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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돌리드의 논쟁

21세기, 인간의 경계는 어디인가

by 김경훈


역사는 종종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1550년 스페인 바야돌리드 산그레고리오 수도원에서 열렸던 논쟁이 그러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명으로 소집된 이 재판의 안건은 단 하나였다. "아메리카 인디오는 이성을 가진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을 닮은 짐승인가?"


라스카사스 신부는 인디오의 영혼과 인권을 변호했고, 신학자 세풀베다는 그들을 '천성적 노예'라 규정하며 정복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이른바 '바야돌리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신학적 토론이었으나, 본질적으로는 노동력 착취와 제국주의적 팽창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치적 법정이었다. 인간의 범주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 경계선 긋기에 수백만 원주민의 생사가 달려 있었다.



475년이 지난 지금, 바야돌리드의 논쟁은 역사책 속에만 박제되어 있지하다. '인간의 조건'을 묻는 질문은 시대마다 대상을 달리하며 끊임없이 소환된다. 근대에는 흑인이 그다음에는 여성이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장애인이 그 심판대에 섰다.


특히 정보 사회에서 이 논쟁은 더욱 교묘한 형태로 변주된다. 과거의 세풀베다가 "그들은 신을 믿지 않으니 야만인"이라고 주장했다면, 현대의 기술 만능주의자들은 "그들은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가 느리니 비효율적 존재"라고 낙인찍는다.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고령층이나, 시각 정보 위주의 인터페이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디지털 인디오'가 되어 데이터의 신대륙에서 배제된다. 물리적 폭력 대신 '접근 불가(Access Denied)'라는 시스템적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다.



최근 생성형 AI의 비약적인 발전은 바야돌리드의 재판정을 다시 열고 있다. 이번 피고인은 인간이 아닌 기계다. "AI에게 인격을 부여할 것인가?", "AI가 만든 창작물에 저작권을 인정할 것인가?"

라스카사스와 세풀베다의 후예들은 이제 실리콘 밸리와 학회로 무대를 옮겨 치열하게 논쟁 중이다. 한쪽에서는 AI를 인간 지성의 확장으로 보며 공존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통제해야 할 도구로 규정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기계의 인간화'를 고민하는 동안, 정작 '인간의 기계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효율성과 생산성만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인간은 데이터 처리 장치로 전락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인간은 알고리즘에 의해 도태되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 '쓰모없는 데이터'로 분류된다. 16세기 인디오들이 겪었던 존재론적 위기가 21세기 문명인들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 셈이다.



바야돌리드 논쟁의 결말은 모호했다. 인디오의 인권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식민 지배는 계속되었다. 이는 강자가 약자를 정의할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요원함을 시사한다.


연구자로서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내가 가진 지식과 기술이 또 다른 세풀베다의 논리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을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정한 문명은 '인간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인디오를 넘어, 장애인을 넘어, 이제는 비인간 존재(AI, 동물, 환경)와도 공존의 윤리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1550년의 수도원은 닫혔지만, 우리 마음속의 재판정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곳에서 내리는 판결이 우리 시대의 야만과 문명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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