨는 메모를 보여줬습니다.


"십 곳 모두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신병이래요. 신내림을 받아야 한대요."


"제게 신이 붙어 있는데 받지 않으니까 아프다는 겁니다."


수연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무당은 말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고."


"신을 받든 지, 아니면 한국을 떠나서 외국에서 살든지 하라고 했어요."


"외국에 가면 신이 따라오지 못한대요."


수연 씨는 손수건으로 눈을 닦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당이 되고 싶지 않아요."


"외국에 갈 돈도 없고요. 몸이 이런데 어떻게 외국에서 살아요."


"그렇다고 이대로 살 수도 없어요. 너무 아파요. 너무 힘들어요."





수연 씨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여러 곳에서 다 신병이래요."


"아버지가 화를 내셨어요. 미신이라고. 정신 차리라고."


"어머니는 알고게셨데요.


저 어릴 적 무당이 그랬다 하더라고,."


그냥 모르게 살게 하려고 말을 안 하셨더라고요


수연 씨는 주먹을 쥐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젊은애가 꾀병 부린다고 생각해요."


"혼자입니다. 정말 혼자예요."





나는 오랫동안 수연 씨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수연 씨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신병이라고 믿으세요."


수연 씨는 한참을 침묵했습니다.


"모르겠어요. 솔직히 모르겠어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건 압니다. 의사들도 원인을 못 찾았어요."


"하지만 여러 곳이 똑같은 말을 했어요. 그게 우연일까요."


수연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요."


"아프지 않고, 무섭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신병이든 뭐든 상관없어요. 이 고통만 끝났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수연 씨 저는 무당도 아니고 영적인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이 신병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수연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당신은 지금 고통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 고통은 진짜입니다."





나는 수연 씨에게 말했습니다.


"수연 씨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첫째, 신내림을 받는 것. 무당이 되는 거죠."


"둘째, 외국으로 떠나는 것."


"셋째, 계속 병원 치료를 받으며 원인을 찾는 것."


수연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 어려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제가 하나 더 제안하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일단 당신의 몸을 돌보세요."


"신병이든 아니든, 당신의 몸은 지금 한계에 와 있습니다."


"쉬세요. 충분히 쉬세요."


수연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쉬고 싶어요.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해요."


"지금은 돈보다 건강이 중요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쓰러져서 죽으면 돈이 무슨 소용입니까."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세요.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그리고 천천히 생각하세요. 신내림을 받을지, 다른 길을 찾을지요."





나는 수연 씨에게 말했습니다.


"수연 씨 저는 신내림을 권하지도, 반대하지도 않겠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수연 씨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가족이 반대해도, 사회가 이상하게 봐도, 당신이 편해지는 길을 선택하세요."


"무당이 되는 게 당신을 살리는 길이라면 그렇게 하세요."


"외국에서 사는 게 답이라면 그렇게 하세요."


"병원 치료가 맞다면 계속 찾으세요."


나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살아남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수연 씨에게 말했습니다.


"수연 씨 당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당신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귀신들과 매일 밤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세요."


수연 씨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지쳤어요. 언제까지 싸워야 하나요."


"답은 당신이 찾아야 합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신내림을 받든, 외국으로 떠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든."


"당신이 선택하세요. 당신이 살 수 있는 길을요."


"그리고 그 선택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수연 씨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쓸쓸하지만 조금은 편안한 미소였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천천히요."





나의 기록



수연 씨는 상담실을 나갔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지쳐 보였지만 조금은 결심한 듯 보였습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신병이 진짜인지 아닌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수연 씨의 고통은 진짜입니다.


십 곳의 점집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는 것.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미신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녀의 고통이 너무 큽니다.


수연 씨는 선택해야 합니다. 신을 받을지, 떠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녀의 몫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살아남는 것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수연 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서른세 살입니다.


매일 밤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만큼 강합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차례입니다.


무당이 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까요.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 도망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녀가 편안해질 수 있는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창밖으로 저녁 해가 집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싸우고 누군가는 신병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어떤 선택이든 당신의 선택이라고.


수연 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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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등단 작가 주영. 감성과 상징, 인간의 내면의 이야기를 쓰며 글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처와 회복 사이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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