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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의 데이터를 지우는 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성 디버깅

by 김경훈

이성의 정체를 모르겠다면 흑역사 폴더를 열어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당신의 지배적 이성과 자연의 이성 그리고 이웃의 이성을 철저히 검토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철학책에 등장하는 이성이라는 단어는 종종 너무 고상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럴 때는 이성이 아닌 것들을 떠올려 보면 쉽다.

욱하는 충동, 변덕스러운 감정, 무의식적인 습관들이 바로 이성의 반대말이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았을 때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후회하고 자책했던 흑역사 데이터가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이성적이지 않았던 순간이다.

보보와의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쏟아지는 일정에 예민해져 별것 아닌 일에 뾰족한 마음을 품고 후회할 때, 나는 내 안의 이성 시스템이 멈추고 감정이라는 바이러스가 퍼졌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감각 사진]

날 선 감정이 턱끝까지 차올랐을 때 곁에 있던 안내견 탱고의 이마를 가만히 쓸어내리는 감각을 떠올려 본다.

거칠게 몰아쉬던 나의 불규칙한 호흡이 탱고의 느릿하고 평온한 숨소리에 닿아 서서히 박자를 맞추어 간다.

보드랍고 따뜻한 짧은 털의 결을 따라 손바닥을 천천히 밀어낼 때, 혈관을 타고 펄떡이던 충동적인 조급함은 이내 차갑고 명료한 온도로 가라앉는다.

뾰족하게 곤두섰던 신경의 촉수들이 생명체의 묵직한 체온을 통해 둥글게 마모되며, 비로소 내 마음의 지배권을 다시 이성에게 넘겨주는 그 고요하고도 팽팽한 이완의 온도 말이다.



세 가지 이성의 크로스 체크 알고리즘


아우렐리우스는 이성을 관리하기 위해 세 가지 검토 단계를 제시했다.

내 마음을 바로잡기 위한 나의 이성, 세상 속 내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자연의 이성, 그리고 타인의 정보가 신뢰할 만한지 판단하기 위한 이웃의 이성이다.

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완벽한 데이터 교차 검증 즉 크로스 체크 알고리즘이다.

내 주관적인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고, 거대한 세상의 흐름이라는 메타데이터와 타인이라는 외부 데이터를 함께 검토하여 최적의 결과값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 철저한 삼중 필터링을 거치면 우리는 어리석은 충동에 휘둘리는 횟수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완벽할 수는 없어도 업데이트는 가능하다


인간인 이상 충동과 변덕이라는 버그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실수하고 가끔은 감정의 노예가 되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성이라는 훌륭한 디버깅 프로그램이 있다.

후회스러운 행동을 마주할 때마다 이성이 어떤 이유로 오작동했는지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 안의 이성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다 보면,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지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모든 순간의 열쇠는 결국 내 이성의 통제권을 잃지 않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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