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ransfer
응급실 문이 열릴 때마다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들이 들어온다. 들것 위에서 헐떡이는 숨소리, 아이의 울음
소리 그리고 모니터에서 삑삑거리는 기계음. 이 모든 소리가 뒤섞여 불협화음처럼 거슬리는 소리들.
그 소리가 점차 무감각해질 무렵, 사이렌 소리와 함께 환자가 들어왔다. 수일전부터 시작된 황달과 상복부
및 등쪽의 통증으로 온 38세 여자 환자다.
담낭염이나 췌장염이 의심이 되는 환자이다. 응급실 9번 침대에 눕히고 병력을 물어보고 진찰을 했다.
환자는 날카롭게 지속되는 통증으로 몹시 고통스러워했고 식은땀으로 옷이 흥건히 젖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흰자위는 노랬고, 상복부를 누르면 몸 전체를 움찔거릴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황달이
진행된 아랫배까지 노래진 피부는 응급실 밝은 불빛에 더 선명했다. 의심되는 질환을 확진하기 위해 복부
CT검사를 했다. 췌관을 막고 있는 돌이 확인되었다. 담석성췌장염 진단은 어렵지 않았다.
“담석성 췌장염입니다. 금식하셔야 합니다.” 간호사가 팔에 정맥라인을 잡았고, 나는 수액 오더를 넣었다.
담석성 췌장염은 담석이 췌관을 막아 발생하는 급성 췌장염이다. 췌장 효소가 췌장 조직을 소화해 염증과
괴사를 일으키며, 중증으로 진행하면 치사율이 10~30%까지 보고되는 위험한 질환이다. 췌장염 발생은
술, 높은 중성지방 수치, 담석, 유전등 원인의 다양함으로 내가 의심받을 확률이 제로에 가까워 마음에
든다. 오늘 내 몸에 옮기기 너무 좋은 질환이다. 환자의 복부에 손을 엊고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몸으로 옮겨지는 병은 손끝을 타고 들어온다. 내 몸에 들어온 병이 어떤 형태로 내몸에 잠복해 있는지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내 손에 묻은 환자의 피 한 방울, 환자의 피부가 내 손에 닿는 짧은 순간의
접촉이면 충분하다. 내게만 허락된의식. 이후 삼일을 떠올리며 나는 침착하게 카운트를 시작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순간 그녀는 회복될거다.
첫째날. 퇴근 시간이 지난지 오래지만 아직 병원이다. 오늘 밤 내가 기다리는 건 환자가 아니다. 타겟이다.
타겟을 고를땐 신중해져야한다. 고통스러운 병으로 벌을 받을만큼 나쁜 인간인지, 그 벌이 너무 과하거나
또는 가벼운건 아닌지 신중하게 저울질해봐야 한다.
요 며칠 뉴스에서 오르내리던 인물이 떠올랐다. 태양건설 박인수 회장. 재개발 지역을 강제 철거하며
노인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공사장 안전 비용을 삭감해 젊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 그러나
법정에서는 늘 웃었다.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대신 떠든 말 몇 마디로, 그는 언제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는 사진 속에서 그의 미소를 기억한다. 그것은 살인자의 미소였다. 나는 그에게 병을 옮길것이다.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하게, 다시는 그런 미소를 짓지 못하게 고통을 안겨줄것이다.
그의 일정은 공개되어 있어 그와의 접촉 기회는 쉽게 찾아왔다. 이틀 뒤, 재단 기금 모금 만찬이 OO호텔
3층 에서 열릴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갈 것이다. 일정금액의 기부금을 내고 자연스럽게 접촉을 할수
있는 좋은 기회. 나는 기부자들 사이에 끼어들 생각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날. 밤 사이 응급실엔 새로운 환자가 계속 밀려들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발목뼈가 골절된 청년은 비명
대신 이를 악물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발목에 스플린트를 하고 나서 췌장염 환자를 둘러 보았다. 그녀는
잠깐 잠이 든 모양이었다. 고통이 잠깐 가라앉은 얼굴은 다소 편안해 보였다. 내게 병이 옮겨진다고 해서
그녀의 증상이 바로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내일 전이에 성공한다면 그녀의 증상이 사라질것이다.
드디어 D-day 가 왔다. 일정 참석을 위해 오늘은 휴가를 냈다. 서둘러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호텔 볼룸에선 조명이 사람을 더 환하게 만든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 나는 검정 재킷과 밋밋한 넥타이를 매고 크게 존재감이 없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커튼 뒤 스텝들이
분주했고, 사회자는 칠판에 실시간 기부금을 적으며 억지스런 감동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들어왔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던 윤곽선보다 실제의 얼굴은 더 팽팽했고 기름져보였다. 웃을 때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삼일의 타이머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접촉을 해야한다. 나는 그의 동선을
눈으로 쫒았다. 사회자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플래시가 터지고, 그는 앞으로 나갔다. 기부증서에 사인을
하고 돌아서면서, 그는 관례대로 주변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나는 그가 제일 잘 볼수 있는 자리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내 앞에 멈춘 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내 앞을 지나칠 때 나를 보도록 큰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회장님" "좋은 일 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물론 내 말은 진심이라곤 전혀 없는 속빈 예의였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적당한 압력으로 내 손을 잡았다.
잠시 서로의 온기가 피부를 통해 교차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 짧은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전이는 끝났다. 나를 지나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볼룸 밖 복도는 차갑고 길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손가락을 한 번 굽혔다 펴 보았다. 아무 감각도
없었다. 내몸에 들어올때도 나갈때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규칙은 언제나 공평하다. 공평함이 언제나
정의라는 뜻은 아니다.
아침이 오고, 오늘 오전은 평소와 다르게 한산하다. 밀린 의무기록을 적고, 나는 어제 악수할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호텔 조명 아래, 플래시가 터질 때 번들거리던 그의 이마. 그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사무실?
골프장? 아니면 복통으로 배를 움켜쥐고있을까. 머지않아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거다.
정오쯤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119가 도착했다. “육십대 남성, 심한 복통, 구토, 혈압 저하.” 구급대원의
목소리 뒤로 들리는 신음은 굵고 낮았다. 순간, 나는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호텔에서의 팽팽하고 기름진
얼굴과는 달리 미간 사이에 고통으로 찡그려진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혈압 78에 46— 빠르게 떨어집니다!” “산소 올리고, 수액 대량으로, 진통제 준비.” “혈청 아밀라제,
리파아제, 간수치, 젖산, CRP 확인하겠습니다. CT는 안정되면.” 오더를 내렸다. 사실 나는 검사를 하지
않아도 그의 병을 이미 알고 있다. 복부 CT에서도 췌관을 막고있는 돌이 확인될것이다. 배꼽 위쪽이
바위처럼 단단했고, 가벼운 손길에도 몸 전체가 활처럼 젖혀졌다. “아… 죽…겠어… 살려줘…”
사람은 통증 앞에서 비슷해진다. 재벌도, 악인도, 성인도, 그 순간엔 한 사람의 동물일 뿐이다.
잠깐, 나는 망설였다. 구해야 하는가, 구경해야 하는가.
의사의 손과 심판자의 손이 같은 몸에 달려 있을 때, 작용과 반작용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는
두 손을 느낀다. 그러나 규칙을 정한 건 내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내일이다. 심판은 접촉으로
끝났고, 이후는 의사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 최선의 치료는 나의 몫이다.
“진통제 한번 더. 혈압 확인하세요.” 모니터의 선이 들숨과 날숨의 박자를 따라 어지럽게 흔들렸다.
CT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중증 급성 췌장염. 나는 그에게 필요한 모든 조치를 했다. 의학적으로 옳다고
알려진 것들을, 망설임 없이 수행했다. 그러는 동안 내 속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가 지금 겪는
고통은, 누가 누구에게 준 것인지. 나는 정당한가, 이 상황이 그저 통쾌한가.
밤이 되기 전에 그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혈압은 겨우 수액과 승압제로 버텼고, 통증은 계속 식은땀을
만들어냈다. 비대해진 췌장 주변부의 염증은 마치 독사의 눈처럼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간헐적으로
저산소증으로 경고음이 울리고 나는 모니터를 보며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했다.
나는 좋은 의사였는가. 나는 괜찮은 심판자었는가. 나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나는 단지 규칙을 실행한
사람일 뿐이었다. 삼일의 법칙. 오늘의 병. 접촉. 전이. 이 모든 건 내게서 시작된것도 내게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병을 부른 자가 아니다. 다만, 나는 병이 향할 곳을 정했을 뿐이다.
휴대폰을 열자 지역 뉴스 알림이 속보로 떠 있었다. [모 대기업 회장 병으로 모든 일정 취소, 사회공헌의
아이콘]이라는 구절이 전광처럼 스쳤다. 사진 속의 웃는 얼굴. 한동안 그런 웃는 얼굴을 볼수 없을거다.
발걸음을 옮겨 9번 침대 쪽으로 잠시 방향을 틀었다. 어제부터 한결 편해진 얼굴로 자고 있었다. 그녀의
췌장은 이미 회복되었을것이다. 누군가의 병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심판한다는 건 정의인지 또다른 악의
시작인지는 모르겠다.
의무기록을 열고 챠트를 기록했다. “중증 급성 췌장염, 다발성장기부전 의심, 중환자실 입원후 경과
관찰.” 건조하고 감정이 없는 문장들. 기록은 언제나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한일을
덮어주진 않지만
창밖으로 새벽이 왔다. 복도 끝, 응급실 문이 열리자 서늘한 공기가 밀려나온다. 나는 그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응급실은 다시 시작이다. 무전기에서 새로운 이름들이 들려온다. 새로운 질환, 새로운 통증,
새로운 얼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여며 매만졌다. 다음 병을 고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