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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Sep 28. 2020

전하지 못한 말

나의 할머니에게 


설탕은 오른쪽 선반 위에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왼쪽 아래 서랍장에 있어야 하는지를 가지고 엄마와 아웅다웅거리다 결국은 서로의 성질을 건드리고 말았다. 나는 열심히 요리를 했고, 요리의 마지막에 설탕을 넣으려고 일주일 전에 왼쪽 아래 서랍장에 넣어둔 설탕통이 손에 잡히지 않자 나는 바로 엄마를 불렀고, 엄마는 오른쪽 선반 위에서 설탕을 꺼내 주었다. 설탕통이 위에 있든 아래에 있든 혹은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이 작고 사소한 일은 아무 문제도 될 것 같지 않지만, 한 집 그리고 그 안에 부엌에서는 아무 문제가 아닌 큰 문제이다. 한 집안에서 부엌을 차지하는 자가 그 집의 주인이고, 실세이다. 부엌은 또 하나의 세계이고 그 안에서 룰을 만드는 자와 이를 따르는 자가 생긴다. 너무 거창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그랬다. 난 어렸을 때부터 친할머니와 엄마가 함께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며 그 안에 숨겨진 영역싸움을 항상 느꼈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오던 자신의 영역 안의 정해진 규칙이 있었고, 막 시집온 엄마는 아마도 그 정해진 틀 안에서 잘 따라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엄마도 새로운 삶에 하나둘씩 익숙해져 가고, 아이도 하나둘 낳으며 할머니의 영역 안에서 또 다른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이를 점차 넓혀갔다. 그리고 서로의 다른 영역들은 이상한 고집들을 만들었고, 이는 부엌이란 세계 안에서 조용하지만 아주 치열하게 서로 부딪쳤다.  


나에겐 이런 문제가 생기면 대놓고 엄마에게 불평을 할 수가 있다. 방금 설탕통이 없어졌을 때 바로 엄마에게 내가 정리해 놓은 것을 왜 옮겼냐며 따져 묻는 것처럼 말이다. 막상 쓰고 보니 엄마에게 많이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딸은 며느리보다 언행에 매우 자유롭다. 내가 어렸을 때 바라본 엄마는 할머니 때문에 참으로 힘들어 보였다. 참 다양한 많은 일에서  큰소리를 내는 사람은 항상 할머니였고, 그 모습에 힘들어하는 건 엄마였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빠의 존재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처럼 내 눈에는 할머니는 팥쥐 엄마, 엄마는 콩쥐, 할머니는 신데렐라 계모였고, 엄마는 재투성이 신데렐라였다. 난 어느 순간부터인가 엄마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고 할머니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게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엄마를 위한 최선의 복수였다.  


처음엔 그렇게 유치하게 소심하게 미워하던 모습에서 점점 시간이 지나며 그 소심함이 무심한 냉담함으로 변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에만 힘들지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어렵지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익숙해진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다시 고치려고 하는 건 너무 어렵다. 마음속으론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이미 굳어져 버린 나의 냉담한 태도는 쉽사리 고쳐지지 못하고, 그 미움이 그 무심함이 그냥 굳어져 내가 되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으로 스스로에게도 익숙해져 갔다. 나는 그렇게 할머니와 천천히 멀어져 갔다. 하지만 난 확실히 알고 있었다. 따뜻한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이러한 나의 모습을 언젠가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정말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이라고.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았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가스불을 올려둔 채, 냄비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도 냄비가 왜 저기에 올라가 있는지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했던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고 방금 한 일을 잊어가더니, 오늘 하루를 그리고 어제를 그리고 할머니가 지내온 지난 시간들을 하나둘씩 잊어갔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하기엔 정도가 점점 심해지셨고 결국 우리를 잊어버리셨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서야 할머니의 얼굴을 만지고 손을 잡아 보았지만, 할머니는 모든 기억이 사라진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날 잊어버린 게 어쩌면 잘된 일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의 차가운 눈빛, 말투, 표정을 다 잊으셨을 테니 할머니는 편해졌으리라 생각했다. 대신 나는 큰 벌을 받았다. 나중에 하려고 미뤘었던 따뜻한 한 마디 건네지 못한 것.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쉬운 일이었다. 그냥 할머니 방문을 열고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렇게 날 잊고, 다른 사람을 잊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잊고 이 세상을 떠났다.


나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일요일 아침엔 온 가족이 교회 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는데, 교회는 가기 싫고 텔레비전이 보고 싶던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항상 할머니 방에 숨어들었다. 부지런하셨던 할머니는 이미 준비를 다 마치고 고운 모습으로 설탕과 프림이 듬뿍 들어간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계셨는데 나는 그 옆 할머니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머리 나빠진다고 못 먹게 하는 그 달고 맛있는 커피 한 모금을 얻어마셨다. 따뜻한 할머니 이불속, 달달한 커피 한입, 그리고 커피는 주지만 내가 똑똑해지길 원하셔서 항상 틀어주셨던 ‘장학퀴즈’를 함께 보며 그렇게 할머니와 따뜻한 아침을 누렸다. 요즘 가끔 할머니와 함께 했던 그때 어느 일요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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