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나보고
"어머... 혹시?" 라고 물어본다면
이건 아기 때문이 아닌
아기를 위해 살찐 거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 거야.
난임 온라인 카페에서 글을 읽다가 신선한 게시글을 발견했다. 어떤 분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난임 병원에 가기 꺼려진다고 글을 썼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만약에 걸리면 병원에 간 동선이 밝혀질까 봐 였다. 우선은 상상의 디테일과 깊이에 놀랐고, 그다음은 난밍 아웃을 아직 하지 못한 글쓴이의 상태가 안타까웠다. 누군가에게 알리지 못하고 혼자 낑낑거리기엔 너무 힘든 일이기에 그리고 나에게도 난임을 숨기고 싶은 시간이 있었기에 그 글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나이가 있어서 결혼을 하니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임신 계획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신혼 좀 즐기다가요’라고 말하며 나의 상태를 숨겼다. 제일 친한 친구 몇 명에게만 알리고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진짜로 내가 시험관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이지만 주변에서 결혼하고 쉽게 아이가 생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나 시험관 해’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내가 타인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은 괜찮은데 남편이나 친구들이 제삼자에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예민해졌다. 친구들에게 말할 때면 ‘이건 정말 비밀로 해줘’를 꼭 붙여가며 이야기했고, 남편이 자신의 친구들과 통화 끝에 나의 안부를 물었다는 말에는 신경이 곤두섰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임신한 주변인들을 만나면 그 앞에서는 입이 꾹 다물어졌다.
하지만 난임을 오랫동안 숨기기는 어렵다. 이게 혼자 일이면 모르겠는데 한 가정의 일이 되어버렸기에 양가 부모님께도 마냥 숨길 수만은 없었다. 처음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면목이 없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남편 탓이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만 같은 철없는 생각만 들었다. 첫 번째 이식 후 7주 차에 임신 소식과 함께 유산 소식을 알리면서 부모님들께도 조심스럽게 난밍 아웃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일 년 가까이 난자 채취만 반복하는 나를 묵묵히 응원해 주시며 열심히 기도해 주시는 중이다.
남편에게는 우리가 연애할 때 알렸다. 임신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쉽게 되는 것도 아닌 미적지근한 난소 수치를 가진 늙은 내 몸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바로 병원을 다녀야 한다고 그래서 혹시 인생에서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면 지금 도망가라고 했다. 그때 내가 한 말들을 지금 보면 손발 오그라들지만 그 당시엔 순도 100% 진심이었다. 나는 그냥 내 운명이려니 내 삶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가야겠지만 남편, 당시 내 남자 친구는 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 보통은 연인이 결혼해서 한참을 노력하다가 아이가 안 생기면 그제야 난임 검사를 하고 아내든 남편이든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김을 알게 되는 게 일반적인데 난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도 못해보고 정직하게 바로 들켜버렸다. 그 당시 남편은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미리 판단하고 도망가고 싶지 않다고 하며 내 곁에 머물렀다.
요즘엔 누군가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으면 나는 시험관 중이라고 대답을 한다. 지난 일 년 겪어보니 이는 딱히 숨길 이야기도 아니고 숨길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는 나의 자존심과도 전혀 상관없고 다른 사람들 삶과는 비교할 필요 없는 내 삶의 일부이다. 요즘은 늦은 결혼 탓인지 난밍 아웃을 하고 나면 똑똑하다고 칭찬받기도 한다.
난밍 아웃이 무서워서 병원을 못 가는 글쓴이에게 댓글로 ‘용기를 내어보세요’라고 댓글을 달아본다. 그분도 자유로워지길 바라본다.