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툴루즈, 보르도
국경을 하나 넘어야 하는 것 때문에 걱정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툴루즈로 넘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갈아탈 필요도 없이 한 번에 툴루즈까지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걱정은 하나 더 있었다. 프랑스 전역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방문할 곳에는 호스텔이 정말 거의 없었던 것이다. 포르투갈, 스페인을 한 달쯤 돌아다니면서, 숙소 걱정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생소한 고민거리였다. 어딜 가든, '도시 이름 + Hostel'을 인터넷에 치면 그 지역에 있는 호스텔이 주루룩 나왔으니까. 비교적 작은 도시인 말라가나 론다 같은 곳에도 호스텔은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엔, 정말이지 호스텔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것도 스페인의 그것보다는 더 비쌌다. 이럴 때, 하늘이 오누이에게 내려준 동아줄처럼 내려온 게 있었다. 카우치서핑이다.
사실 포르투갈에서도, 스페인에서도 도시를 옮기기 전에는 꼭 몇 건씩 카우치서핑 리퀘스트를 보냈지만, 한 달 동안 꾸준히 거절당하더니 웬일로 툴루즈에서는 리퀘스트를 받아준 것이었다. 호스텔이 아니면 호텔밖에 없는 남프랑스였기에, 만면에 화색이 도는 건 당연한 일. 그렇게 나는 카우치서핑의 첫 경험을 프랑스 툴루즈에서 하게 되었다. 툴루즈에 도착한 건 조금 늦은 저녁이었는데,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세바스티안 씨가 차를 끌고 마중을 나와주신 덕에 숙소까지는 빠르게 갈 수 있었다.
이튿날, 다행히 날씨는 화창했고 나는 프랑스에서의 첫날을 시작하러 발을 옮겼다. 툴루즈는 사실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한 도시는 아니었다. 이번 여행, 프랑스에서 꼭 들르기로 한 곳은 두 곳이었다. 보르도와 디종. 와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왜인지 아시리라. 프랑스가 '와인의 나라'를 쓰고 있는 데 가장 혁혁한 공로를 세우는 두 지방이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르도로 바로 갈 수도 있었지만, 장거리를 그렇게 급하게 이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말라가에서 발렌시아 올 때 12시간 동안 버스를 탔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런 이유로 보르도와 바르셀로나 중간에 있으면서 적당히 큰 도시인 툴루즈는 좋은 선택지였다.
툴루즈는 작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큰 도시도 아니었다. 구 시가지를 다 둘러보는 데에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국경 하나를 건넌 것만으로 생긴 차이가 들어왔다. 언어.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게 왜 그리 신기해 보였을까. 육로로 국경을 건넌 경험이 많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도착하면, 왠지 '외국'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든다. 외국어가 들려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언어가 달라져야 더 자연스러운 듯한 기분. 하지만 버스나 기차로 국경을 건넜는데 다른 언어가 들려오는 건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때쯤, 카우치서핑 호스트인 세바스티안 씨와 함께 강가로 나왔다. 친구가 몽펠리에 인근에서 만들고 있다던 와인과 함께한 간단한 피크닉이었는데, 카우치서핑의 묘미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여행이 뭔가 거쳐간다는 느낌이었다면, 카우치서핑은 퐁듀처럼 한 번 담가졌다 나오는 느낌이랄까. 그저 '이방인'이 아니라 '현지인의 친구'가 되는 건 그랬다.
조금의 미련도 없이 툴루즈를 떠난 내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보르도였다. 보르도(Bordeaux). 흔히 '5대 샤토'라고 불리는 세계 유수의 와인들을 만들어내는 와이너리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발을 디디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더불어 여기서도 카우치서핑을 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었기에, 나는 지난 툴루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보르도 역시 굉장히 만족스럽게 여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도착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르도에서의 나흘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 글의 제목인 '현실의 벽'이 여느 때보다도 높게 느껴졌던 때였기에.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곳에 왔지만, 포르투에서와 마찬가지로 변덕스러운 비가 이틀간 내렸다. 보르도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였던 '와이너리 방문' 역시 쉽지 않았다. 물론 관광안내소에서, 사전에 정해진 두 군데의 샤토를 방문하고 네 잔 남짓의 와인을 시음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르도에서 하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직접 방문할 와이너리를 골라서 들어가 보고, 시음도 좀 더 많이 해보고 싶었다. 5대 샤토의 와인을 시음해보는 건 무리 더라도, 먼발치에서나마 보고 싶었는데, 사실상 불가능했다.
돌이켜보면, 보르도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일단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갔던 게 문제였다. 보르도는 꽤 넓고,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보르도 와인이 출하되는 '메독(Medoc)' 지역으로 자력으로 가는 방법은 사실상 렌터카를 이용하거나 현지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이런 날씨에 걸어서 가는 것도 미친 짓이었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마찬가지인 데다가 애초에 대여해주는 곳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중교통 정보는 한정적이고,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부탁하자니 눈치가 보인다. 더욱이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몸이 그렇게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호스트가 좋지 않은 몸으로도 배려를 해준 덕에 조금 가까운 편인 생떼밀리옹 지역은 방문해볼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길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었기에, 몸살 기운이 있던 호스트가 오래 돌아다닐 수 없었다. 호스트의 집은 보르도 시내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진 지역에 있었는데, 대중교통도 거의 닿지 않아 나 홀로 남아서 보고 가는 건 불가능했다. 카우치서핑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호스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호스트가 몸이 안 좋으니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든 상황. 그렇게, 나는 어떻게 할 방법도 모른 채 나흘 동안 꿈에 그리던 곳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다 올 수밖에 없었다.
호스트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건 아니다.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고, 나흘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집의 9살짜리 딸한테 그림 그려주면서 재미있게 놀기도 했고, 그건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이다. 그냥, 보르도를 떠나면서는 아쉬움이, 그리고 나에 대한 짜증이 너무 많이 남아서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왜 내가 꿈에 그리던 곳을 들르면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같은, 안이한 생각을 한 걸까. 다소 눈치가 보여도 호스트를 졸라서 데려다 달라고 해야 했을까. 백 몇십 유로를 쓰면서라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 와인 투어 프로그램이라도 가볼 걸 그랬나. '이랬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은, 보르도를 나는 기차 안에서도 여전히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종국에는 보르도라는 도시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내가 조금만 더 준비했으면, 그 뭔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라도 뭔가를 했더라면 더 잘 보고, 느끼고 떠나는 기차를 조금은 더 홀가분한 기분으로 탈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후회는 꽤 오랫동안, 사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단지 달라진 점이라면, 나를 조금은 용서해주게 되었다는 것. 더 많은 준비를 했다면 좋았겠지만, 나와 같은 여행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고, 호스트의 건강 상태나 유난히 안 좋았던 날씨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꽤 많았다는 걸 어느 정도는 인정하게 되었달까.
때로는 정말 일단 저지르고 보면 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준비 없이 일단 저지르는 일이 마냥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현실의 벽은, 때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높게 다가온다. 내가 꿈꾸던 것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많이 알아보고 준비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게 좋은 결과로 돌아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면 아쉬움은 남지 않으리라. 보르도는 아쉬움을, 그리고 조금은 씁쓸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여행은 없는 법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