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방식
"이번 현장은 좀 달랐어요."
유품정리사 김 대표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의 손은 10년 넘게 이 일을 해온 사람답게 거칠었지만,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서른다섯이었거든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서른다섯. 내 동생과 같은 나이였다.
"보통은 60대 이상이잖아요. 혼자 사시다가, 지병이 있으시거나. 그런 경우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데.
서른다섯은...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김 대표는 그날 오전에 받은 전화를 떠올렸다. 집주인이었다. 월세 자동이체가 두 달째 끊겼고,
연락도 안 되고, 문 앞에 우편물이 쌓여있다고 했다. 경찰과 함께 문을 열었을 때,
이미 두 달이 지난 뒤였다.
"문을 여는 순간 알 수 있죠. 냄새로. 근데 이번엔... 이상했어요."
김 대표가 말을 잠시 멈췄다.
"집이 너무 깔끔했거든요."
60대 어르신들의 현장은 대개 비슷했다. 오래된 물건들, 정리되지 않은 공간, 쌓인 먼지.
하지만 이 집은 달랐다. 20평 남짓한 원룸이었는데, 침대는 벽에 붙어있고, 책상은 창가에 놓여있고,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거실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듯한, 깔끔한 1인 가구의 공간이었다.
"책상 위에 노트북이 펼쳐져 있었어요. 먼지만 쌓여있었지만, 원래는 매일 그 자리에서 일했을 거예요.
프리랜서 개발자였대요. 코드 화면이 그대로 띄워져 있더라고요."
냉장고를 열었을 때 김 대표는 한숨을 쉬었다. 편의점 도시락 용기 몇 개, 유통기한 지난 우유,
맥주 캔 몇 개. 냉동실엔 냉동식품들.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의 냉장고였다.
"싱크대가 깨끗했어요. 설거지할 게 없으니까요. 컵라면 용기가 몇 개 쌓여있었지만, 그것도 많지 않았어요. 다 배달시켜 먹었던 거죠."
휴대폰을 찾았다. 배터리가 나간 상태였다. 경찰이 충전해서 확인했는데, 마지막 통화는 두 달 전이었다.
어머니한테 온 전화였다. 받지 않았다. 그전 통화도 어머니. 그것도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받은 통화는 석 달 전, 배달 기사였다.
"문자는 더 슬프더라고요. 어머니가 매일 보냈어요.
'밥은 먹었니', '요즘 일은 어떠니', '주말에 집에 올래'.
답장은 한 달에 한두 번. '네', '바빠요', '나중에요'. 그게 다였어요."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때, 김 대표는 손을 멈췄다. 통장과 카드 명세서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프리랜서 특성상 수입이 들쭉날쭉했다. 어떤 달은 300만 원, 어떤 달은 0원. 카드값은 밀리고 있었다.
최근 6개월은 거의 수입이 없었다.
"구직 서류도 있었어요. 이력서, 자기소개서. 날짜를 보니까 사망하기 한 달 전까지 계속 쓰고 있었더라고요. 몇십 군데 지원했는데, 답장은 거의 없었나 봐요."
노트북 옆에 약이 있었다. 수면제와 항우울제. 처방전을 보니 정신건강의학과였다.
6개월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진료는 두 달 전. 약은 다 떨어져 있었다.
"SNS 계정도 찾았어요. 경찰이 보여줬는데...
몇 년 전엔 사진도 올리고 친구들이랑 댓글도 주고받고 그랬대요.
회사 동료들이랑 회식 사진, 주말에 등산 간 사진, 고양이 키운다고 자랑하는 사진.
그런데 1년 전부터 뚝 끊겼어요. 마지막 게시물이... '오늘도 파이팅'이었대요. 좋아요 3개."
고양이는 없었다. 아마 키우다가 어디론가 보낸 것 같았다.
고양이 사료 봉지와 장난감들이 베란다 구석에 있었다.
김 대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책장에 책이 꽤 있었어요. 자기 계발서, 코딩 책, 소설책도 몇 권.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진 구절들이 있더라고요. '포기하지 마라',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런 문장들."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달력이었다. 벽에 걸린 2023년 달력. 8월에 동그라미 표시가 하나 있었다.
'엄마 생신'. 그날이 지나고 일주일 뒤, 그는 발견됐다.
"유품 정리하면서 어머니가 오셨어요. 60대 초반? 문 앞에서 한참을 못 들어오시더라고요.
제가 '정리 다 끝났습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했는데도 한참을 망설이시더니,
그냥 고개만 숙이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아들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문 밖에 서서, 김 대표가 정리한 물건들만 봤다.
옷가지, 노트북, 책들. 그리고 사진 몇 장. 어렸을 때 가족사진, 대학 졸업사진, 회사 입사 첫날 찍은 사진.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세요?"
김 대표가 나를 쳐다봤다.
"'전화 좀 더 할걸. 자꾸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참았는데. 그냥 찾아갈걸. 미안하다고, 엄마가 올게,
그렇게 말할걸.' 그러시더라고요."
그 말을 전하는 김 대표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이 일 하면서 배운 게 있어요. 사람은 나이 순서로 죽는 게 아니라는 거.
그리고 혼자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 연결이 끊어지는 게 문제라는 거."
서른다섯. 한창나이. 아직 젊고, 배울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나이. 그런데 그는 사라졌다.
배달 기사만 그를 기억했고, SNS 친구 300명은 그가 사라진 줄 몰랐고,
어머니는 매일 문자를 보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가장 슬픈 건 뭔지 아세요?"
김 대표가 빈 커피잔을 돌리며 말했다.
"노트북에 파일이 하나 있었대요. '할 일 목록. txt'.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었대요.
'이력서 수정하기, 엄마 생신 선물 사기, 병원 예약하기, 친구한테 연락하기.' 다 체크 안 된 상태로."
그는 할 일 목록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했다.
이력서는 다시 쓰지 못했고, 어머니 생신 선물은 사지 못했고, 병원은 가지 못했고,
친구에게는 연락하지 못했다.
"서른다섯에 왜 이렇게 됐을까요?"
김 대표가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 정신건강 문제? 사회적 고립?
아니면 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걸까.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 이건 그 사람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까.
"요즘 젊은 사람들 현장이 늘고 있어요. 30대, 40대. 혼자 살고, 프리랜서 하고, 불안정하고.
관계는 다 온라인으로만 있고. 힘들어도 말 안 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끊어지는 거죠."
김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주에 또 현장 있어요. 이번엔 40대 여성이래요. 들어보실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