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지는 방식
프롤로그
아침 신문을 펼쳤다가 작은 기사 하나에 시선이 멈췄다.
60대 남성이 사망 후 3년 만에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3년. 그 숫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1095일. 그 긴 시간 동안 아무도 그가 사라졌다는 걸 몰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기사는 담담했다. 관리비 독촉장이 쌓이고, 관리사무소에서 문을 열었더니 이미 오래전에 사망한 상태였다고. 임대료는 자동이체로 계속 빠져나갔고, 그래서 더 늦게 발견되었다고.
마치 사건 보고서를 읽는 것처럼 건조한 문장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머릿속에서 그 기사가 지워지지 않았다.
지하철에서도, 점심을 먹으면서도, 3년이라는 시간이 자꾸 떠올랐다.
그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 자기를 찾아주길 바랐을까. 아니면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을까.
며칠 뒤, 또 다른 기사가 떴다. 이번엔 40대 남성이었다.
사망 후 2년 만에 발견. 월세는 자동이체로 나갔지만 관리비 미납으로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집주인도, 이웃도, 아무도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말만 남았을 뿐.
나는 그때부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신문을 펼칠 때마다, 뉴스를 볼 때마다, 고독사 관련 기사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놀랐다. 너무 많았다.
거의 매주, 어디선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60대, 40대, 심지어 30대도 있었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여성도 있었다.
도시에서, 작은 도시에서, 신도시 아파트에서, 오래된 빌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수 있을까.
21세기, CCTV가 도처에 있고,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연결된 시대에.
IoT 기기가 우리의 일상을 모니터링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 하나가 사라지는데 아무도 모를 수가 있을까.
분노가 일었다. 누군가 이들을 구할 방법은 없었을까.
시스템을 바꾸면 되는 걸까. 복지를 확대하면 되는 걸까. 이웃이 더 관심을 가지면 되는 걸까.
아니면 이건 개인의 선택이고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인 걸까.
질문은 많았지만 답은 없었다. 전문가들의 분석 기사를 읽어도,
정부의 대책 발표를 봐도, 뭔가 핵심을 비껴가는 느낌이었다.
통계와 숫자와 정책 이야기만 있을 뿐, 정작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찾아가기로 했다.
고독사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유품정리사들을.
첫 만남은 어색했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들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그들은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10년, 15년 이 일을 해온 사람들. 수백 개의 현장을 다녀온 사람들. 그들이 본 것은 신문 기사 몇 줄로 요약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요, 시간 감각이 무뎌져요.
사흘 전인지 한 달 전인지, 때로는 계절만 겨우 짐작할 뿐이죠.
그런데 가끔, 정확히 알 수 있는 현장이 있어요. 달력이 멈춰있거나, 신문이 쌓여있거나."
"가장 힘든 건 냄새나 벌레가 아니에요. 물론 처음엔 그게 힘들었죠.
하지만 익숙해져요. 진짜 힘든 건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 사람의 삶이 보일 때예요.
이 사람도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친구였고, 동료였을 텐데."
"어떤 집에서 통장을 발견했어요. 매달 20만 원씩 어딘가로 송금되고 있더라고요.
3년 동안. 자동이체로.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계속. 누구한테 보낸 돈이었을까요.
그 사람은 받는 사람이 왜 연락이 없는지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외로운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단절되는지,
시스템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놓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이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4%를 넘어섰다.
세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집이다. 나 역시 1인 가구다.
내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혼자 산다.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간섭받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끔, 문득, 생각한다. 만약 내가 집에서 쓰러지면 누가 알까.
며칠 만에 알게 될까. 일주일? 한 달?
이 책은 유품정리사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그들이 현장에서 본 것, 느낀 것, 정리하며 발견한 것들.
각각의 사연은 다르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이 사라지는 방식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어쩌면 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을 고쳐도, 복지를 확대해도,
이웃이 관심을 가져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기록은 남겨야 한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