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지우는 서류를 넘기다 멈췄다.
청파역 재개발 소송. 원고 이준혁. 피고 상가 주인 스무 명.
서류 두 뭉치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왼쪽은 준혁 측. 오른쪽은 상가 주인 측.
왼쪽이 두꺼웠다. 계약서, 등기부등본, 재개발 허가서, 변호사 의견서. 모두 깔끔했다.
오른쪽은 얇았다. 진정서, 탄원서, 사진 몇 장. 삼십 년 된 가게 사진들. 낡은 간판. 바랜 메뉴판.
지우는 오른쪽 서류를 집어 들었다.
'김영수(67세) 분식집 운영 32년' '박순자(71세) 구멍가게 운영 35년' '이철호(64세) 철물점 운영 28년'
나이. 모두 육십 대 이상.
지우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펜을 들었다. 소송 준비 서면을 써야 했다.
'원고의 주장은 법적으로 타당하며...'
손이 멈췄다.
전화가 울렸다. 준혁이었다.
"변호사님, 언제 기일 잡히나요?"
"다음 주쯤 통보 올 거예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시간 좀 걸릴 수 있어요."
"왜요? 법적으로 제가 맞잖아요."
지우는 창밖을 봤다.
"네. 그렇긴 한데..."
"그럼 됐죠. 빨리 처리해 주세요."
전화가 끊겼다.
지우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서류를 봤다. 오른쪽 뭉치. 얇은 것.
김영수. 박순자. 이철호.
그들은 다음 주 법정에 올 것이다. 삼십 년 장사한 가게를 지키려고.
지우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놓았다.
같은 날 오후.
선미는 무료진료소에 있었다. 목요일은 오후만 진료했다.
"다음 분."
미경이 불렀다. 문이 열렸다.
휠체어가 들어왔다. 박민호였다.
"또 오셨어요?"
선미가 물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주에 드린 약은요?"
"다 발랐는데요."
"좀 나아졌어요?"
민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선미는 알았다.
"보여주세요."
욕창은 더 심해져 있었다.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피부가 더 깊이 벗겨졌다.
"이거..."
선미가 말을 멈췄다. 민호는 표정이 없었다.
"병원 가셔야 해요. 여기선 한계가 있어요."
"돈이..."
"응급실 가세요. 나중에 분할 납부라도."
"신용불량이에요."
선미는 처방전을 다시 썼다. 더 강한 연고.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쿠션은요?"
물어놓고 후회했다. 민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방전을 건네며 선미가 말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세요. 확인해야 해요."
"네."
민호가 휠체어를 돌렸다. 선미는 그의 등을 봤다. 더 굽어 있었다.
"민호 씨."
"네?"
"쿠션..."
말이 막혔다. 삼십만 원. 선미에게는 작은 돈이었다. 오전에 한 명만 봐도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꼭 사세요."
"... 네."
민호가 나갔다.
선미는 차트를 닫으며 펜을 들었다. 그리고 그냥 놓았다. 쓸 말이 없었다.
저녁.
선미는 집에 있었다. 혼자였다. 딸 서연은 아직 안 왔다.
여덟 시가 넘어서 문이 열렸다.
"엄마."
"왔어?"
서연이 들어왔다. 편의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밥 먹었어?"
"응. 편의점에서."
"또 도시락?"
"바빠서."
서연이 방으로 들어갔다. 선미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선미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TV를 켰다. 뉴스였다.
'청파역 재개발 본격화... 상가 주인들 반발'
화면에 상가 주인들이 나왔다.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생존권 보장하라' '권리금 달라'
선미는 채널을 돌렸다. 드라마가 나왔다. 젊은 남녀가 키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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