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ransfer
응급실은 언제나 밤이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곳이다. 넘어져 얼굴을 다친 취객의 술냄새와 피비린내
그리고 소독약 냄새가 겹겹이 쌓여 만든 냄새는, 아무리 환기를 해도 건물 깊숙한 콘크리트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비명이 따라 들어오고, 심전도 모니터의 파형이 오르내릴 때마다
긴장감이 오르내린다. 여기가 세상의 진실이라면, 진실은 언제나 고통이다. 나는 그 고통과 함께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그리고,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선해 보이는 얼굴로 온갖 악행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면서 미소를 보내는
위선자들. 때로는 악을 선으로 포장해하기도 하는 인간들. 인간이 선하지 않다는 건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교육과는 상관없다. 오히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 악인이 더 많은 법이다.
나는 그 사실을 몸소 알려주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병을 옮기는 능력을 가진 닥터 트랜스퍼이다.
내게 주어진 능력은 단순하다. 오늘 내가 진료한 환자의 질환 중 하나를 내 몸에 옮길 수 있다. 단, 3일 안에
다른 누군가에게 전이해야 한다. 접촉은 여러 방식으로 가능하다. 손을 잡던 그냥 피부를 스치든 방법은
중요치 않다. 결과만 중요하다.
오늘도 카트 위에 차트가 쌓인다.
“삼십 대 후반 남자, 흉통, -위장관 출혈 의심.”
“열세 살 여자아이, 고열, 탈수.”
“삼십 팔세 여성, 황달, 복통, 등, 어깨통증, 췌장염 가능성.”
“이십 대 남성, 오토바이 사고, 개방성 골절.”
환자의 병력을 조사하고 시진, 청진, 촉진을 한다. 예상되는 병을 확진하기 위해 필요한 검사를 한다.
환자 곁은 늘 시간과 싸우는 전쟁터 같다. 나는 동시에 다른 시간과 싸운다. 3일, 72시간 이라는 알람에
맞춰져 있는 타이머이다. 나는 오늘 이곳에 온 환자의 질환들 중 하나를 내 몸에 심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시계는 시작된다. 삼일 동안은 아무런 증상이 없다. 나는 삼일 안에 그 병을 나쁜 이에게
옮겨야 한다. 만약 3일 안에 전이하지 못하면? 그 병은 온전히 내 안에 자리 잡게 된다. 납득할 수 없는
규칙이라도 규칙은 규칙이다. 내가 병을 가져온 환자는 내가 전이에 성공하는 순간 병으로부터 회복된다.
단, 진단이 정확해야 내 몸 안에 옮길 수 있다. 이를 위해 난 최대한 정확하게 병을 진단해야 한다.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직업은 내게 다양한 질환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내가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기도 하다.
나는 의사이자, 심판자다. 법이 외면한 자, 운명이 비켜간 자를 추적해 그들에게 질병을 전이시킨다.
의학지식이 내 무기이자 족쇄이다. 내가 의심받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들이 왜 병에 걸렸는지
추적할 수 없다. 이 병은 자연스럽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옆을 스쳐 지나갔을 뿐,
악수 한 번 했을 뿐, 술잔을 나눴을 뿐.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다만 시간과 싸워야 한다.
내 안에 심어진 병은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며 침묵을 유지한다. 3일 동안은. 그 안에 병을 옮겨야 한다.
오늘 내몸으로 옮길 질환은 췌장염이다.
이제 타겟을 고르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