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소리 없이 내려앉은 정갈한 기와집 마당, 리트리버 탱고는 대청마루 끝에 엎드려 제사 준비가 한창인 방 안의 공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예법의 거울이라 불리는 스승 '이황'과 그의 문중 사람들이 모여 할아버지의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죠.
제사상 위에는 정성을 다해 쌓아 올린 과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정적이 흐르던 순간, 제사상 위의 탐스러운 배 하나가 또르륵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황의 부인 권 씨가 떨어진 배를 보고는 아이처럼 천진하게 그것을 집어 치마 속으로 슬쩍 감추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큰 형님이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제사도 지내기 전에 음식을 훔치다니,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
권 씨 부인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였습니다.
퇴계 이황은 사별 후, 부족한 딸을 가여워한 장인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었죠.
탱고는 조용히 일어나 방 문턱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잔뜩 겁을 먹은 부인과, 엄격한 예법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이황이 조용히 부인을 불러 물었습니다.
"부인, 어찌하여 그러셨소?"
부인은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속삭였습니다.
"배가... 너무 먹고 싶어서요."
방 안에는 차가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예법의 대가가 이 '불경한' 행동을 어떻게 꾸짖을지 모두가 숨을 죽였습니다.
그때, 탱고가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이황의 손등에 코를 갖다 대었습니다.
탱고의 목소리는 따스한 숭늉처럼 부드럽게 울려 퍼졌습니다.
"스승님, 저 부인의 눈동자를 보세요.
예법이라는 차가운 글자보다 배고픈 한 사람의 마음이 더 크게 요동치고 있군요.
세상의 모든 공부는 결국 사람을 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황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수 칼을 들어 그 배를 정성껏 깎았습니다.
그리고는 한 조각을 부인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드시오."
놀란 친지들에게 이황은 조용히 덧붙였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도 손자며느리가 제삿밥을 미리 음복하는 것을 보고 귀엽게 여기며 허허 웃으실 게요.
제사는 죽은 이를 기리는 예법이지만, 그 근본은 살아있는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에 있는 법이지요."
탱고는 이황의 곁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들에게 마지막 지혜를 건넸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이념'과 '원칙'을 앞세우느라 그 안에 숨 쉬는 '사람'을 놓치곤 해요.
하지만 이황 스승님은 몸소 보여주셨죠.
아무리 위대한 학문이라도 배고픈 아내의 마음 하나 어루만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지식일 뿐이라는 것을요.
사람이 우선입니다.
모든 '사람 공부'의 끝은 결국 서로를 긍휼히 여기고 존중하는 자리에 닿아 있으니까요."
제사가 시작되자, 방 안에는 엄격함 대신 말로 다 못 할 온기가 가득 찼습니다.
탱고는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차가운 겨울을 녹이는 것은 뜨거운 논쟁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족함을 감싸주는 깎아준 배 한 조각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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