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 쾰른
티티제를 떠난 후 내가 온 곳은 쾰른.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읽어봤다면 알고 있을, 고딕 양식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만한 쾰른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작성했던 거창한 계획대로라면 더 서쪽으로 가서 독일까지 일주해야 했겠지만 이 때는 슬슬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기 시작했던 때였고, 더군다나 중동 난민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한참 돌고 있었기에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로 다시 들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왕 벨기에로 갈 거라면 중간에 하나 정도는 더 들러도 괜찮겠다, 싶었고 그게 쾰른이었다. 중,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재미있게 공부했던 나로서는 쾰른 대성당을 꼭 한 번 눈으로 보고 싶었기에.
보통 관광지의 트레이드 마크는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쾰른은 그렇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리고 역 정문으로 나오자마자 '아, 저거구나'싶은 덩치 큰 건물이 떡-하니 서있었다. 역시나 쾰른 대성당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큰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가려웠기 때문이다. 프랑스 디종에서 베드 버그에게 물렸던 곳이 여전히 퉁퉁 부어있었고, 정말 미치도록 가려웠다. 몸을 움직여서 조금 열이 오르면 더 가려웠던 것 같다. 도시 간 이동을 하느라 캐리어와 짐을 가지고 걸어야 할 때의 간지러움은 정말 말도 못 한다. 그랬기에 나는 일단 역 근처에 있는 약국으로 들어갔고, 독일어는 전혀 못했지만 대충 상처를 보여주면서 약을 달라고 했더니 약사 아줌마가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약을 줬다. 근처에 있던 호스텔에 체크인한 후 약을 먹고 조금 쉬었더니 가려움도 가라앉았고, 나는 드디어 쾰른 대성당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사실 쾰른은 그렇게 볼 게 많은 도시는 아니다. 박람회나 카니발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내가 쾰른을 찾은 시기와는 연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다른 곳에 비해 명승고적지가 부족한 이유는 바로 전쟁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쾰른은 연합군의 집중 폭격을 받으면서 도시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렸고, 그 바람에 도시의 오래된 건물들도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성당 역시 온전치 못했다.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보내며 수많은 문화재를 잃은 우리나라의 모습이 겹쳐 보여 안타까웠다.
전쟁의 흔적은 성당을 파괴한 데서만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성당의 얼굴에 먹칠을 해버렸다. 천여 대의 폭격기가 도시 전체에 쏟아부은 폭탄 덕에 성당은 검게 그을려버렸고, 지금도 여전히 검게 남아있다. 다만 보수공사를 하면서 돌을 갈아 끼운 부분만 뜬금없이 하얗다. 이 때는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고, 그 뜬금없이 하얀 부분이 주홍색으로 물들었음에도 검은 부분은 묵묵히 검은색이어서, 그 대비가 조금 슬퍼 보였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성당을 봐왔지만, 쾰른 대성당은 역시 올려 찍는 맛이 있는 성당인 것 같다. 하늘을 향해 드높게 뻗어있는 종탑 두 개가 꼭 필통에 꽂아 놓은 연필 두 자루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게 그을려 약간 회색빛을 띄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 봐도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 성당은 역시나 경이로울 만큼 오랫동안 지은 결과물이다. 13세기 중반부터 짓기 시작해 19세기 말인 1880년에야 완공이 됐다고 한다. 이런 걸 생각해보면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오래 걸려 짓는 것도 아닌 셈이다(물론 건축기술의 발달 차이는 고려해야겠지만...).
쾰른 대성당의 내부는 역시 그 규모에 걸맞게 웅장했고, 또 조용했다. 쾰른 대성당은 그 규모와 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 역시 아름답기로 유명했는데, 다행히 폭격 전에 미리 떼어서 따로 보관한 덕에 완파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교좌성당이라는 위치에 비해서는 제대가 좀 심심했던 게 의외였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은 지방의 작은 도시라고 해도 오래된 성당은 꽤 제대를 으리으리하게 꾸며놓곤 했었는데 말이지. 더불어 쾰른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쾰른 대성당에는 예수님의 탄생 때 찾아와 알현한 세 동방박사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중동 태생인데 왜 거기까지 찾아가서 알현한 '동방'박사가 독일에 묻혀있는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성당 관람을 마친 후, 그 주변을 돌아다녀 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곳은 없었다. 이 도시가 쾰른 대성당 하나만 남기고는 싹 다 리모델링된 거나 마찬가지이니 그럴 만도 했다. 사실 이 성당이 오히려 뜬금없게 느껴진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역 앞에 떡 하니 놓여있는 데다가, 주변엔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일반 시가지인데 뜬금없이 이렇게 큰 건물이 놓여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성당이 외로워 보였다.
육백 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공되자마자 육십 년 후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린 도시에서 여기저기 다쳐버린 성당의 모습은 저녁이 되면 조금 괴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칙칙한 색으로 얼굴을 분칠한 성당은 어둠에 빠르게 물들었고, 그 주변을 밝혀주는 불빛이 간신히 몇 개 보였을 뿐이었다. 가장 중세 답지만, 포화 속에서 외롭고 칙칙하게 변해 혼자 남은 쾰른 대성당. 가끔은 불야성을 이루는 서울의 풍경이 그리워지는 때도 있다. 저녁을 맞아 홀로 앉아있는 쾰른 대성당을 마주한 날이 바로 그런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