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 side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quaviT Jun 14. 2016

청객(請客)이 된다는 것

B-Side : 카우치서핑

  그동안 여행기 연재가 굉장히 뜸했다. 반성한다. 굳이 구차한 변명을 해보자면, 그동안에는 글을 쓸만한 여건이 나오지 않았다. 꼭 잘 나가는 작가가 편집자 피해 다닐 때 쓰는 말 같지만, 뭐 그랬다. 와이파이가 없거나 안 잡힐 때도 있었고, 와이파이가 잡힐 때는 오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결국은 그런 변명 탓에 내 여행기는 실제 여행보다 한 달 정도가 늦은 셈이다. 이번엔 그 한 달동안 가장 특별한 경험'들'이었던 '카우치서핑(Couchsurfing)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묵었던 카우치.



  에버딘에서 카우치서핑 - 이게 9번째 카우치서핑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엊그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들'이었던 그 9번의 카우치서핑 과정에서 느낀 바를 좀 풀어보고자 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사실 카우치서핑을 굉장히, 어쩌면 마냥 이상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시리라고 생각해서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물론 나보다 카우치서핑을 몇 배는 더 많이 해본 분들이 쓴 글도 있긴 하겠지만, 그냥 지나가다 이 글을 읽게 될 분들이 알아두면 좋을 법한 사항들 위주로 이야기해 보겠다. 카우치서핑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시작하는지는 이미 정보글이 수없이 많으므로 거기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재워준다는 개념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도 무료로! 사실 이 '무료'라는 부분이 사실상 카우치서핑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기도하다. 여행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 중 하나인 의, 식, 주를 잘 하면 한꺼번에 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하지만 카우치서핑을 몇 번 해보고 느낀 바로는, '공짜'가 좋아서 카우치서핑을 시도할 수는 있어도, '공짜'만 밝혀서는 카우치서핑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몽펠리에에서의 세 번째 카우치서핑. 그 집에서 보이는 풍경



  다소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장기 여행을 하는 입장에서, 다소 팔자 좋게 '대충 숙박은 카우치서핑으로 해결하지 뭐~'하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 카우치서핑은 웹사이트도 있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도 나와있으니 일단 가서 대충 리퀘스트를 보내면 알아서 수락해주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약 한 달,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열 번 두드리면 열 번 다 거절당하다 보니 종국엔 그냥 '숙박=호스텔'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프랑스로 넘어가면서는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호스텔이 없었다! 카우치서핑을 해야 하는 굉장히 절박한 이유가 생겼고, 다행히도 카우치서핑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엔 숙박을 무료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기뻤지만 몇 번 경험하다 보니 이것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일단은 장점부터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서는 호스트의 친구들과 간단한 피크닉을 했다.



1. 공짜. 무료. Free.


   말 그대로다. 호스텔에서 묵는다고 해도 하루 최소 10~15유로 정도가 들 테고, 호스텔이 없는 지역이라 B&B나 호텔에서 묵는다면 50유로 이상이 들 텐데, 그 정도를 무료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카우치서핑의 가장 큰 매력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가정집이다 보니, 운이 좋으면 세탁기도 쓸 수 있으며 인심 좋은 호스트를 만나면 식사도 대접받을 수 있다. 의, 식, 주가 정말 한꺼번에 공짜로 해결되는 것이다. '주'에 들어가는 돈이 절약되는 만큼 식사나 기념품 구입에 돈을 더 넉넉하게 쓸 수도 있다. 그야말로 개꿀.



2. 현지인


  외국인 친구가 한국으로 놀러 와서 우리 집에서 자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뭘 해주고 싶은가? 여기 데려가서 이런 것도 먹여주고 싶고, 저기 데려가서 저런 것도 보여주고 싶고... 카우치서핑도 마찬가지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이 자기 집에 와서 묵는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고, 대부분의 호스트는 그들의 게스트와 좋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현지인만이 알고 있는 독특한 여행지나 맛집, 혹은 버스나 기타 여행정보 등을 들을 수도 있다. 혹은 호스트가 시간과 인심이 넉넉하다면, 여행지까지 자가용으로 태워주거나 할 수도 있고, 여러모로 좋다. 게다가 호스트의 친구나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게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는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카우치서핑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여행의 큰 매력 중 하나인 친구 만들기를 손쉽게 할 수 있기도 하니까.



스코틀랜드 엘긴(Elgin)에서의 카우치서핑. 하루만 신세졌지만, 호스트가 굉장히 친절했다.



  장점만 들으면 상당히 이상적인 숙박 시스템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니만큼 장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단점 역시 존재한다. 내 경험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느껴온 나름 '일반적'인 단점들을 꼽아보고자 한다.



1. 남의 집.


  사실 카우치서핑이란 시스템은 이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남의 집이기에 특별하고, 남의 집이기에 좀 불편하다. 호스텔이나 호텔 같은 경우, 내가 내 돈 내고 들어온 만큼 거의 모든 걸 떳떳하게 할 수 있다. 규칙만 지킨다면 대부분은 남의 눈치 볼 일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얘기다. 여행하다가 피곤하거나 몸이 안 좋으면 그냥 들어와서 쉬면 된다. 하지만 카우치서핑은 나를 위해 배려를 해주는 남의 집이다. 아무래도 좀 눈치가 보이긴 한다. 그리고 주중에 서핑을 하게 된 경우, 대부분의 호스트는 직장인이라 일을 해야 한다. 즉 호스트가 출근할 때 같이 나가서 퇴근하기 전까지는 어디서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는 뜻이다. 뭘 잊고 나왔거나, 갑자기 몸이 안 좋다거나 할 때는 정말 낭패. 그리고, 호스트의 생활패턴이 나와 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둬야 한다.  이것도 '남의 집'이기에 벌어지는 상황 중 하나이긴 하다. 예를 들어, 난 콜마르에서 2박 3일간 묵었다. 나를 호스트 해준 건 거기서 유학 중인 인도인 친구였는데, 가감 없이 말해서 집이 정말 더러웠다. 숙소가 마땅찮으니 거기서 자기는 했지만, 정말 더러워서 내가 청소를 다 해줄 정도였다. 이불이나 배게도 없이 매트리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어서 자는 것도 불편했다. 물론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나름 괜찮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 집의 더러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2. 불확실성


  속된 말로, '똥줄이 탄다'. 호스텔이나 호텔 같은 경우, 그냥 예약을 하고 그 날짜에 맞춰서 이동을 하면 된다. 어긋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확실하다. 마음 편히 일정을 진행할 수 있고, 돌아오면 마음 편히 쉴 수 있다. 하지만 카우치서핑의 경우, 일단 리퀘스트를 보내 두고 응답이 오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수십 번 카우치서핑을 보내봤지만, 하루 안에 답장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응답을 늦게라도 하면 양반이고, 아예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부분이 좀 정 떨어지는 부분 중 하나다. 안 받아줄 거면 대답이라도 빨리 하던지, 대답을 받기까지가 굉장히 초조하다. 이런 점 때문에, 한동안은 그냥 호스텔만 이용했었다. 돈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남의 집에 가서 자도 되겠냐고 부탁하고 초조하게 대답 기다리는 게 좀 짜증 나기도 했고.



스코틀랜드 에버딘(Aberdeen)에서 신세졌던 곳. 에어매트리스였다. 여기도 호스트는 굉장히 친절.



  보시다시피, 장점과 단점이 굉장히 뚜렷한 게 카우치서핑이라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장점과 단점 모두 '남의 집'이라는 사항에서 기인한다. 남의 집이기에 새로운 경험이나 몰랐던 사실을 알 수도 있고, 남의 집이라서 다소의 불편함도 감내해야 하며 눈치도 봐야 한다. 하지만 단점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장점 또한 돋보이는 게 카우치서핑. 이번에는 좋은 서퍼, 즉 청객(請客)이 될 수 있는 팁을 소개한다. 



2번째 카우치서핑, 보르도.




1. 활발한 의사소통


  카우치서핑의 호스트들은 대부분 '이국적'인 무언가를 기대한다. 물론 여행객에게 친절을 베푸는 게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자기 집에 온 외국인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너희 나라는 어떤 나라니? 뭐가 특이하니?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한국은 워낙 조그마한 나라이다 보니, 어떤 나라인지 감을 잘 못 잡는 호스트들이 꽤 많았다. 뭘 먹는지, 보통 뭘 하는지(또래 친구가 호스트면 가끔 '페이커네 나라?'라던 경우도 있었다ㅎ). 한국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정도 영어가 된다면,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게 많다면 호스트에게 성심성의껏 설명해주자. 혹은 호스트가 만들어준 차나 식사 등을 먹고 '정말 맛있었다'는 표현을 해주는 것도 좋다. 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자. 



2. 기브 앤 테이크.


  앗싸! 카우치서핑을 하게 됐다! 공짜다, 공짜! 축하한다. 공짜로 잘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마냥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다. 무조건 받기만 하는 것보다는, 내 쪽에서도 작은 거라도 베푸는 게 좋다. 카우치서핑을 염두에 두고 여행을 떠난다면, 호스트에게 줄 조그마한 선물이나 외국에서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 정도는 연습해가자. 꼭 한국 요리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 음악을 추천해 준다거나, 일정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맥주나 와인을 사 가서 같이 마신다거나, 식사 후 설거지를 해준다거나. 베풀 수 있는 방법은 많다. 



3. 언제 리퀘스트를 보낼까?


  리퀘스트란 '나 언제 너희 집에 가서 자도 돼?'라는 요청글이다. 이것도 상당히 정성을 들여서 써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라도 생면부지의 외국인이 우리 집에 와서 잔다면 '내가 누구고, 한국엔 왜 왔으며 내 관심사는 이것이라서 너와 재밌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고....'등등, 자세하게 요청을 써서 보낸 사람을 재워주지, 딸랑 '야, 나 여행하는데 재워줘.'라고 보내는 사람을 재워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정성 들여 쓴 리퀘스트를 언제쯤 보내야 할까. 경험상으로는, 적어도 사흘 전쯤엔 보내는 게 좋다. 간혹 일주일이나 더 이르게 보내면 '그때 내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더 나중에 얘기해'라는 호스트도 있었고, 사흘 전에 보내도 '너무 늦게 보냈어. 벌써 카우치 꽉 참. ㅅㄱ'라고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Last minute request'라 해서 정 잘 데 없는 사람이 '누구 나 좀 재워줄 사람!'하고 보내는 리퀘스트도 있고, 의외로 성공하기 쉽다. 한 마디로, 결국 호스트와 지역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이야기.




프랑스 아비뇽(Avignon)에서의 카우치서핑.


 


  여행이 특별한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을 만들기도 하며,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면 카우치서핑은 분명히 좋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그 좋은 시스템을 잘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도움을 받았으니 베풀어야 하고, 호스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어느 정도 준비도 필요하다. 빼곡하게 적은 프로필과, '난 너의 프로필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단다'고 팍팍 어필하는 리퀘스트, 그리고 호스트의 관심사를 알아두어서 화젯거리를 구상해두는 것 정도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착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생각한다. 



  다소 두서없게 적은 듯한 글이지만,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이나 카우치서핑에 대해 궁금한 분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됐으면 하며 이만 글을 닫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B sides : 코임브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