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방식
"이번 현장은... 좀 힘들었어요."
유품정리사 김 대표가 말했다. 서른다섯 살 남성 이야기를 나눈 지 일주일 만이었다.
그때 "다음 주에 또 현장 있어요. 이번엔 40대 여성이래요"라고 했던 바로 그 현장이었다.
"문을 열기 전부터 알았어요. 냄새로. 근데 이번엔... 다른 게 하나 더 있었죠."
"뭐였어요?"
"물건이요. 너무 많은 물건."
40대 중반 여성.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을 때, 민원이 여러 건 들어온 상태였다고 했다.
악취도 문제였지만, 복도까지 물건이 쌓여있었다. 택배 상자들, 쓰레기봉투들.
"경찰이랑 같이 문을 열었는데요, 열자마자...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물건의 벽이었어요."
현관문을 열면 보통 신발장이 보이고, 거실이 보인다. 하지만 이 집은 달랐다.
문 앞에서부터 물건이 쌓여있었다. 택배 상자, 옷가지, 비닐봉지, 신문, 잡지, 페트병, 음식물 용기.
"통로가 있었어요. 딱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 양옆으로는 다 물건이 쌓여있고.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김 대표는 그 통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거실도, 방도, 부엌도 다 똑같았다. 물건으로 가득 찼다.
소파는 보이지 않았다. 옷더미에 묻혀있었다. 식탁도 보이지 않았다. 택배 상자들이 쌓여있었다.
"침대 위에서 발견됐어요. 정확히는 침대 옆 바닥. 침대 위에도 물건이 쌓여있어서,
바닥 좁은 공간에서 주무셨던 것 같았어요."
얼마나 좁은 공간이었을까. 김 대표가 손으로 가늠해 보였다.
한 뼘 반 정도. 그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들었다가, 그곳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물건들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일단 쓰레기부터 분류하고.
근데 쓰레기랑 쓰레기 아닌 것의 경계가 애매하더라고요. 택배 상자는 쓰레기죠.
근데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다 확인해봐야 했어요. 혹시 중요한 서류나 유품이 있을까 봐."
상자를 열었다. 옷이었다. 새것. 택도 안 뗀. 홈쇼핑에서 산 듯한 옷들. 다음 상자. 건강식품. 개봉도 안 한. 또 다른 상자. 화장품 세트. 역시 개봉 안 함. 주방용품, 침구류, 운동기구, 책, 액세서리.
"다 새 거였어요. 한 번도 안 쓴. 왜 샀을까요. 쓰지도 않을 걸."
김 대표가 물었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사는 행위 자체가 위안이었을 것이다.
홈쇼핑 채널을 보면서,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결제 버튼을 누르면서, '이걸 사면 뭔가 달라질 거야' 하는 희망. 택배가 도착하면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하는 기대.
하지만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옷은 입지 않았다. 화장품은 바르지 않았다. 그냥 쌓였다.
위안은 오래가지 않았고, 다시 허전해졌고, 또 주문했다. 반복.
"거실 한쪽에서 서류 뭉치를 찾았어요. 이혼 서류였어요."
5년 전이었다.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 자녀는 두 명. 양육권은 남편. 위자료 없음.
재산분할로 받은 돈으로 이 아파트를 샀다.
"사진도 있었어요. 가족사진. 오래된 거.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남편이랑 같이 찍은. 액자에 넣어져 있었는데, 액자가 물건 더미에 묻혀있더라고요."
그 사진을 꺼내 보았을까. 밤에 혼자 앉아서. 아니면 묻어버리고 싶어서 일부러 물건으로 덮었을까.
"편지도 발견했어요. 봉투에 '엄마에게'라고 적혀있었어요."
아이가 쓴 편지였다. 초등학생 때 쓴 듯한, 삐뚤삐뚤한 글씨.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는 왜 안 와요. 나 잘못했어요. 엄마 사랑해요." 날짜를 보니 3년 전이었다.
"이 편지를 받고 뭐라고 답장했을까요. 아니, 답장이나 했을까요."
김 대표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책상 서랍에서 통장을 찾았다. 입출금 내역. 매달 들어오는 돈은 없었다.
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가는 돈만 있었다.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배달 앱. 점점 잔액이 줄어들었다.
마지막 몇 달은 카드로 결제했다. 카드 명세서를 보니 연체가 시작되고 있었다.
"약도 발견했어요. 정신과 약. 항우울제, 항불안제."
처방전을 보니 2년 전부터 다녔다. 진단명: 우울증, 저장강박증. 하지만 1년 전부터는 병원 기록이 없었다.
약도 다 떨어진 상태.
"부엌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여있었어요.
아니, 정확히는 일회용 용기들. 배달음식 먹고 그냥 쌓아둔 거죠. 냉장고도 열어봤는데...
차라리 안 열어볼 걸 그랬어요."
냉장고 안은 상한 음식들로 가득했다. 언제 산 건지 알 수 없는 것들.
곰팡이가 핀 것들. 김 대표는 냉장고 문을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상한 게 있었어요. 베란다."
"베란다요?"
"베란다만 깨끗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물건이 하나도 안 쌓여있었어요."
왜 베란다만? 김 대표는 추측했다.
"아마도... 거기만은 지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물건으로 가득 찬 집에서,
딱 한 곳만은 비워두고 싶었던 거. 숨 쉴 공간이 필요했던 거겠죠."
베란다 창가에 작은 의자가 하나 있었다. 먼지가 쌓인.
그 의자에 앉아서 밖을 보았을까. 저녁마다. 아이들 생각하면서. 예전 생각하면서.
"유품 정리하는 데 일주일 걸렸어요. 트럭 네 대 분량이었어요.
쓰레기만 두 대, 재활용품 한 대, 보관할 물건 한 대."
보관할 물건이라고 해봐야 많지 않았다. 가족사진, 아이들 편지, 통장, 서류. 옷이며 가구며 다 버렸다.
쓸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가족이 왔어요. 오빠라는 분이었어요. 동생을 오래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이혼하고 나서 연락이 끊겼대요. 자기가 찾아가려고 했는데, 동생이 '바빠서 못 만난다'라고 했대요.
몇 번 그러다 보니까 그냥... 안 찾게 되더래요."
오빠는 유품을 받아가면서 울었다. "집에 한 번만 왔으면, 한 번만 확인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
"제가 말씀드렸어요.
'형님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근데 형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김 대표가 나를 보았다.
"'버리지 못한 게 아니었구나. 버릴 힘이 없었던 거구나.' 그러시더라고요."
맞는 말이었다. 쓰레기집은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다. 우울의 결과다. 무기력의 결과다.
'오늘은 치워야지' 하다가 '내일 하자' 하다가 '다음 주에' 하다가, 어느새 손 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럼 더 무기력해진다. '이렇게 된 나는 뭐지', '나는 왜 이것도 못 하지' 하는 자책.
그리고 더 깊은 우울.
"가장 슬픈 건 뭔지 아세요?"
김 대표가 조용히 말했다.
"책상 위에 메모가 있었어요. '내일 할 일'이라고 적힌.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었어요.
'집 정리하기. 오빠한테 전화하기. 아이들 보러 가기.' 다 체크 안 된 상태로."
그녀는 해내지 못했다. 집을 정리하지 못했고, 오빠에게 전화하지 못했고, 아이들을 보러 가지 못했다.
물건에 묻혀 살다가, 물건에 묻혀 죽었다.
"이런 경우가 많대요. 특히 여성 1인 가구. 이혼하고, 일자리 잃고, 우울증 생기고.
그러다 저장강박증까지 생기면... 집이 이렇게 되는 거죠."
김 대표는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주에도 현장 있어요. 이번엔 20대래요. 더 어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사람. 또 하나의 사라짐.
기록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