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방식
"이번엔 좀 특이했어요."
유품정리사 김 대표가 말했다. 40대 여성의 쓰레기집 이야기를 나눈 지 일주일 만이었다.
그때 "다음 주에도 현장 있어요.
이번엔 20대래요"라고 했던 바로 그 현장이었다.
"특이하다니요?"
"스물여섯이었거든요. 그리고... 메모가 있었어요."
스물여섯.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나이.
"처음엔 냄새로 알았대요. 건물 관리인이 신고했죠. 여름이라 냄새가 심했나 봐요.
경찰이랑 같이 문을 열었는데..."
김 대표가 말을 잠시 멈췄다.
"문 열자마자 보이는 게 있었어요. 벽에 붙은 메모들."
벽. 원룸 현관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벽면에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고 했다.
어떤 건 연필로,
어떤 건 볼펜으로, 어떤 건 매직으로. 글씨체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날은 또박또박, 어떤 날은 휘갈겨 쓴 듯.
"뭐라고 적혀있었어요?"
"'죄송하다 철벽걸은 두이다'."
"... 두이다?"
"두렵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 손이 떨려서 제대로 못 쓴 거죠, 아마."
김 대표는 다른 메모 내용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프지 않은 인생 스스로 맞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마지막 건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래요. 경찰이 알려줬어요."
스물여섯 청년이 혼자 있는 방 벽에 붙여놓은 메시지들. 누구에게 보내는 말이었을까.
자신에게? 세상에게? 아니면 누군가 발견해 주길 바라며?
"거실로 들어갔어요. 작은 원룸이었어요. 깔끔했어요.
아까 그 40대 여성 분 집이랑은 정반대였죠.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었어요. 침대는 벽에 붙어있고, 책상은 창가에 있고."
하지만 그 깔끔한 방 안에서, 청년은 홀로 죽어갔다.
"책상 위에 이력서가 쌓여있었어요."
김 대표가 잠시 말을 멈췄다.
"150장."
"... 150장이요?"
"네. 세어봤어요. 정확히 150장.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게 쓴 거죠. 자기소개서도 있었고, 수정본, 재수정본.
어떤 건 프린트해 놨고, 어떤 건 손으로 고쳐 쓴 흔적이 있었어요."
150장의 이력서. 150번의 희망과 150번의 시도. 그중 몇 번이나 답장을 받았을까.
그중 몇 번이나 면접까지 갔을까.
"노트북도 켜봤어요. 경찰이. 메일함이 있었는데... 불합격 통지 메일이 수십 통. '서류 전형 불합격',
'아쉽지만 이번 기회에는', '좋은 인재이시지만 이번에는 인연이 되지 못해'. 그런 문장들."
정중한 거절. 하지만 거절은 거절이다.
한 번 받으면 속상하다. 열 번 받으면 좌절한다. 백 번 받으면?
김 대표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책상 서랍엔 수첩이 있었어요.
거기에 날짜별로 적혀있더라고요. 'A사 서류 합격, 면접 준비', 'B사 1차 면접 통과', 'C사 최종 면접'. 근데 다 줄 그어져 있었어요. '불합격'. 빨간 펜으로."
최종 면접까지 갔다는 건, 거의 다 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거의'는 '합격'이 아니다.
최종에서 떨어지는 게 더 아프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 '뭐가 부족했을까',
'나만 떨어진 건가' 하는 생각들.
"부모님이 증언하길, 6개월 전에 유학 간다고 했대요. 집 나가면서."
"유학을요?"
"근데 사실은 유학 간 게 아니었죠. 그냥 이 원룸에 들어와서 취업 준비한 거예요.
부모님한테 말 못 하고. '
나 외국 갔어, 바빠서 연락 못 해'라고만 문자 보내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
취업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을까. '
조금만 더 하면 될 거야' 하는 희망이 있었을까.
"한 씨라는 분이 있어요. 고독사 연구하시는 분인데, 청년 고독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대요."
김 대표가 말을 이었다.
"'도와달라'는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것. 이렇게 힘들어하는 줄 알았다면 도와줬을 텐데.
그게 가장 미안한 거라고."
침대 옆에는 약이 있었다. 정신과 처방약. 항우울제와 수면제. 처방전을 보니 6개월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우울증, 불안장애'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3개월 전부터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약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왜 병원을 안 갔을까요?"
김 대표가 물었지만,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병원비. 시간.
혹은 '이 정도로 병원 가는 건 약한 거 아닐까'라는 생각. '조금만 더 버티면 취업되고,
그럼 괜찮아질 거야'라는 희망.
"냉장고엔 거의 아무것도 없었어요.
컵라면 몇 개, 유통기한 지난 우유, 편의점 도시락 용기. 제대로 먹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루 한 끼로 버티거나, 아니면 하루 종일 굶거나. 컵라면 하나로 점심과 저녁을 때우거나.
통장 잔액을 보면서 '오늘은 참자' 하면서.
책장에는 취업 관련 책들이 꽂혀있었다. '합격하는 자기소개서 쓰는 법', '면접의 기술',
'대기업 인적성 완벽 대비'. 형광펜으로 줄 쳐진 페이지들. 귀퉁이가 접힌 책들. 메모가 빼곡한 페이지들.
"그 옆에 소설책도 몇 권 있었어요. ''
데미안, 연금술사, 아몬드. 다 밑줄 쳐져 있더라고요. 특히 데미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 구절에."
스물여섯 청년은 알을 깨려고 했다. 150번 시도했다. 벽에 메모를 붙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며 알에서 나온다." 하지만 세계는 너무 단단했고, 그는 너무 혼자였다.
"통장도 봤어요. 거의 바닥이었어요.
부모님이 가끔 돈을 보내주셨나 봐요. '생활비'라고 적혀서 입금된 게 몇 번 있었어요.
근데 그것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안 됐어요. 아마 부모님도 여유가 없으셨나 봐요."
김 대표가 조용히 말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건 뭔지 아세요?"
"뭐였어요?"
"달력이었어요. 벽에 걸린 달력. 거기에 동그라미 쳐진 날짜가 딱 하나 있었거든요.
'엄마 생신'. 그날이 지나고 2주 뒤에 발견됐어요."
어머니는 아들이 외국에 있는 줄 알았다. 생일에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지? 건강 챙기고. 힘들면 언제든 연락해." 답장은 왔다. "네 엄마, 잘 지내요.
바빠서 전화는 못 해요. 걱정 마세요."
하지만 아들은 외국이 아니라 서울의 한 원룸에 있었다.
엄마 생신을 달력에 표시해 놓고, 선물을 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취업하면 좋은 거 사드려야지' 하면서.
"유품 정리할 때 부모님이 오셨어요. 어머니는... 방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시더라고요.
문 앞에서 계속 우시기만 하셨어요.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고."
아버지는 이력서 150장을 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겨보셨다. 아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리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계셨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김 대표가 나를 보았다.
"'미안하다. 아빠가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힘들면 말하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믿고 기다렸구나. 미안하다.' 그러시면서 우셨어요."
김 대표는 이력서 150장을 상자에 담으면서 생각했다고 했다.
이 청년은 게으른 게 아니었다.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했다. 혼자서. 말없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통계 봤더니요, 정신질환으로 진료받는 환자가 170만 명이래요.
그중에 20-30대가 가장 많대요. 우울증 상담 건수도 2019년에 22만 3000명이었는데, 2020년엔 43만 5000명으로 두 배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숫자로 보면 통계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가 사람이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친구다.
그리고 그들은 벽에 메모를 붙이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청년 우울증이 곧 고독사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예방책을 찾는 게 중요하다.
최소한의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막상 그 청년에게, 그 순간에, 손을 내밀 사람이 있었을까.
김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주에도 또 연락 왔어요. 다음 현장."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사람. 또 하나의 사라짐.
기록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