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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의 치명적 버그

멍청함이라는 진화의 필터

by 김경훈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개체는 도태되고, 우월한 형질을 가진 개체만이 살아남는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21세기, 포식자가 사라진 문명사회에서 이 도태의 기준은 '완력'이 아니라 '지적 판단력'으로 이동했다.

미국의 기자 웬디 노스컷이 제정한 '다윈상(Darwin Awards)'은 이러한 현대적 진화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이 상은 멍청한 실수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열등한 유전자를 인류 풀(Pool)에서 제거한 이들에게 수여된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인간 지성이 가진 치명적인 버그(Bug)를 탐구하는 중요한 사회학적 텍스트다.



다윈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그들이 지적으로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1996년 토론토의 한 변호사는 고층 빌딩 유리창의 견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가 24층 아래로 추락했다. 그는 법률 지식과 물리학적 이론(강화 유리의 강도)을 맹신했으나, 정작 '물리적 충격이 프레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변수를 계산하지 못했다.

이는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이자 '확증 편향'의 극치다. 자신이 구축한 이론적 세계에 갇혀, 현실의 물리적 위험을 간과하는 것. 고등 교육을 받은 인간이 왜 가장 어리석은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무식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을 과신했기에 도태된 것이다.



정보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다윈상 수상 사례들은 '정보 동기화(Synchronization)'와 '인터페이스(Interface) 해석'의 실패로 볼 수 있다.

1999년 폭사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은 서머타임(Summer time) 변경을 고려하지 않아, 폭탄 타이머와 자신들의 시계가 불일치하는 바람에 자폭했다. 이는 시스템 간의 시간 동기화 실패가 초래한 비극이다.

2000년 시카고에서 자동 권총으로 러시안룰렛을 하다 사망한 남성은 탄창이 회전하는 '리볼버'와 탄알이 자동으로 장전되는 '자동 권총'의 메커니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도구(User Interface)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실행 버튼을 누른 셈이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기계와 시스템은 복잡해지는데, 인간의 직관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멍청함'은 곧장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모든 다윈상 수상자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1982년, 헬륨 풍선 45개를 소파에 매달고 5,000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른 래리 월터스의 사례는 묘한 울림을 준다. 그는 비록 롱비치 전역을 정전시키고 공항 레이더를 교란하는 민폐를 끼쳤지만, 살아남았고(다윈상 선외가작),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경찰이 이유를 묻자 그는 답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잖소."


이 문장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다. 인간을 멍청한 짓으로 내모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무지'가 아니라 '권태'다. 호모 사피엔스는 안전한 지루함보다 위험한 모험을 택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종족이다. 월터스의 소파 비행은 어리석음과 위대함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다윈상 수상자들을 보며 웃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후보자다. 스마트폰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운전 중에 문자를 보내며,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맹신한다.

진화는 끝난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은 끊임없이 우리의 판단력을 시험한다.

자신의 지성을 과신하지 않고, 도구의 위험성을 인지하며, 무엇보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 '메타 인지(Meta-cognition)' 능력. 그것이야말로 이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를 생존자로 남게 할 유일한 유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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