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Transfer
혼자 사는 여자집에 침입해 저지른 다수의 성범죄로, 수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성폭행범.
그가 모범수로 감형을 받고 나온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터라
주변에 거주하는 있는 직원들이 불안감에 웅성거린다.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 이동에 제약이 있겠지만
성악설을 믿는 나는 그가 머지않아 동종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99.99%라고 확신한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 완벽한 타겟인데 접근이 쉽지 않으니 아쉽지만 포기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응급실 문을 밀고 들어온 20대 중후반의 여자. 하복부를 두 팔로 감싸 쥔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랫배가 칼로 베이는 것처럼… 어제부터 점점…더 아파요."
가임기 여성이 복통을 호소하면 항상 임신 관련 가능성을 고려해야한다. 혈액 검사 오더를 내고 초음파를
준비했다. β-hCG 수치가 높아 임신이라 생각했지만 초음파로 관찰한 자궁 안은 텅 비어 있다. 그 대신
자궁 옆, 우측 난관 부근에 둥근 음영이 있고 복강 내에 피가 고이고 있었다. 복부 진찰을 하고 산부인과
당직의를 호출했다. 파열의 위험이 높은 자궁 외 임신, 오늘 내가 선택할 이 환자의 병명이다.
상대는 유부남 k 씨라고 했다. 사실 그는 혼인빙자 간음죄 전력이 여러번 있었다.
별 다른 직업이 없이도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건물 임대료로 풍족한 생활을 했고 총각행세하며 여자들을
농락하는 사람이었다. 몇 번의 만남 후 싫증이 나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오늘 내원한 환자도,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으로 믿었던 여자 중 한명이었다.
그러므로 이 병의 칼날은 그를 향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섣불리 내 몸으로
옮겼다가 전이를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일. 좀 더 신중해야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SNS를 방문하여
정보를 취합했다. 허세처럼 올려져 있는 자신의 건물 옆 고급차량 사진들. 사진 속 간판 이름들을 보고
건물 위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건물. 그 건물에 거주하고 있는 듯했다.
내일 오전 아이와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 탈 계획인 듯했다. 그 기회를 놓칠 순 없다.
환자의 손목을 쥐고 눈을 잠시 감았다. 내 몸으로 병이 심어졌다. 3일의 타이머가 째깍거리기 시작할 거다.
내일은 오랜만에 토요일 오프. 하지만 나는 할 일이 따로 있다. 토요일 오전 그 건물 앞에서 아이와 함께
나올 그를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드디어 자전거를 끌고 아이와 함께 나오는 그를 보았다.
접촉해야 한다. 지금 아니면 기회는 없다.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뒤에서 그의 어깨를 치며
"야 반갑다". 큰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하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뒷모습이 닮아 친구로 착각했네요" 사과를 하고 바로 돌아섰다. 어깨를 접촉한 것
으로 충분하다. 접촉에는 수단 방법 가릴 필요가 없다.
다음날 출근하면서 환자 상태를 예측해본다. 환자는 갑작스럽게 통증이 사라지고 복강 내에 피도 거의
흡수되어 보이지 않을거다. 좌측 난관에 보이던 것도 하루 만에 크기가 줄어 수술 없이 지켜보기로 했다고
하겠지. 뭐 이상할 것도 없다. 그 병은 어제 내가 k 씨에게 전이를 했으니까 말이다.
오후 1시 12분. 구급차 한 대가 우리 병원으로 온다는 연락이다. “남자 42세, 갑작스러운 하복부 통증,
기립성 저혈압, 창백, 식은땀.” 그리고 Kehr sign (복강 내 출혈로 피가 횡격막을 건드릴 때 나오는
어깨의 통증). K 씨임을 확신했다. 들것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오른쪽 아래가… 칼로 찌르는… 어깨가…
숨 쉴 때마다….”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혈압을 물었다. 88/52. 복부 촉진에서 우하복부가 돌처럼
굳어 있었고, 반발통은 심했다. 레지던트가 말했다. “충수염? 결석? 뭘까요? 나는 진단명을 알고 있지만
말할수 없다. 남자인데 자궁외 임신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일인가.
나는 초음파 탐침을 그의 하복부에 대었다. 복강의 바닥에 피가 고여 있었다. 전이를 해 벌을 주었으니
이제 의사로서 내가 할 일은 치료다. 나는 레지던트에게 말했다. “수액 2L, 수혈 두 단위 준비해 주시고
산부인..... 아니, 일반외과 콜해주세요. 혈압 떨어지면 혈관수축제 준비해 주시고” '산부인과'라고
내뱉었다가 삼켰다.
CT검사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복강 내 피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벌은
죽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래 사는 것이 벌일 때도 있다.
한 시간 뒤,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다. “복강 내 출혈량이 많았고, 원인은… 설명하기 어렵네요. 장간막
사이에 혈관성 덩어리가 있었는데 파열 흔적이… 조직 검사 보내놨습니다.” 나는 알았다. 병리 결과는
‘이형조직’, ‘원발 불명’.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이름들일 것이다. 나만 알고 있는 이름. 있어야 할 곳을
찾아못한 배아조직. 파열성 자궁 외 임신. 남자에게 불가능한 이야기.그러니까, 벌로서 정확했다.
어느새인가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창가에 서서 바깥의 비를 보았다.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자리를
잘못 잡아 착상했다가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 도로 위에 웅덩이가 생기고, 웅덩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착상에 실패한 빗방울들이 모인듯했다.
병리 결과는 며칠 뒤에 ‘설명 불가 조직’ 으로 나왔다. 나는 그 사실을 끝까지 함구하며 다음 병과 타켓을
찾을것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후 병리조직과 이 환자의 유전자 검사 결과 절반은 그의 것이
아니어서 병리과 의사는 더 당혹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