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70센티 농어를 낚았다고?

제주 여조사의 낚시 이야기

by 마르치아




나는 동해 바다 고성 봉포항을 종종 찾는다. 바람을 쐬러 새벽 두 시에 출발해 여명이 떠오르는 걸 보고, 곰치국을 한 사발 들이킨 뒤 다음 여정을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또다시 낚시가 하고 싶은 유혹이 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차에는 망둥어 낚시를 위해 구입한 만 원짜리 원투 낚시대가 있었다. 묶음추와 지렁이만 구입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앉아 새우깡을 오물거리며 낚싯대를 펴고 묶음추를 달았다. 지렁이는 바나나송이처럼 휘감아 꿰었다. 대상어종에 따라 미끼 운용법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중수 이전에는 모르는 영역이다. 내게 대상어종이란 건 중요치 않았다. 그저 잡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스레기는 별수 있나.

오후가 되어 몸이 나른해졌고, 주위 민박에 들러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해수욕장으로 나왔다.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내 원투대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이토록 사소한 물건이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스레기의 한 부분이리라.




동해 바다에는 보리멸이 잘 잡힌다. 모래지형에서 나는 보리멸은 참으로 깨끗한 맛이 나는 생선이다. 그날 나는 보리멸을 서른 마리 넘게 잡았다. 이제 그만 낚싯대를 접고 숙소로 돌아갈까 했는데, 릴을 감아도 감아도 낚싯줄이 끌려오지 않았다. 속으로는 ‘아디다스 슬리퍼가 걸렸나, 고래인가, 아니면 쓰레기겠지’라고 생각했다. 너무 묵직해서 바늘이 터질 듯했다. 나는 어느 정도 묶음추를 버릴 생각으로 릴을 천천히, 느슨하게 감았다.



그런데 모래사장 끝까지 끌려온 그것이 펄떡이고 있었다. 그것도 격하게. 내 낚싯대 초릿대는 휘청거렸고, 나는 팔 안쪽 근육에 힘을 주고 좌우로 흔들어 고기의 기를 빼야겠다는 본능에 사로잡혔다. 결국 줄을 당겨 고기를 눈앞에 확인했을 때, 그것은 말로만 듣던 농어, 그것도 70센티미터였다.




어스레기란 참 묘한 시간이다. 모든 감각이 열려 있고, 어떤 기적도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농어를 처음 낚아본 그 감격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낚시가게에 들러 무우와 마늘, 소금을 얻고 초고추장을 샀다. 민박집에는 제대로 된 칼이 없었다. 칼을 대충 갈고 회를 뜨려는데, 낚시가게 아저씨가 말했다. “일단 피를 빼고, 비늘을 치고, 머리를 따고, 포를 떠야 해요.”



그 큰, 아직도 펄떡이는 생선의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하지만 회를 먹고 싶다는 일념, 지리의 국물 맛을 상상하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머리는 잘려 나갔고 포를 떴다. 물론 그 결과는, 뼈에 살이 더 붙은 걸레회였다.



그럼에도 나는 농어회를 입에 넣었다. 탱글거렸다. 이 맛에 낚시를 하는 거구나 싶었다. 머리를 넣고 끓인 지리는 입 안에서, 그리고 머릿속에서 불꽃놀이가 터지는 경험이었다. 동공은 확장되었고, 시원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내려왔다. 콧등엔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어스레기에 낚인 농어, 그것도 내 손으로 낚은 생선을 먹는다는 것—그 순간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서울로 돌아온 뒤 나는 가락동 수산시장에서 천 원짜리 숭어를 몇 마리 구입해, 회 뜨는 연습을 했다. 칼도 새로 샀다. 가락시장 칼가게에서 오천 원 주고 산 칼이었다. 그것은 내게 농어의 기억을 따라가는, 소박한 연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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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레기 낚시는 철저히 생활반찬을 위한 낚시다. 생활의 한 끼를 기쁨으로 낚아올리는 행위.

3부에는 근무 시간에 땡땡이치고 한강 수중보에서 황쏘가리를 낚았던 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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